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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고향 2일

셰익스피어의 생가와 학교 Stratford-upon-Avon, UK

by 성경은 Feb 23. 2025

셰익스피어 생가

셰익스피어의 생가(Shakespear's birthplace)는 이렇게 생긴 집이었다. 좀 시골 부자 느낌이 난다. 투박한 농가 느낌이지만 소박한 스케일은 아니다. 매일 로미오와 줄리엣 야외 공연을 한다고 한다. 시간이 부족해서 끝까지 못 봐서 좀 아쉽다.

안에는 1층 방이 이렇게 생겼다. 옛날 영국 침대들 보면 뚜껑이랑 커튼이 달렸는데, 예전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추운 영국 집에 10년 넘게 살다 보니 아, 보온을 위해서 저게 꼭 있었어야 했겠구나 싶다.

1층에 가죽 장갑을 만드는 공방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아빠는 가죽 장갑을 만드는 사람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2층도 뭐 대단한 것이 있진 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구경한다는 데 의의가 있는 곳인 것 같다(성지순례 느낌). 기념품 가게엔 예쁜 것들이 많다. 물욕이 조금 올라왔지만 결국 예쁜 쓰레기들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며 사진 않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기념품은 셰익스피어 오리다. 진지하게 살까 말까 고민했다.

길거리에서 보이는 셰익스피어 생가 모습을 보니 이쪽 뷰가 더 집이 커 보인다.

조금 걸어 나오면 셰익스피어 동상도 있다.

길거리의 많은 건물들이 중세의 튜더(Tudor) 스타일이다. 다 500년이 넘은 건물들이고, 건축재로 나무가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똑바로 서있는 건물들보다 기울어져 있거나 삐뚤빼뚤하게 되어있는 모습들이 많아서 아주 매력적이다.


셰익스피어가 다닌 학교

셰익스피어가 어릴 때 (6-11살) 다녔던 학교(Shakespeare's Schoolroom & Guildhall) 건물도 튜더 스타일이다.

여기는 전형적인 박물관은 아니고 입구 들어가자마자 가이드님(초록티 할아버지)이 그룹투어를 시작했다. 1층 투어는 주로 이 건물에 대한 이야기와 역사 설명이었다.

1층 투어가 끝나고 2층에 올라가니 중세 코스프레 복장을 한 다른 할아버지가 수업하는 교실에 앉아있다. 이 할아버지가 실제로 라틴어 수업을 하는 것처럼 롤플레잉(role playing)해서 아주 재미나고 좋았다. 영국은 중세 때 교회 가는 일요일만 제외하고 월화수목금토 학교에 갔다고 한다. 보통 아침 7시에 수업을 시작하고 1시간 점심시간에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와서 저녁 5시까지 수업을 했단다(). 부활절 이후에는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지니까 아침 6시에 시작해서 저녁 6시에 끝났단다(대박). 방학이라는 개념이 따로 없었고 추수할 때 즈음에 다들 집에 가서 부모님들 하시는 추수를 돕고 추수가 끝나면 학교가 다시 시작되었다 한다. 그래서 영국은 옛날부터 그렇게 새 학년 시작이 추수가 끝난 10월인 것을 오늘에사 깨달았다. 재밌네, 재밌어.

깃털에 잉크를 찍어 글씨 쓰는 연습을 하던 교실도 구경하고 직접 잉크로 글쓰기도 해볼 수 있었다. 이런 참여형 박물관 컨셉이 참 재미나고 좋은 거 같다. 어른이 이렇게 재밌는데 애들은 얼마나 더 재밌을까.


새끼양갈비구이와 햄릿

점심에는 양고기집에 갔다. 식당 이름이 양거리(Sheep Street)에 있다고 Lambs(새끼양들)이다. 작명 센스가 있다.

식당 시그니처 메뉴가 새끼양갈비구이(Herb crusted Rack of Cotswold Lamb)라 그걸 시켰다. 거짓말 안 하고 내가 살면서 먹어본 양갈비구이들 중에 최고였다. 귀여운 새끼양에게는 너무 미안하지만 정말 맛있었다.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고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Royal Shakespeare Theatre)에 햄릿(Hamlet)을 보러 갔다.

솔직히 말해서 ... 공연은 내 취향은 아니었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오셀로 연극도 동네 극장서 보고서 이해를 못 하겠네, 재미가 없네, 싶었는데,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전반부에도 좀 졸고 후반부에도 좀 졸았더니 더 내용이 이해가 안 된다. 시간 날 때 언제 햄릿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오셀로의 경험 때문에 혹시 재미없을까 봐 비싼 좌석 안 샀는데, 참 잘한 거 같다. 이제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셰익스피어 공연을 보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강가의 공원과 저녁

햄릿을 보고 나서 극장 옆 강가(애본강, River Avon)의 공원(Bancroft Gardens)을 좀 어슬렁거렸다. 햇빛이 쨍쨍한데 강에 평화롭게 둥둥 떠다니는 오리와 백조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힐링된다.

길가는 백조도 물멍 중이다.

네덜란드에 많은, 수위 높낮이 차이가 나는 카날(canal)이 여기도 있다. 반갑다.

고뇌하는 햄릿 동상이 햄릿 공연을 보며 졸던 내 모습 같다.

강가 다리가 너무 예뻐서 근접샷을 찍어봤다.

그리 많이 걷지도 않았는데 당 떨어졌다. 스트랱포드 옆 동네 래밍턴 스파(Leamington Spa) 사는 친구가 추천해 준 The Fourteas Tea-Room(1940년대 찻집)에서 크림티(cream tea, 차에 스콘이랑 딸기잼이랑 클로티드 clotted 크림을 줌)를 시켰다. 스콘 개 맛있다.

밀가루를 이미 먹었으니 저녁은 좀 건강하고 가볍게 먹고 싶어서 일식당(Shushi Land)에 갔다. 풋콩(edamame) 버터 구이는 사랑이다.

생선회 세트도 맛있었다. 연어, 참치, 문어회와 같이 메기(basa) 숯불구이가 나왔는데 숯불구이 메기가 이렇게 맛있는 걸 처음 알았다. 요리사분이 영국인 남자분이어서 중국인이 하는 한식당 같은 느낌으로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대 이상의 맛집이었다.

딱 어제 계획한 대로 오늘 돌아다녀보니 계획을 너무 알차게 짜서 그런가 여유로움이 조금 부족했다. 역시 여행은 J가 아니라 P로 하는 게 나한테 좀 더 잘 맞는 것 같다.

(다음 회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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