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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Jan 14. 2022

딜레마 - 인간도 자율주행되나요?

인간을 위해 만든 기술이 인간을 조종한다?

 아주 어릴 때 또래 친구들이 조그만 장난감 말을 타고 노는 것을 보면 참 부러웠습니다. 그다음에는 세발자전거를 타는 친구들이 부러웠고요. 그다음에는 자전거를 타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바이크를 타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바이크를 배워보기도 했죠.


 그 전까지의 것들도 좋았지만 자동차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사람을 태우고 다니기도 하고, 더 빠르기도 하고. 그리고 바이크처럼 내 자신이 아주 위험해 보이지도 않았죠. 결국 20대 후반에 면허를 따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지금은 그때만큼 자동차와 운전이 좋진 않아요. 갈수록 도로는 더 복잡해지고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운전은 즐거움보다 스트레스가 많아졌습니다. 복잡한 길을 찾아서 처음 보는 곳을 가려고 하면 그 스트레스는 더 커집니다. 주차시설은 있는지, 입구는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근처에 일방통행 도로는 없는지...


 일일이 그걸 알아봐야 한다면 스트레스겠지만 다행히도 자동차와 모바일 환경이 한꺼번에 발달하면서 그러한 걱정은 줄어들었습니다.



 




 흔히 하는 농담 중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일생에 꼭 말을 들어야 하는 대상이 3명이 있는데

 하나는 부모님, 하나는 배우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내비게이션이라고.


 우스갯소리지만 지금 대다수의 운전자는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운전하기 힘든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죠.


 아주 가까운 거리야 운전이 가능하지만 처음 가보는 곳도 많고, 복잡하고 과밀한 도시에서는 특히 내비게이션이 필수죠. 왜냐하면 우리는 계속 바뀌는 교통 정보라든가 내가 가보지 못한 지역의 교통정보를 전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에 의지를 하여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창기의 내비게이션은 음성으로, 심지어 직접 사람이 지도를 보면서 가르쳐주는 형태였습니다. 실제로 이용해 보신 분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떤 때는 가르쳐주는 게 늦거나 문제가 생기는 일이 비일비재했죠. 그래서 점차 시각정보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화면이 같이 제공되는 내비게이션이 탄생했죠. 


 이번에는 업데이트가 문제가 됐습니다. 도로는 계속 새로 생기거나 바뀌거나 없어지다 보니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다 보면 막다른 길에 도착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고, 그로 인한 사고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습니다. 내비게이션 지도 데이터는 엄청난 양이었고, 그 모든 데이터를 저장해야 하는 내비게이션은 SD카드도 점점 고용량을 필요로 했으며 그나마도 엄청나게 읽고 쓰기를 거치다 보면 가끔 고장 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내비게이션 따라가다가 막다른 길이 나오니 얼마나 당황했는지...


 그렇게 불편함을 감수하고 몇 개월에 한 번씩 업데이트를 해가며 쓰던 중, 시대가 바뀌어서 스마트폰의 시대가 옵니다. 처음에야 데이터 송신이 불안했습니다만 점점 통신속도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마트폰에서 내비게이션용 데이터를 활용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어차피 GPS는 스마트폰도 기본적으로 활용하니까요. 처음에는 말 그대로 내비게이션 대용으로 엄청난 지도 데이터를 다운로드하는 형태였습니다만, 결국 통신속도의 증가와 기술의 발전으로 방대한 전국 지도 데이터를 받는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통신을 받아서 구성하는 방법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그러한 과정을 지나 지금은 실시간 애플리케이션 내비게이션이 대세로 자리 잡았죠.


우리는 이제 애플리케이션으로 내비게이션을 사용합니다. 대부분 말이죠.




 그러한 발전은 내비게이션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자율주행 자동차에 관한 연구는 상당히 오래된 연구긴 합니다만, 문제는 이 자율주행 자동차의 데이터를 감당할 수 있는 기술 수준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실시간으로 많은 데이터양을 지연 없이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점점 발달하면서 레이더와 라이다에만 의존하지 않고, 데이터 네트워크의 보조를 받을 수 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국가에 따라 다르지만 자율주행이 어느 정도 영역에서 실생활에 쓰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테슬라 같은 케이스가 있죠. 저도 개인적으로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매우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운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율주행의 문제는 운전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문제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모빌리티'에 관한 문제인 것이죠.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어디로 이동할 자유가 있는데 누군가는 그런 이동의 자유를 제약받는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아주 옛날, 산맥이나 바다로 가로막혀있으면 서로 문화와 언어가 달라졌듯이 교류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죠. 일단 이동을 한다 안 한다를 떠나서 그걸 선택할 권리가 없어진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여부가 영향을 주긴 하겠지만 그런 영역의 개선을 위해서 사회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려는 정책으로는 대표적으로 노약자에 대한 교통요금 우대정책이 있습니다. 흔히 저상 차량이라고 말하는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버스도 마찬가지고, 교통약자 전용택시와 같은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는 운전이 '기술'분야였습니다. 운전을 하는 사람이 많지도 않았고, 운전을 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직업 선택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나 '자동차'가 사치품이던 시절에는 더 그랬죠. 그런데 이제는 20살만 넘으면 자동차 구매를 생각해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집집마다 자동차 한 대 이상 가지고 있는 집도 많아졌고요. 그에 따라서 운전을 하는 것이 '특수 기술'에서 '일반적인 기술'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일반 기술이 되었어도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운전을 할 수 있거나 잘하는 것은 아니죠.


 기본적으로 노약자와 장애인의 경우는 신체적 제약으로 인해서 힘들 수 있고요. 심신 미약이나 음주 등의 상태에 의해서도 운전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 이전에 타인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는 운전은 안되죠. 제 개인적으로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하반신을 못쓰시는데, 어딘가로 이동하려면 엄청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처음부터 완전히 하반신을 못쓰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지팡이를 짚으면 걸을 수 있으시던 시절에도 이동은 매우 불편했죠.


 이런 경우다 하더라도 자율주행 자동차가 있다면 문제없이 운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운전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뿐 아니라 음주운전에 대한 문제에도 엄청나게 기여할 것입니다. 지금도 사회적 문제죠. 윤창호 법도 그렇고... 교통법규 위반으로 인한 사고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요.


 뭐 여러 가지 면에서 참 긍정적이죠?




 그렇다고 해서 자율주행 자동차의 미래가 '희망 편'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지옥편'은 또 다른 면을 가지고 있죠. 


 가장 기본적인 문제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트롤리 딜레마'의 문제입니다. 한 때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강의 내용 중에서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밑의 내용에서는 법적 책임을 제외하고 도덕적인 측면만을 고려합니다.


기차가 가고 있을 때 고장으로 제어 불능 상태가 됩니다.

앞에는 선로 분기점이 있습니다.

기존의 선로는 5명의 사람이 서있어서 그대로 가면 5명을 죽이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선로를 변경해서 다른 쪽으로 가면 그 선로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작업자 한 명만 죽이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선택을 하느냐 라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변형이 존재하는 데 그중 하나가 이 자율주행의 문제입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자동으로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주행 중에 갑자기 앞에 차가 끼어들어 그대로 가면 운전자가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옆으로 틀어서 피하면 길가에 있는 사람을 치게 되어 그 사람이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동차에게 어떤 설정을 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죄 없는 길가의 사람을 치어 죽이게 만들면 안 된다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대답 이후에 다시 이런 질문을 하죠.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을 살려줄 차보다 죽음으로 이끌 차를 당신 차로 구매하시겠습니까?"


도덕적 판단은 언제나 옳고 그름이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AI가 아무리 딥러닝을 통한 사고를 한다고 하더라도, 인간 본연의 딜레마들에 대해서 어떠한 판단을 내려야 할지에 대해서는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논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AI가 선택한 것이라 죽은 사람은 어느 쪽이 되었든 원망할 대상은 그 자율주행을 만든 사람들일 수밖에 없겠죠.


 거기다 지금 현재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기술적인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라이다 기술과 5G 통신 환경의 발달로 자율주행 기술은 더 안전하고 정밀해졌습니다만, 라이다 기술이 가지고 있는 비용을 미루어보면 라이다를 적용한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는 꽤나 멀고 먼 일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레이더 기술을 토대로 자율주행을 구성하려고 하는 거죠. 








 자율주행에 대해서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만은 '딜레마'파트에서는 가볍게 인문학적 주제로 다루어 보았습니다. 


 자율주행과 인문학의 연관성은 위에서 다룬 딜레마나 윤리만의 문제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자율주행이 인간에게서 무엇을 보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겠습니다.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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