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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Jan 13. 2022

가치의 고민 - 다단계, 그 절망과 환상

닷컴 버블, 네트워크 마케팅, 그리고 다단계와 가상화폐



2000년대 초반, 대학생이었던 저는 친구에게 전화를 한통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대학을 다니다 군대가 몇 달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잠시나마 돈도 벌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름 오래된 친구였고, 믿는 친구였기에 서울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다는 말에 흔쾌히 올라갔죠.


 가장 큰 이유는 그 당시 지방의 아르바이트 인건비가 시간당 2000원이 안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말도 안 되는 시절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저임금법이 제정되기 전의 일입니다) PC방, 노래방에서 시간당 1800원에서 2000원을 받으며 아무리 일해봐야, 심지어 휴일도 없이 일해도 30만 원을 빠듯하게 손에 쥐기 힘들었으니까요.




 그래서 미련 없이 훌훌 털고 올라간 서울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원래 착한 친구라서 의심 없이 올라온 것이었지만, 반가운 친구의 얼굴을 보고 몇 마디 나눈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싸한 느낌을 받은 후였지만 그렇게 '손절'하기에는 너무 착하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죠. 그래서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친구가 이끄는 대로 따라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당시의 저는 실질적인 다단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습니다. 뉴스도 흘려들어서 알 길이 없었고, 주변에 다단계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람이 없었던 탓이었죠. 아니, 있었는데 다단계에 걸렸던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죄라도 지은 양 쉬쉬 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보통 그 연결고리가 친구나 선배였을텐데 그럼 서로 아는 사람일 테고 그걸 떠들고 다니기는 어렵긴 했을 것 같기도 하네요. 나이가 다들 어리던 시절이니.


 다만 제 전공이 경영학인 탓에 교수님이 들려준 '네트워크 마케팅'에 대한 불완전한 정보들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인터넷이 발달한 시절이었지만, 다단계에 대한 썰이나 정보가 쉽게 공유되던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이 잘 되었다면 이른바 '거마대학생'들이 조금 덜 나오지 않았을까요.



지방 대학생이었던 나에게 서울은 기회의 도시였습니다.



 따라간 서울 테헤란로 건물 3층.


 들어가자마자 친절하게 웃으며 가방을 뺏듯이 받아 드는 정장 입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들어선 문 옆에는 정장 입은 덩치 좋은 젊은 사람들이 서있었죠. 가방까지 뺏기고 나니 친구는 미안한 기색과 함께 다단계를 '오픈'했습니다. 일단 들어만 보고서라도 가라고. 조금씩 고성이 터지거나 몸싸움도 있는 주변과는 달리 나는 평온하게 알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두려웠던 부분도 있었지만 젊은 호기심에 네트워크 마케팅을 책으로 배웠을 때 다뤘던 한계점을 "혹시라도"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투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있었죠.


 소란이 가라앉고 처음 약 20여 명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시작한 사람은 다단계에서 'silver'등급이었습니다. 강의 내용의 절반은 자신이 포트리스 게임에서 어떻게 금달을 달고 상위 몇 프로에 드는 실력자였는가 에 대한 이야기였죠. 아마 젊은 사람들이 많으니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했던 얘기라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은데, 그 뒤로 나온 다단계의 설명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질문을 하고 싶어도 워낙 대충 설명하는 게 심해서 그냥 흘려듣고서 개별 면담시간으로 넘어갔습니다. 


 사람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정장 입은 사람들 손에 널따란 사무실 곳곳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도 그럴게 저 역시 '회사'에 들어온 이래로 친구를 볼 수 없었거든요. 아니 사실 들어오기 전부터 친구와는 제대로 말을 나누지 못하게 감시하고 있었겠죠. 그나마 믿을 건 친구뿐일 텐데 말도 한마디 섞을 수 없으니 더 불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별 면담에 들어온 사람은 '레드'등급이었습니다. (사실 맨 아래가 레드였는지 블루였는지 기억에 혼동이 있습니다. 아무튼 맨 아래에서 바로 윗 등급이었습니다) 저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의 열정적인 설명이 끝나고 나는 잠깐 궁금한 것을 물어봐도 되냐고 했습니다. 여전히 사무실은 곳곳에서 약간은 험악한 분위기나 무거운 분위기가 가득했죠. 그에 반해 잘 웃고 협조적인 저의 태도에 우리 쪽은 그다지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고 가볍게 물어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사실 정확하게 뭘 물었는지는 가물가물 하지만 기억에 따르면 가장 기본적인 네트워크 마케팅의 문제점에 대한 부분을 물어보았습니다. 과연 규모가 커지지 않아도 네트워크 마케팅이 공급하는 물건의 다양성과 규모를 확보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필연적으로 규모가 커지게 될 때 소비자들을 유인할만한 내용이 전제되어 있는가. 예를 들어, 다단계로서의 이익구조 이외에 상품적인 측면에서도 실질 이익이 발생하도록 설계되어 있는가. 뭐 그런 내용들이었죠. 저의 질문에 난감해하던 그는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불러오겠다면 자리를 비웠습니다. 


 얼마 후, 저는 다른 사람과 개별 면담을 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등급은 '골드'였죠. 자신의 수익이 월 1000만 원이 넘는다던 그 사람은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이 그냥 사람을 많이 끌어모으고 스스로 영업만 잘한다면 나중에 그 사람들도 다 고마워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차와 물건들 자랑하는 거야 부럽고 배 아프긴 했지만 당시 패기 넘치던(?) 대학생이던 저에게는 애매한 요소였습니다. 


 일단 그 부분에서 말이 좀 안 통하는 것 같아서 그 이전에도 물었던 상품 구비 및 경쟁력에 대한 부분을 물어보았고, 결국 그 면담조차도 중단되어 혼자 덩그러니 앉아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면담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죠. 하도 개별적으로 분리가 되어있어서...




 저녁 시간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뒤에 종례가 지나고 (다단계는 아침 조회와 저녁 종례가 있었습니다. 학교도 아닌데...) 거의 비밀 작전처럼 창문이 다 막힌 차량을 타고 숙소로 이동했는데 차에서 친구에게 말을 걸려고 하니 옆에 험악한 인상과 덩치의 여성분이 막았습니다. 결국 숙소에 도착해보니 방이 2-3개 있는 빌라 같은 숙소였고 아주 간소한 (반찬이 2가지였나) 식사를 한 후 다 같이 모여서 게임 같은 걸 해야 한다면서 '술 없는 술자리 게임'을 했습니다. 벌칙은 무슨 처음 보는 건강음료 같은 걸 커다란 사발에 부어놓고 원샷을 하는 거였죠.


 그 말을 듣고 살펴보니 방구석마다 건강보조식품과 알 수 없는 공산품이 쌓여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다단게를 '투자'(라고 쓰고 등록이라고 읽지만)하면 그 투자금으로 처음에 물품을 구매하게 되는데, 그걸 어디다 실제로 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다들 숙소에 쌓아놓고 있는 거였습니다. 그걸 보자 어렴풋이 어릴 때 보던 일본 만화에서 부모가 사업이 기울자 다단계에 손을 대서 집에 물건이 쌓여있는 컷을 봤던 기억이 났죠.


 여하튼 그 건강보조식품이 엄청 비싸고 좋은 거라면서 벌칙이라기보다는 상이라며 누군가 웃으며 말해줬습니다. (그렇지만 다들 안 걸리려고 사력을 다하는 걸 보면 성분이 상당히 의심스러웠나 보죠) 도살장에 끌려온 것 같은 다른 신입 회원들과 다르게 저는 웃고 떠들면서 열심히 술자리에서 익힌 게임 실력을 발휘했고, 다들 저의 긍정적인 반응에 조금은 경계를 풀었습니다.


 그렇게 폭풍 같은 첫날이 지났지만 저는 여전히 친구와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한 채, 2일 차가 되었습니다.


 약간 신앙 간증회(?)같은 아침 조회를 거치며 앞으로 불려 나온 20명가량의 새로운 교육생들에게 질문이 주어졌습니다. 친구의 권유를 받아서 이걸 같이 해볼 생각이 있는 사람은 앞으로 한 발짝 나와달라는 이야기였죠. 20여 명이 서로 눈치를 보는 가운데 2명 정도가 앞으로 나섰고, 나머지는 뭐를 씹은 듯한 얼굴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도 하루 종일 교육이 이어졌죠.



 운동부 출신이라던, 우리 차에 탔던 그분에게 자기 인생 역경과 다단계가 자신의 삶에 얼마나 희망이 되었는가를 오전 내내 듣고 나서야, 오후가 되면서 드디어 빼앗겼던 핸드폰과 지갑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지갑은 돈을 제외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안에 있던 돈은 숙소의 식사비로 쓰인다고 하면서...)


 예전에는 교육이 5일씩이었는데, 최근 법이 좀 엄해져서 3일로 줄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만 더 버티면 되는구나 하고 여전히 웃으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문제는 저와 같은 숙소에 배정받은 교육생은 정말 얼굴이 사색이 되어있었죠. 뽀글뽀글한 파마를 한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친구였는데 저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단계는 서울권이면 도망칠 가능성이 높아서 지방에서 올라오게 하여 갈 곳이 없도록 만드는 게 보통이었죠)


 마침 핸드폰을 받은 상황이었기에 계단으로 이동할 때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그 친구와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숙소와 교육 중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문자로 서로  상황을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회로 풀려나왔을 때도 한동안 연락하고 지냈는데 서로 지역이 달라서 어물어물 연락이 끊겼죠.


 어쨌든 거기나 저나 상황은 똑같았습니다. 친구의 연락을 받고 올라온 전형적인 케이스였죠. 다만 생각보다 사람에 대해서는 겁이 없던 나에 비해, 그 친구가 좀 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나는 어차피 안 할 거고 그냥 내일 나갈 거라 말해주었고, 혼자라 고립되어 불안해하던 그 친구에게는 나름 큰 위로가 된 거 같았습니다.




 둘째 날 오후, 다시 진행된 면담에서 나는 교육장소이자 면담 장소인 3층이 아니라 4층으로 불려 갔습니다.


 거기에는 소위 중역 의자라 불리는 소파가 놓여있는 넓은 개인 사무실이 있었고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을 '에메랄드' 등급이라고 했죠. 그리고 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들어보니 경영학도 배웠고, 알만큼 아는 거 같으니까 굳이 돌리지 않고 사실대로 다 말해주겠다고. 그리고는 이건 인간관계를 포기하고 몇 년만 열심히 해서 돈을 버는 거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죠.


 차라리 저처럼 네트워크 마케팅 구조를 잘 알고 이용하는 사람은 진짜 빠르게 높이 올라갈 수 있고, 에메랄드나 다이아몬드까지만 올라가면 엄청난 돈을 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 업계에 10년이 채 안 되는 시간만에 강남 어디에 술집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었죠. 문제는 제가 서울 어디에 어떤 술집이 있는지 모른다는 거였지만. 여하튼 그렇게 돈이 많아지니 다단계 한다고 손가락질하며 떠났던 친구들 말고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친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때쯤 나는 또 다른 궁금증이 들어 물어보았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몇 년을 해왔으면 이거보다 사람도 많고 회사도 커야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런 거 치고는 사람도 적고 규모가 적다고 물어보았죠. 지금이야 그게 어떻게 된 건지 다 알지만 그때의 저는 고작 21살의 풋내기였으니까요.


 그 에메랄드는 저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자신도 바닥부터 시작했고, 자신과 자기 위에 있는 다이아몬드랑 몇 명이 원래 있던 다단계 회사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해서 새로 만들어 올린 거라고. 네가 의심하는 것처럼 이 회사는 암웨이나 이런 데처럼 진짜로 커져서 규모의 경제와 유통과정 간소화를 통한 이득을 추구하려는 게 아니라, 그 이전에 적당한 수준이 되면 분사해서 새로 다단계를 설립하고 그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맨 위에서 수익을 챙길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들어오면 아마 3년 안에 자기 위치에는 올라올 거라며 엄청 높게 평가해주었죠. 저는 웃으면서 확답을 피하고 생각해보겠다며 자리를 마쳤습니다.





 2일 차 저녁에는 드디어 친구와 둘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친구와 둘만 간단히 꼬치구이 술집에서 맥주 한잔에 가벼운 안주를 시키고 술을 먹여서 설득하는 순서였습니다. 저는 둘만 남게 되자마자 친구에게 말했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과정을 끝까지 들어준 거라고. 그걸로 너한테 할 수 있는 도리를 다했다고.


그러자 친구도 말했습니다. 자기도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게 아직 '투자'가 되어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말이죠. 


 자기도 친구 때문에 불려 와서 어쩌다 보니 남긴 했는데(워낙 착한 성격이라...) 긴가 민가 해서 저를 부르면 제가 하는지 안 하는지 보고 판단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이건 성립이 안 되는 것이라 했고, 친구는 알았다며 자기도 상황을 봐서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옷이랑 신발 같은 것들을 많이 갖고 있어서 도망가기가 쉽지 않다며 기회를 보겠다고 했죠.


 여하튼 잠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웬 실버 등급 한 명이 갑자기 자리로 끼어들어서 마지막 설득작업에 투입이 됐는데... 본인이 뭐 어디 의대 출신이고 너보다 똑똑한 내가 이런 걸 하는데 왜 네가 이게 되냐 안되냐를 고민하냐는 어이없는 설득을 시도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대생이 아니었을 것 같지만) 트러블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그러냐고, 하지만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고 그렇게 대충 밤을 지나 보냈죠. 


 같은 숙소에 왔던 그 친구에게 문자로 물어보니 본인에게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쪽은 방식이 좀 달라서 친구를 믿고 한번 해보면 안 되냐며 거의 눈물의 설득이 이어지고, 이어서 나타난 실버 등급 인원이 어떻게 친구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믿어보지 못하냐면서 그러고도 친구냐고 엄청 쏘아붙여서 흔들릴 뻔했다고 했죠. 




마지막 날이 되어 오전 조회가 돌아왔고, 거기에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첫날 오전처럼 또다시 교육생들을 불러내어 일렬로 세워놓고 그 전날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친구의 말을 믿고 한번 투자해 볼 의향이 있냐며. 그리고 놀라운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죠.


 전날에는 20여 명 중 2명에 불과했었는데, 이 날은 나를 포함 3명 정도를 남기고 나머지 모든 인원이 한발 앞으로 나섰습니다. 즉 90%에 가까운 인원이 다단계에 가입했습니다. 당연히 회사에서는 박수와 함께 축제 분위기고, 뒤에 남은 3명 정도는 엄청난 눈초리를 받는 상황이 되어버렸죠. (특히 우리 숙소는 2명이 와서 둘 다 빠져나가는 바람에 엄청나게 무서운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조회가 끝나고 그 운동부 여성분의 조용한 협박과 함께 우리는 2박 3일 만에 풀려났습니다. 운동선수 출신들이 많고 어차피 이거 아니면 밑바닥 갈 인생들이라 뒤가 없으니 혹시라도 어디 가서 입을 뻥끗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이야기였죠. 


그 뒤에는 여담이지만 나를 불렀던 친구는 며칠 뒤에 숙소 누군가의 생일로 술 마시는 분위기를 틈타 짐을 다 버리고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아직도 간간히 연락이 닿긴 하는데 서로 그 얘기는 없던 것처럼 이제 잘 꺼내지는 않죠.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다단계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다단계의 한계점이 명확함에도 사람들은 다단계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끝없이 믿으며 뛰어들었습니다. 그것은 세기말 밀레니엄 시기의 닷컴 버블 역시 마찬가지였죠. 당시에는 인터넷이 세상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던 시기였고 닷컴이라는 이름만 달면 미래를 쥐락펴락하는 회사가 될 것 같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아이엠에프를 전후해서 화폐가치의 하락으로 자산가치는 상승했고 그로 인해 부자들은 돈이 늘어날 수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엔젤투자가 몰리면서 연일 주가가 상승하고 다시 그 영향으로 돈이 더 몰려들었죠. 결론적으로는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주가는 반토막이 났고, 테헤란로에 넘쳐나던 닷컴 회사들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테헤란로에 다단계가 스며드는 데도 영향을 주었고요. 



닷컴 버블이 말한 미래는 결국 현실로 다가왔다. 다만 그들이 그 안에 없었을 뿐.



 닷컴과 다단계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꽤나 명확합니다.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가치를 단지 '돈이 몰리기 때문에' 미래에도 잔존할 가치로 판단하는 것이 옳은가.


 '닷컴'이 버블이었던 것이지 인터넷 기반 사업이 계속 발달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1990년대 후반에 세워진 네이버, 한메일(후에 다음이 되고 지금은 카카오와 합병한)이 지금도 우리나라 경제를 쥐락펴락 할 정도이며, 그 시절 세워진 게임사들이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에도 영향을 주면서 당당하게 게임단을 운영할 정도죠. 다음이 흡수한 카카오톡은 국민 대다수가 쓰는 메신저가 되었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정말 누구나,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즐기는 시대까지 왔습니다.


 '닷컴'의 오너들이 '그런' 미래를 이야기한 것은 진실이었겠지만, 그 미래에 그들이 정확히 어떻게 편승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지 않았음에도 그것이 '주식'이라는 교환 가치와 맞물리면서 정확한 판단이 없이 휩쓸려 버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마찬가지로 네트워크 마케팅은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면 단점이 명확한 마케팅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이상적인 조건으로 진행됐을 것을 가정'한다면 당연히 성공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경제학에서 가끔 언급되는 '팃포탯 전략'과도 비슷하죠. 다만 상대에 대해서 그 상대가 한없이 순진할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며, 결론적으로 다단계 쪽에서 배신을 취하는 전략일 뿐입니다. 실제로 카드 포인트, 멤버십 등을 운영하는 수많은 마케팅 영역은 네트워크 마케팅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방식 자체가 쓸모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 진실에 섞여있는 거짓을 외면하고 진실처럼 받아들여서 수많은 사람들이 휩쓸려 들어갔죠.


 그들의 판단력을 흐린 것은 많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 이 분야에 돈이 몰리고 있다.


 이런 부분이 그들의 눈을 가렸을 겁니다. 왜냐면 아무리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 하더라도 그곳에 돈이 몰렸다는 사실 자체는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아니 눈을 흐린 것이 아니라 알고 있더라도 저 사실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릅니다.


 비트코인 이래로 수많은 가상화폐가 출현했습니다. 비트코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지는 오래됐지만 실제로 가상화폐가 폭발한 건 고작해야 10년도 되지 않았죠. 그리고 정부와 전문가들은 끊임없이 경고와 장려 사이에서 대립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이라는 방식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NFT도 훌륭한 기술이죠. 


 그러나 그것이 가상화폐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투자하는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만 엄청난 돈이 몰려있기에, 그래서 risk만큼의 기회도 존재할 것이라 믿기에 그렇게 열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가상화폐는 도박적 성향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장이 쉽지 않은 주식마저도 도박에 가깝다는 비난을 받는데, 가상화폐는 그마저도 아니죠. 정말로 '누구나' 알트코인을 만들어 낼 수도, 팔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거래에 대해서 국가에 대한 어떤 책임을 지거나 많은 세금을 부여받지도 않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노력 중이지만...


 도박판에서 도박이 어떻게 진행되더라도 항상 돈을 따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은 하우스입니다.


 그들은 판이 커지면 커질수록 수수료를 챙겨가도록 되어있습니다. 국내 최대이자 세계 3위의 거래량을 가진 코인 거래소를 운영하는 국내 회사가 2021년 전반기 영업이익에서 알려진 것만 2조에 가까운 돈을 벌었다고 하죠. 이건 우리나라 최대의 자동차 회사의 2021년 전반기 영업이익을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수수료를 먹는 거래소의 특성상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매출의 90%에 가까운 돈이 순이익이죠. 결국 이 돈으로 은행이라는 '실질 금융'에 대해 영향력을 주고자 '우리금융지주'를 입찰받는 데 성공했다고 들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모든 가상화폐가 가치가 있다거나 성공하는 게 아니라는 건 가상화폐 투자자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때 불패 소리를 듣던 부동산보다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는 주식보다도 수익률이 높은 경우가 왕왕 있는데 그 달콤한 유혹을 무시할 수 있을까요? 그 일확천금이 가능한 엄청난 변동 폭 앞에 현혹될 수밖에 없겠죠. 실제로 주식에서도 펀더멘탈을 믿고 있던 세계의 주식 전문가들도 미친듯한 양적완화를 버티지 못하고 가상가치가 실물가치를 박살 내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 했으니까요.


 어찌 되었든 지금 현재 코인 거래는 범법이 아니며, 합법적으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거래 총량을 따지면 수수료가 몇 조 단위로 발생하고, 결국 손해 보는 사람이 더 많은 구조로 간다는 대수의 법칙 따위는 무시하고 다들 뛰어드는 것이겠죠. 




결국 우리는 이러한 교환가치의 폭증과 실제 가치의 사이에 발생한 딜레마를 '해결할 것인가 이용할 것인가'의 선택을 강요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콘텐츠,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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