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게 내가 모든 것들을 다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주변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 중에는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나, 나와 취향이 맞지 않는 것들도 많다.
그것에 대해서 특별히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들이 나에게 억지로 '영업'하려 하지 않는 이상은.
보통 그런 경우에 가장 이야기가 헛도는 지점은 의외로 좋아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보통은 그걸 왜 좋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거라고 착각하는 지점이다.
당연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알고 있지만 내가 싫어하는 이유가 더 커서 좋아하지 않는 케이스가 많다.
그걸 나한테 자신이 좋아하는 이유를 아무리 더 설명한다고 해서 내가 바뀌는 일은 드물다.
내가 싫어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어긋나게 만들 수 있다면 혹시 모를까.
아니 애초에 내가 싫어하는 게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예전에 브런치에서도 살짝 언급한 기억이 난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라도 논리적이지 못한 이유로 비판받는다면 충분히 그것들을 위해서 싸울 용의가 있다.
누군가는 '싫어하고 좋아하는데 명확한 이유가 어디 있냐?'라고 하는데,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을 뿐이다.
그건 자신이 이유 없이 싫어하거나 좋아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착각하면 안 되는 지점이 있다.
'자신'이 그렇다는 것이지 남들도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타인은 아주 논리적인 이유로 싫어할 수도 있다.
그들도 자신처럼 그냥 좋아하거나 그냥 싫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대화는 헛돌기 시작한다.
당연하게도 세상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이 모두 논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항상 논리적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꼭 황금비율이어야만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꼭 보색 관계일 때만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심지어 사람을 바라볼 때도 누군가의 기준에 미인이지만 나의 기준에 아닐 수 있고 나의 기준에서 아름답지만 누군가에게는 별로일 수도 있다.
물론 그런 '판단' 자체를 '정치적 올바름'에 집어넣고 쥐어짜는 이상한 세상이 되었지만 눈이 달린 한, 그리고 머리로 생각을 하는 한 각자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늘 무언가 판단을 하게 된다.
다만 최대한 설명을 하려고 하는가 아닌가의 차이다.
아버지는 어떠한 가수를 싫어할 때 그냥 목소리만 들어도 싫다고 하신다.
그 목소리가 왜 싫은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없고, 사실은 일관성도 없다.
어떤 특정 주파수나 타입의 목소리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무언가의 영향으로 싫게 느끼고 그로 인해 그 목소리조차 듣기 싫은 것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이지만 그냥 넘어간다.
이건 우리 아버지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문화'가 갖는 기본적인 속성이기도 하다.
아무리 PC(정치적 올바름)의 잣대를 들이대도 '섹시 콘셉트'라던가 '자극적인 소재'들이 인기를 끈다.
다만 그 안에서도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존재할 뿐이다.
심지어 일관성 있는 기준도 아닌.
마냥 벗고 나오면 인기 있는 게 아니고 마냥 잘생기거나 예쁘기만 하다고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기본적으로 연예인이 '콘셉트'라는 것을 가지고 평소의 성격과 다른 연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뭘까.
그건 사람들이 진실을 꿰뚫어보는 게 목표가 아니라 눈에 보이고 그로 인해 상상 가능한 것들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어린애들과 젊은 사람들의 트로트' 문화라고 우기는 것처럼.
나 역시 어머니와 겪는 갈등 중 하나다.
뭐 어머니가 거기에 엄청난 돈을 쓰고 다니시는 (그럴 돈도 없어서지만) 그런 분은 아니라도 관심과 주제는 늘 그쪽에 가있다.
그들의 이미지 메이킹을 철석같이 믿으시고 자식과 손주들에게 전파하려 하실 때도 있다.
일종의 노인 '오타쿠'문화인데 그들은 그게 '오타쿠'인 걸 인정하지 못한다는 게 가장 슬픈 부분이다.
솔직히 그들에 대한 애정을 '취향'으로 보고 존중해 드리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세계가 분리될수록 공감은 어렵고 적당한 거리가 생긴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따라서 좋아해 드리면 되지 않냐고?
위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좋아하는 게 너무 많다.
내가 그 이외에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이미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맞춰주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나이가 먹는다고 현명해지지는 않는다.
그 말은 나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며, 우리 부모님에게도 적용된다. 그리고 아마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습적 문제인 나이로 위아래를 가르는 게 없어지려면 멀었다.
모든 것들은 없어질 때 과도기를 겪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이가 먹는다고 현명해지지 않는다는 말이 어린 사람들이 더 현명하다는 말은 아닌데 그렇게 착각하는 사람들이 범람하는 시기가 있다.
그런 과도기가 지나간다 하더라도 오히려 양 극단에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