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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May 20. 2023

아웃풋을 기대하지 않으면

인풋을 어떻게 하라는 걸까?

 더 이상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지만 교육에 관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도 10년이라는 세월을 가르치고, 그 가르치기 위한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일을 해왔는데 그렇게 쉽게 교육에 대한 생각들을 떨쳐낼 수는 없다.


 꼭 그런 영향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문제들에 있어서 조금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이지만 확실하게 개선이 가능한 플랜은 교육에 답이 있다고 늘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적 문제가 있으면 교육에서 어떤 형태로 그걸 해결할 수 있었을까 고민을 한다.












 최근에 어떤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최근에는 글만 쓰느라 입이 근질근질했던 나에게는 대화를 좋아하는 분을 만나서 이야기하게 된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었다. 그분도 그랬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단히 많은 공부를 하신 분이었다.


 유학도 다녀오셨고, 유학 이전부터 학위가 아니라 공부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 분이셨다. 물론 나는 처음 뵙는 분이었지만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대단치는 않지만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번쯤 이야기를 해보고 싶으셨다고 하셔서 만날 수 있었다.


 이야기하는 것을 즐겨하시는 분 답게 나만큼이나 많은 말을 하셨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도, 맞는 부분도 있었다. 그분이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가끔 내가 모르는 이름들이 나오기도 해서 부끄럽기도 했다. 


 내가 최근에 공부하거나 책을 많이 읽지 못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중 가장 나와 의견이 맞지 않았던 부분은 교육에 대한 부분이었다.


 나는 교육을 위해서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직접 운용하던 입장에서 최근 보게 되는 교육 프로그램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건 아마도 내가 교육 관련 글을 쓰는 것들에도 충분히 묻어 나오는 부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보게 된 교육 프로그램들의 설계가 논리적 근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그게 꼭 최신이론이어야 한다든가 유행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소크라테스, 플라톤 같은 고전적인 것들에 기원을 하더라도 근거는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분은 나와 다른 의견이었다. 내가 HRD의 관점이 남아있다 보니 교육을 '인풋-아웃풋'구조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셨다. 


 그게 아예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아웃풋 값을 하나로 정의한 게 아니라 범위로 지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순차에 의한 인풋값은 그 이전 단계의 아웃풋에 영향을 받을 뿐이다. 


 사람들이 기대한 대로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에는 공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육이 필요 없는 것일까? 아니면 교육에는 성공도 실패도 없는 것일까? 아마도 그분은 내가 풀어서 이야기한 탓에 교수설계 단계에서 교육 공학적 구조가 필요하다는 말을 조금은 극단적으로 받아들이셨을 가능성도 있다.




 예전에 HRD를 한참 공부하고 관련된 일과 사람들을 만나던 시기에 우연히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꽤나 이름이 있는 경영컨설턴트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경영컨설팅 자격증 자체가 전국에서 100번째 안에 취득한 베테랑 컨설턴트였다. 몇 번 모임에서 뵈었는데 어느 날은 그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었다.


 그분이 경영 컨설팅을 일찍 시작하셨기에 꽤 오랫동안 많은 회사들의 컨설팅을 해오셨다. 꾸준히 공부도 하시는 분이고 커뮤니티도 참여하시며 젊은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분이셔서 늘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분이셨다.


 그러다 어느 날 컨설팅 해준 회사 한 군데에서 제안을 받으셨다.


 일주일에 2-3일만 와도 상관없으니까 와서 컨설팅 한 부분이 실행되는 것을 체크하고 관리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비상근임에도 불구하고 급여도 상당히 세게 부르기도 해서 그분은 한 번쯤은 자기가 컨설팅한 게 어떻게 돌아가는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3달 정도만 일하기로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막상 일을 해보니까 실무 단계에서 자신이 컨설팅했던 부분들이 안 돌아가거나 막히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론적으로 자신이 설계할 때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회사의 상황이나 특수성이 덜 고려된 부분들이 실제 운영에서는 문제가 되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오해하면 안 된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실무를 하던 사람이 설계를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아니면 이론적으로만 설계해 봤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실무 단계를 상세하게 예측하고 설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프로그램 설계는 의미가 없다는 소리와 같다. 그건 키오스크나 일반적인 챗봇 같은 게 불가능하고 챗 지피티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것과 비슷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기계와 프로그램들을 사용한다. 그 대부분은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예측하여 범위값을 설정하고 설계한다.




 우리는 보통 사람의 행동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유도한다. 경영학과 마케팅도 그랬고, 교육도 마찬가지다.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범위로 책정해서 열어두는 것을 '샌드박스 형'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조차도 그 범위를 산정하기 위해서는 예측이 필요하다.


 이걸 누군가는 '인풋-아웃풋' 구도라고 판단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창의성이 있기 때문에 꼭 생각한 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설계가 필요 없을까? 아니다. 어떻게든 우리는 목표가 있고 의도가 있다. 그리고 그 의도는 절대적으로 옳다기보다는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육에 목표가 없고 '그냥 어떻게 되는지 봅시다'라고 하는 게 과연 개인에게 그리고 사회에게 가치가 있는 교육일까?


 교육 설계의 최소한의 근거는 모방이다.


 우리는 아기들에게 처음에 말을 가르칠 때 언젠가 부모의 행동이나 말을 따라 할 것이라는 예측을 통해서 교육을 시작한다. 타인이 모방할 것이라는 예상이 없으면 교육은 시작하기도 힘들다. 타인이 의사소통을 하려고 할 것이라는 예측이 없어도 마찬가지다.










 순문학을 쓰는 분들이 내 글을 보면 아마 지적이 쏟아질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글을 잘 쓰지 못해서 그렇겠지만 한편으로는 규격이 경직되고 딱딱하게 정해지면 대중과의 괴리가 생긴다. 그 정도가 되어야 조심스럽게 꺼내는 게 '인풋-아웃풋' 이야기일 것이다.


 소설계에서 가장 큰 시장은 웹소설이 되었다. 마치 블록버스터와 OTT에서 팔리는 미드들이 그렇게 된 것처럼. 하지만 그들이 예술영화나 순문학의 기준을 따르지 않을지는 몰라도 아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면 어떨까? 아무리 대중들이 기대하는 게 '킬링타임' 수준이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구조 설계가 무너진 작품들은 외면받게 되어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게 예술이고 새로운 시도라고 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그 목적이 적어도 형식의 파괴보다 내용의 전달과 커뮤니케이션에 있다면 우리는 문법과 구조에 맞게 글을 쓰고 작품을 설계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쓰인 글이나 작품들이 내가 생각한 것을 내가 의도한 대로 전달할 수 있다. 내가 원한대로 전달이 안 될 수도 있는데 너무 '인풋-아웃풋'의 구조로 보고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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