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영웅이기를 바랄까? 아니면 나만?
'망하지 않는 웹소설'을 쓰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주인공'만'이 특별하게 만들어야 하는 점이다.
문학적인 의미로야 대중 속의 자신, 평범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내도 되겠지만 취향과 해소를 위한 웹소설이라는 장르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아무리 예술 영화가 좋아도 대중씬에서는 블록버스터가 몇 배는 더 많이 팔리는 것처럼.
히어로 무비의 주인공이 수많은 잘난 애들 사이에 하나가 아니라 유일하게 빛나는 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될 때 사람들은 전율과 흥분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웹소설의 주인공은 조연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능력이 있을 때 사람들에게 매력과 흥분을 끌어낼 수 있다.
영화관이 영화를 보기 위한 주요 수단이던 시절에는 사실 이런 호흡일 필요는 없었다. 영화관에서 보다가 중간에 일어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돈이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조금 더 많은 서사를 넣고 조금 더 주인공에게 역경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OTT의 시대다. 유튜브의 시대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제 천천히 참고 기다리지 못한다.
초반부에 확 당기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안 보면 되는 시대다. 웹소설도 그러한 이유로 1화가 중요해졌고 초반 5화 사이에 뭔가 주인공을 둘러싼 시원한 사건이 확 터져서 독자를 끌어들이지 않으면 '실패한 웹소설'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전에 '스킵하지 않을 여유'라는 글과 비슷한 맥락이다.
사람들은 지속적인 무엇보다 당장의 자극을 원한다. 직장생활로 월급을 차근차근 모으는 것을 택하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돈은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투기'를 해서 한 번에 굴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평균적인 소득과 급여가 높아졌지만 그게 주는 만족감은 훨씬 줄어들었다. SNS와 유튜브를 보면 자신보다 더 '특별하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상대적인 만족감은 절대적인 만족감을 누른 지 오래되었다.
예전에 우스개 짤방으로 돌아다니던 배트맨이 우주 단위의 싸움에 가면 팝콘이나 먹고 있을 수밖에 없다던 그런 느낌이다. 행성 단위를 몰살시키고 다니는 애들한테 고담시티의 영웅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물론 여전히 취향을 타는 부분이 있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것들을 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성공의 기준은 이야기가 다르다.
'성공한'이라는 수식어는 '돈을 많이 번'이라는 수식어의 고상한 버전이다. 뭘 해도 돈을 벌었으면 성공했다는 말을 음지에서는 공공연하게 하고 다닌다. 정말 최악의 빌런을 제외하면 나머지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부여한다.
갈수록 빌런을 주연으로 삼는 것들이 많이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문제는 다른 영역에서도 이것이 적용되는가의 이야기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런 마인드는 영향을 준다.
자신들이 당하면 분노하지만 타인에게 사기를 쳐서 엄청난 부자가 됐다면 그것이 나중에 법에 걸릴지라도 돈을 다 털리지 않는 한 성공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성공한 사람들이 그걸 바탕으로 권력을 쥐게 된다.
누군가는 읽고 '너무 극단적인데?' 또는 '나는 아닌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경향성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해당되는 사람들이 전부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거나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행동에 합리화를 부여한다. 그래야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까.
웹소설이나 대중적인 예술들이 그러한 성향을 갖는 것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목이 말라서 사이다를 마시고 싶은데 건강에 안 좋다며 물이나 건강한 녹즙만 마시라고 강요하는 게 말이 되나? 취향의 영역은 그렇다.
하지만 이러한 성향이 일반적인 다른 성향에도 영향을 준다면 다르다.
우리는 히어로가 되고 싶은 자신을 투영한다. 하지만 '모두가 히어로'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니 심지어 자신이 아닐 바에는 히어로는 궂은일이나 하고 돈은 자신이 벌기를 원한다. 상대적이고 즉흥적인 갑부 히어로. 그래서 아이언맨이 가장 있기 있는 히어로였을지도 모른다.
특히 어른들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