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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Mar 18. 2023

한자를 읽는 아이

 사실은 아직도 정규교육에 한자 교육이 있는지 없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꽤나 예전에 나온 '마법천자문'이 아직도 팔리고 있고, 초등학생들에게 의외로 한자 자격시험이 꽤나 경쟁률 높은 시험이라는 것은 들은 기억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듣는 한자 수업에도 아이는 집에 와서 억지로 한자를 끼워 맞춰서 단어를 만들어서 놀고 있다. 


 '생활한자'라며 학교 앞에서 나눠준 학습지 회사의 종이를 방문에 붙여놓고 열심히 따라 읽기만 하고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멍하니 들으면서 나는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신문 스크랩'이라는 것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한겨레가 한자를 덜 쓰기로 하면서 논란이 될 만큼 신문은 한자로 뒤덮여 있었다. 당시만 해도 '신문 기사'는 잘 쓴 글의 대명사와 같았고, 신문을 읽거나 사설을 스크랩하는 것이 글을 잘 읽고 똑똑한 아이들의 조건이었다. 


 그런 시대였다.




 아버지는 한자를 정말 많이 알고 계셨다.


 초등교육을 채 마치지도 못하셨던 안타까움에 독학으로 사서삼경에 논어에 주역까지 읽었노라고 어린 시절 많이 들었다.


 그래서였다. 자신은 하고 싶어도 못하던 공부였다.


 '너희는 얼마나 공부하기 편한 시대에 살고 있냐. 나는 하고 싶어도 못하던 것을.'


 그러한 이유로 어릴 때는 종아리를 맞아가며 공부를 해야 했다. 




 어린 시절, 내 어렴풋한 기억으로 내가 4살에서 5살 즈음에 아버지는 형에게 천자문을 가르치고 계셨다. 형에게 천자문을 외우게 하면서 옆에 있던 우리도 얼떨결에 같이 배우고 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외우는 건 그저 천자문이라는 '음의 순서'였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


 억지로 더 기억해 내자면 조금 더 기억 날 것도 같은 초반의 한자들을 심지어는 정확히 읽을 수도, 쓸 수도 없었다. 그냥 외웠다. 


 나의 천자문에 대한 기억은 그 언저리가 끝이었다. 


 아버지는 '너의 형은 어릴 때 천자문을 다 떼었는데 잊어버렸다.'며 못내 아쉬워하셨다.


 어린 마음에 나는 왜 형처럼 저걸 다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형은 자신은 다 외웠던 적이 없다며 펄쩍 뛰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내가 중학생이 되고 나니 '한문'을 정규 교육 과목으로 배우게 되었다. 


 아버지의 천자문 교육은 거의 효과가 없었지만 웃기게도 한문은 내가 가장 잘하는 과목 중 하나였다. 이유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읽어대던 무협지 때문이라는 게 어이없을 뿐이다.


 중학교에서 시작하는 한문 교육은 현대화가 되어서 더 이상 천자문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천자문부터 떼어야 한다던 아버지의 한문 교육은 우리 시대의 교육과 맞지 않았다. 


 숫자 쓰기나 간단한 요일 한자, 또는 획이 적은 한자를 위주로 시작하는 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천자문은 왜 그리 어려운데 입문 교육이었을까 생각했다. 




 아버지께 뜻이 뭔지 알아야 한자를 하나하나 외우게 되는 거 아니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일단 다 외우고 나면 나중에 뜻을 알게 된다고 하셨다. 


 내가 직접 교육하는 일을 하게 되고 나서도 한참을 잊어버리고 있던 기억이었다. 아버지는 왜 한자를 그런 방법으로 가르쳐 주셨을까. 


 당연하지만 아마도 본인이 그렇게 배우셨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독학 대상은 초등학교 시절 배운 책을 제외하면 그 시골 농촌 옛날 집에서 물려받은 한문 책들이 전부였다. 심지어는 가르쳐 줄 이가 없어서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독학했다고 하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1960년대에 한자를 혼자 독학해서 그걸로 뭘 한단 말인가. 나중에야 그것이 별 쓸모없다는 것을 아셨겠지만 그조차도 아버지께 알려줄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가정형편에 의해서 학업이 중단되었다는 것에 대한 울분만이 남아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버지께도 역린과 같은 부분이라 아마도 중학생이 넘은 이후로 나는 이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기억이 없다. 심지어 아버지와 다투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실제 한자는 읽지도 못하면서 밑의 한글로 열심히 따라 읽으면서 '아는 것'으로 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나를 어릴 때 그 시절로 데려다 놓았다.


 나는 '하늘 천 따 지'가 왜 80년대에 개그프로의 소재가 되었는지를 이해한다. 그리고 그게 개그프로 소재에 쓰일 때쯤부터 아버지는 천자문에 갖고 있던 자부심을 밖으로 내보이지 않게 되셨다. 말은 안 하셨지만 본인도 그 시대가 개그의 소재가 될 만큼 지나가 버렸다는 것을 알고는 계셨다. 다만 그걸 인정하면 혼자서 독학했던 그 많은 시간들을 부정하는 것일 뿐.




 물론 배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 그리고 틀리더라도 자신감이 있는 것은 '흥미'라는 측면에서 나쁘지는 않다.


 만일 내가 천자문을 4살 때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음을 외우고 있었다'면 그게 의미가 있었을까? 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생한 시간이 꼭 그 가치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일본의 재난현장에서 가장 난감한 구호 물품이 '종이학'이라고 한다. 일본의 오랜 풍습에 따라서 정성이 들어간 기원이라면서 주는 경우가 꽤나잦은데, 실제로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치워버리자니 정성을 무시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곤란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는 해외에도 재난 구호물품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들의 정성이나 고생이 담겨있다고 할 지라도 그것이 꼭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맞지도 않는 단어에 아는 한자의 독음을 끼워서 만들고서 "맞지?"하고 묻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기어이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정확히 모르는 것을 억지로 아는 척할 필요는 없어. 나중에 진짜로 알게 되고 나서 아는 척해도 돼."


 사실 나도 알고 있다. 진짜 알게 될 때 쯤이면 아는 척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을. 아는 척 할 수 있는 것은 잘 모를 때 뿐이다. 아는 척 하는 사람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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