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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섭 Jan 07. 2021

새로운 여행의 기술  마이크로 트래블

여행담론

  코로나 바이러스는 일상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학생들은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으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하는 장소가 대부분이며, 수시로 손을 닦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은행에서는 지폐를 소독하기까지 한다. 줄을 설 때도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은 기본적인 매너가 되었고, 스포츠 경기장이나 극장은 폐쇄되거나 좌우전후로 한 좌석씩 띄어 앉아야 한다. 대중교통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가까운 거리라면 자전거를 이용하여 출퇴근 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서 자전거가 마스크처럼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 될 것이라는 말이 퍼진 적도 있었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재채기 소리에 모든 사람의 이목은 집중되고, ‘턱스크’로 다니는 사람들은 불안을 증폭시키는  ‘사회적 일탈행위자’로 여겨질 정도다. 이쯤 되면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변했다고 말할 수 있다.      

  

  2007년 즈음에 스마트폰이 출시되면서 사람들은 컴퓨터와 와이파이가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지 않고도 ‘손가락의 움직임’만으로, 그것도 실시간으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 이상의 변화를 우리는 자유로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북반구와 남반구를 넘나드는 ‘토착화된 계절병’으로 고착(固着)할 것이라는 뉴스는 많은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이제 거의 기정사실화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여행은 꽤 오랜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에 있는 기라성 같은 미술관과 박물관은 휴관 중이며, 여러 가지 여행가이드북에서 꼭 봐야할 건축물로 추천하는 거의 모든 장소가 사람들의 방문을 통제하고 있다. 많은 나라가 비자발급을 중단했거나,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타국인들의 방문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나의 유럽’을 그렇게 자랑하던 EU가 서로의 국경을 통제한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결국 하나의 유럽이라는 꿈은 현재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이미 발생한 더 강력한 변종 바이러스 때문에 좌초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백인종들이 주류를 이루는 나라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이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다. 유럽과 호주 등지에서 아시아 유학생이나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모욕과 폭행사건은 일부 저급한 백인들의 행태로 치부(置簿)할 수도 있지만, 안전이 최우선인 여행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는 것만으로도 여행을 다시 떠나는 것이 두렵고 꺼려진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가 그동안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서구(西歐)국가들의 치부(恥部)를 그대로 드러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서로 생필품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하는 모습에서 ‘아무런 경쟁력이 없는 하얀 피부색’을 자랑했던 그저 ‘하얀 사람’들의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지켜봤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행을 자유롭게 떠나지 못하는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여행의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처럼 수용소의 비참한 생활 속에서 머릿속으로 하는 ‘상상여행’과 같은 것은 아닐지라도 <여행의 기술>에서 알랭드 보통이 논했던 자신의 집과 방을 여행하는 ‘작은 일상의 여행’은 꽤 설득력이 있다. 우리는 그동안 밖으로 나가는 것만을, 특히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소위 말하는 ‘산 넘고 물 건너’식의 여행만을 진짜 여행이라고 여긴 것은 아닐는지.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의 <팡세>에 나온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방법론을 넌지시 던져준다. 남들이 나가니 덩달아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 내가 진정으로 먼저 둘러봐야 할 곳을 못 본 것은 아닐까.     

 

  이제 ‘Micro Travel’의 시대가 개막된 것 같다. 그동안 밖으로 큰 것을 보기 위해 다녔던 것이 ‘Macro Travel’이었다면 이제는 나와 밀접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Micro Travel의 개념이다. 신조어를 만들어낸 것 같은 이 뿌듯한 마음은 뭐지. 근사한 책 제목을 뽑은 느낌이다.       

  

  내 방과 서재를 둘러보니 참 가관(可觀)이다. 언제 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책과 물건들이 즐비하다. 이곳저곳에 정리되지 않는 사진들이 널부러져 있고, 외국에서 가져온 작은 기념품과 조약돌이 마구 섞여있다. 쓰지도 않는 수없이 많은 볼펜과 필요도 없는 서류와 팜플렛의 뭉치들. 내가 생활하는 공간에 산재해있는 물건들의 ‘득템 에피소드'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몇 달은 걸릴 듯싶다. 삼분의 일 정도만 읽고 방치된 책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의 ‘큰 여행’을 멈추게 한 지금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나의 일상을 정리하는 ‘작은 여행’ 마이크로 트래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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