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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용 Jul 04. 2024

[홍시생각 29] '핵 주권' 없는데 자체 핵무장이라니

한국 자체 핵무장론…"삶은 소대가리가 웃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빈번하게 열리곤 했다. 

성과도 없이 흐지부지 끝나버려서인지 지금은 이 6자회담이 까마득히 먼 옛날 얘기처럼 들린다. 


나는 이 회담 진행 과정을 보면서 '별볼일 없을 것'으로  일찌감치 점쳤다. 나에게 특별한 신통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회담 명칭부터 왜곡된 회담이 그 명칭에 함축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북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미국, 한국, 일본 등 서방측에서 왜곡한 명칭이다. 

공식명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Six-Party Talks for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이다.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도 포함된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를 위한 회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사코 '북한 핵'만이 문제라면서 '북한 핵' 제거에만 몰두하는 식으로 회담을 몰고 갔다. 남한에 있는 미국 핵우산은 그대로 놔 둔 채 북한 핵, 북한 핵무기만 문제 삼는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될 리 만무했다. 결실 없는 빈 깍정이 회담으로 끝나리라는 것은 나만의 예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6자회담 이전부터 주변국들, 달리 말하면 국제사회는 '북 핵무기'는 물론 '남 핵무기'도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다. 미국의 남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정책, 중국의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정책은 모두 '극력 반대'로 똑같다.  미국 등 주변국들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란, 남북한 모두의 핵무기 개발 능력 거세를 의미한다. 


1991년 12월 31일 남북한이 채택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남북한의 자발적 의지라기보다는 주변국들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핵 개발 포기를 강요하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굴복했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다.   

당시 일각에서는  '폐핵연료 재처리시설'이 핵연료 주기의 핵심이며 이를 포기하겠다는 비핵화공동선언은 스스로 '핵 주권'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하지만 극히 일부 전문가들이 제기했던 '핵 주권 수호'는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저 '비핵화'(非核化)는 선(善)이고 '핵화'(核化)는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핵 주권이니, 핵 주권 수호니 하는 말들은 낯설고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었다.  


원자력 발전으로 얻는 전기가 국내 에너지 생산의 30% 이상을 차지하며 그 덕에 밤낮으로 공장 돌리고,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전기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쓰면서도 핵 하면 핵무기, 특히 북한 핵무기를 떠올리고 과거 발생했던 원전 사고를 떠올리면서 핵에 부정적 인식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핵의 평화적 이용 권리는 NPT 등 국제 조약으로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 평화적 이용의 핵심 요소는 핵연료주기 완성이며 핵연료주기 완성에는 폐핵연료 재처리 시설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재처리시설이 없다. 미국이 막고 한국도 포기한 결과이다.      


핵, 핵무기 하면 연상되는 국제 조약이 있다. 

흔히들 '핵확산금지조약'으로 부르는 NPT다. 

1970년 3월 5일 발효된 NPT의 영문 명칭은 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이다.

우리말로 하면 '핵무기 비확산 조약'이다. 외교부 문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고, 이를 기사화한 적도 있다. 


그런데 '핵무기 비확산 조약'이라는 올바른 명칭을 좀처럼 들어볼 수 없다. 과거에도, 지금도 우리는 '핵확산금지조약'으로 부른다. 언론계 내부에서 '핵무기 비확산 조약'으로 쓰자는 캠페인까지 벌였지만 그저 그때뿐, 어느새 '핵확산 금지 조약'으로 원위치되곤 했다. 


'핵확산 금지 조약'이라는 용어를 세밀히 들여다보자. 우선 '핵확산'의 '핵'은 평화적 목적의 핵까지 포함하는가 의문이 생긴다.  '확산 금지'라고 하면  누군가가 핵이 확산되지 않도록 강제한다는 건데 과연 그게 가능한가, 그 '금지'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뒤따른다. 


'핵무기 비확산 조약'이라는 용어는 이 조약이 지향하는 바를 비교적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핵무기 보유는 P5(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에 한정한다, 그 외의 국가로 핵무기가 확산되지 않도록 한다, 핵무기 보유국은 비핵국을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는다, 평화적 목적의 핵이용은 장려된다 등 NPT의 주요 내용에 비춰보면 '핵무기 비확산 조약'이 '핵확산 금지 조약'보다 훨씬 더 적절하다. 


또 하나 강조하고픈 것은, 핵무기 비확산에 찬성하는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조약을 만든 것이지 핵무기 보유국이 비보유국을 '강제'해서 체결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때문에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조선(북한) 등 NPT 미가입국을 비난할 것도 악마화할 것도 없다. NPT 미가입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감수하고서라도 핵무기 보유를 선택할지 여부는 주권을 가진 그 당사자 국가가 판단할 일이지 다른 나라가 간섭할 이유가 없다. 


한국은 '자발적으로' NPT에 가입했다. 

미국의 핵 선제공격 전략 채택으로 '핵무기 보유국이 핵무기로써 비핵국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NPT의 기본취지가 무색해진 지금에도 여전히 NPT에 남아 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에 참여하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발표했으며, 핵무기비확산조약(NPT) 가입국인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무장을 하겠다고 하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볼까. 

포퓰리즘 늪에 빠진 일부 정치인들의 정신나간 짓이라고 하지 않을까.


거듭 강조하지만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자는 게 결코 아니다. '핵 주권'을 지키고 국익에 맞게 그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경원 의원(국민의힘) 등 '한국 자체 핵무장론자'들은 우선 1956년 체결된 한·미 원자력협력 협정부터 들춰봐야 한다. 

미국이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찬성인가. 미국이 재처리 기술 이전에 찬성인가. 재처리 기술을 한국 스스로 개발할 수 있는가. 재처리 기술이 없으면 핵무기 원료 플루토늄, 우라늄을 어디에서 구해 올텐가.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기에 앞서 이 질문에 답부터 내놓아야 한다. 


미국은 일본과도 원자력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수준의 협력을 허용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은 믿을 수 있고 한국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불거진 '한국 자체 핵무장론'은 미국으로 하여금 '믿을 수 없는 한국'을 확신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백곰사업'을 세게 밀어붙였다. 자주국방을 목표로 한 '백곰사업'에는 자체 핵무장 계획도 들어있었다고 한다. 미국 아닌 다른 나라를 통해 기술을 들여오려다가 미국 안테나에 걸리고 말았다. 박정희의 피살 이유 중 하나로 '자체 핵무장론'이 거론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억측이다. 


박정희 정권의 뒤를 이은 전두환 정권은 들어서자마자 백곰사업단을 해체해버렸다. 그것으로 미국의 신임을 얻었다. 물론 이것도 과도한 억측이라고 반론을 펴는 자들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추정이다.


미국을 상전으로 떠받드는 것 같은 자들이 상전이 극도로 억제하는 한국 자체 핵무장론을 떠들고 있다. 지금쯤 상전으로부터 엄한 질책이 있지 않았을까. 능력도 배짱도 없는데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들 때문에 '핵 주권 잔혹사'를 또 한번 되돌아보게 됐다.  자존심 상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소태 씹은 듯 뒷맛이 쓰디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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