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고싶다.

엄마가 보고싶은 사람들이 봐야할 영화

by 박요나


코트깃을 세우고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구수한 된장찌개를 떠올리며 집으로 총총히 발걸음을 돌리는 쌀쌀한 저녁, 오늘 따라 유난히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이 밤에 촉촉한 눈물 한 방울과 함께 추억에 젖을 수 있는 영화를 몇 편 소개한다.


행복 목욕탕 (Her Love Boils Bathwater, 2016)
원제 : 湯を沸かすほどの熱い愛(목욕물도 데울 수 있을 정도로 뜨거운 사랑)
미야자와 리에, 스기사키 하나, 오다기리 죠 주연. 나카노 료타 감독.

2015년 작품 ‘종이달(요시다 다이하치 감독)’과 2016년 작품 ‘행복 목욕탕’으로 배우 미야자와 리에를 처음 만난 관객들은 그녀가 한때 일본 최고의 미녀였으며 약관 18세의 나이에 누드집을 발간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를 강타한 최고의 스타였다는 것을 믿기 힘들 것이다. 미야자와 리에는 1973년생으로 네덜란드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최고 전성기의 하이틴 스타로 군림하다가 약혼과 파혼에 얽힌 자살소동 등 개인적인 사생활의 문제로 활동을 중지하고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서서히 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었다.
2003년에 찍은 ‘황혼의 세이베이(たそがれ清兵衛)’로 일본아카데미상 최우수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재기에 성공한 미야자와 리에는 2017년 ‘행복목욕탕’으로 다시 한 번 일본아카데미 최우수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의 영화팬들에게 그 이름과 얼굴을 단단히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대개의 한국 사람들은 이혼과 재혼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내 아버지에게 다른 자녀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불쾌해하며, 계모와 생모의 문제는 남과 혈육의 차이라고 할 만큼 선을 그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한국은 핏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혈연중심의 사회였고, 그러한 도덕적 관념들은 시대가 몇 번을 변해온 지금까지도 불문율의 법칙처럼 이어져오고 있다. 그래서 ‘행복 목욕탕’은 가장 따뜻한 영화이면서도 한국인들에게는 조금 불편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속의 인물들은 인연과 우연이 겹쳐 가족이 되었고, 그들에게는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사랑하고 소중한 순간들이다. 이것은 꼭 피를 나눈 혈육만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박혀있는 관객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파행적인 모습이고 가짜 사랑처럼 보일 수도 있다. 버린 것도 괘씸한데 그 이유는 필요치가 않다.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더더욱 파렴치하다. 그래서 트집을 잡는다. 영화니까. 참 영화 같은 얘기네.


그러한 사람들에게 사실은 영화보다 우리가 사는 것이 더 영화 같고 그래서 이 영화는 진짜 사람들의 진짜 얘기를 담고 있는 실화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보다 더 아프고 더 괴로워도 참아냈던 사람들이 있다고. 그것이 바로 우리 어머니들이라고.
왕따인 자식을 위해 엄마가 해 줄 것은 이겨내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엄마는 우리에게 모질었던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나가는 법을 깨우쳐주려 하셨다. 친구와 싸우면 학교를 안가고 문제가 생기면 거짓말을 하고 현실에 부딪히면 포기부터 하는 못난 자식들에게 우리 엄마가 남김없이 부어주었던 사랑, 그 사랑의 온도가 뜨거운 목욕물을 데울 수 있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의 흔적. 행복 목욕탕. 엔딩에서 흐르는 밴드 버섯제국(きのこ帝国)의 사랑의 행방(愛のゆくえ)이라는 곡의 여운이 두고두고 남는다.


장수상회 (Salut D’Amour, 2014)
박근형, 윤여정, 조진웅 주연. 강제규 감독.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찬바람에 팔 다리가 쑤실 때, 드문드문 하던 흰 머리가 유난히 눈에 뜨일 때,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영화와 노래에 얽힌 사연을 젊은 사람들은 모를 때 문득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느낀다.
강제규 감독은 1990년 초반부터 하이틴 영화 흥행작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안성기 주연의 정치 스릴러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한국형 느와르를 탄생시킨 ‘게임의 법칙’의 각본을 쓴 충무로의 기대주였다. 그가 최초로 감독한 ‘은행나무침대(1996)’는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인 한석규, 심혜진, 진희경, 신현준을 주연으로,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섰던 컴퓨터 그래픽을 선보이며 신비로운 은행나무에 얽힌 천년의 사랑을 그린 판타지역사대서사극이었다. ‘은행나무침대’는 서울에서만 약 68만 5천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1996년 한국영화 흥행순위 2위를 차지했고, 제17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촬영상, 음악상과 제32회 백상예술대상 기술상, 제34회 대종상 여우주연상(심혜진)과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90년도 이전까지 서구 문화에 잠식된 한국 지식층(을 표방하는 무리)들은 한국영화를 방화(邦畫)라고 스스로 낮추어 부르면서 한국영화와 가요를 듣는 사람들은 ‘엽전’이라고 무시를 해왔다. 이렇게 한국 사람들의 헐리웃을 비롯한 서구영화에 대한 선호 도가 극도로 높아지자, 한국영화는 스크린쿼터제도에 정해져 있는 날짜를 채우기 위해 억지 상영하는 춘향이처럼 눈칫밥 먹는 존재가 되어갔다. ‘스크린쿼터제도’란 국산영화를 보호하기 위하여 상영을 의무화하는 제도로, 우리나라는 1967년 1월 1일부터 스크린쿼터제를 실시하여 1985년 이후 한국 영화 의무 상영일수는 연간 146일로 정해졌다. 하지만 영화 ‘쉬리’ 이후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국내영화관객들의 한국영화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강제규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 ‘쉬리(1998)’는 그동안 한국영화에 쏟아졌던 무관심과 무시를 일순간에 불식시키는 대작이자 한국영화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었다. ‘쉬리’ 이후로 국내외의 한국영화에 대한 선호와 대우는 확연히 달라졌으며, 한국에서도 영화산업이 곧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낳게 했다. 그러자 곧 스크린쿼터제도의 존폐여부가 불거졌다.
1998년 미국영화협회 회장 잭 발렌티가 한국의 스크린쿼터제 폐지를 공식 요청하자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공동위원장 김지미·임권택·이태원)’를 발족하고 ‘스크린쿼터 축소 음모 저지를 위한 투쟁’을 선포하며 삭발을 감행하는 대투쟁을 시작했다.
당대 한국 영화의 원톱이었던 한석규와 잊혀졌던 꾸숑 최민식을 주인공으로 애절한 주제가 ‘When I Dream’을 유행시키며,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송강호가 유일하게 실패한 영화로 기억 되는 ‘쉬리’는 이처럼 굴곡 많은 영화인들의 한을 안고 있는 영화였다.
이후로도 ‘태극기 휘날리며(원빈, 장동건 주연. 2004)’, ‘마이웨이(장동건, 오다기리 죠 주연. 2011)’ 등의 굵직한 전쟁영화들을 연출했던 강제규 감독이 내놓은 2014년 작품 ‘장수상회’는 거친 전쟁터에서 이제 막 돌아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엉엉 우는 거친 사내의 들썩이는 어깨를 보는 듯이 감회가 어리는 작품이었다.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순수한 연애이야기. 그리고 그 남자와 함께 걸어주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사랑이란, 우렁각시처럼 뒤에 숨어서 가만히 나를 지켜주는 가족이라는 이름이었다.
감독 강제규의 필모그래피를 읽어 보노라면, 그의 삶의 여운이 느껴진다. 현란한 판타지에서 장대한 역사극에서 전쟁터에서 그리고 이제 그가 찾은 곳은 가족, 내 집. 그래서 가슴이 더 뭉클해지는 영화, ‘장수상회’이다.


기쿠지로의 여름(菊次郞の夏. 1999)
기타노 다케시, 세키구치 유스케 주연. 기타노 다케시 감독.

지난 가을 일본의 서점가는 70대 노배우의 연애소설의 열풍에 휩싸여있다. 기타노 다케시가 2017년 9월 발간한 소설 ‘아날로그’는 발표 3주 만에 10만부가 판매되었다. 영화 ‘하나비(1997)’로 베니스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기타노 다케시는 ‘소나티네’, ‘아웃레이지’등을 연출한 명감독이자 작가, 화가, 코미디언, 제작자이다. 그의 작품 ‘하나비’는 일본 영화 최초로 국내에서 공식 상영 된 작품이기도 하다. 처절하고 쓸쓸한 블루색을 보여주었던 ‘하나비’와 달리 1999년 작품 ‘기쿠지로의 여름’은 초록 잎사귀에 맺힌 이슬처럼 청명하게 푸르른 파란 색감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전 작품부터 함께 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영화의 아름다운 배경 속에 쪽빛 물감을 들인 것처럼 혼연일치가 되어 어우러지며 특히 메인 테마 ‘Summer’는 많은 방송매체의 BGM으로 사용되면서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기타노 다케시는 비정한 야쿠자의 세계의 폭력성을 그릴 때도, 외톨이가 된 경찰의 불운한 최후를 그릴 때도 늘 가족을 그리워하는 최후의 순수성을 내재시켜왔다. 그의 이러한 외로움의 고백 같은 영화가 ‘기쿠지로의 여름’이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는 가족여행을 떠나고, 학교의 축구교실마저 휴교하는 여름방학.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의 친구는 노랗게 물들인 머리와 험악한 말투와 달리 혼자가 된 아이를 염려해주고 여비와 보호자를 만들어준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꼬마가 엄마를 찾아 떠나는 낯선 길에 동행하는 퉁명스러운 아저씨와 함께 했던 그 여름의 여행은 어쩌면 그 아저씨-혹은 기타노 다케시-가 기억하는 먼 추억속의 자신의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사는 것이 아무리 괴롭고 힘들더라도 내 어머니만큼은 아니겠지, 내 어머니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나도 이제 철이 들어간다는 증거인 동시에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수많은 애증과 미묘한 갈등 속에 서로 힘들어 했어도 결국 나의 가족이란 원망이 아니라 이해이며 따지고 드는 원리원칙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어느덧 내 부모의 나이에 와서 서 있는 것이다.

시려운 손을 부비며 아랫목에 밥그릇을 넣어 따뜻한 온기로 데워주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차가운 손을 잡아보고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진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가족, 그 사랑의 기억이 모든 이의 차가운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되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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