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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근 Mar 16. 2024

자기 수용과 사랑에 대한 고찰.

북리뷰 :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릴리는 자신이 속했던 세상을 피해 또 다른 세상을 만들었지만 그녀의 자손들은 결국 다시 그녀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야기는 편지로 시작한다. 릴리가 만든 마을의 후손인 소피는 자신과 같이 조만간 성인식을 치를 데이지에게서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데이지는 곧 있을 성인식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성인식을 치르기 위해 지구로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마을의 시초인 릴리가 꿈꾸던 유토피아에서 태어난 소피와 데이지. 불행도 슬픔도 시기와 질투, 그리고 차별도 없는 아름다운 그곳에선 특별한 의식을 치렀다. 마을의 성인으로서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모두 지구를 방문하고 와야 했다. 모든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데이지는 이 성인식의 의미를 너무 궁금해했다. 그리고 지구로 향했던 몇몇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았는지도 궁금해했다. 돌아오지 않았던 순례자 중 한 명이었던 올리브. 릴리의 첫 번째 딸. 그녀가 지구에 남은 이유 또한 궁금해했다.

 짧은 글에서 김초엽 작가는 지금 우리의 세상과 다름없을 미래의 세상을 매개 삼아 현재를 보여준다. 더 우월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들의 분리. 그 경계가 더 명확히 드러나게 된 세상에서 개인이 사랑을 위해 고통이 가득한 세상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 모습을 그녀는 이 짧은 글 안에 담아낸다.


 이 글을 읽으며 두 가지 측면으로 이야기해보고 싶다. 첫째는 받아들여지는 것의 의미란? 두 번 째는 사람에게서 사랑이란 것의 의미란?  

 첫 번째부터 이야기해본다면 아마 모두 다 그런 본능은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 모습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욕망. 하지만 동시에 이런 욕구는 개인이 결핍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 결핍이 릴리의 얼굴에 난 흉처럼 확연히 눈에 띄는 것이라면 쉽게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이기도 하다. 글 속의 릴리는 이 욕구가 컸다. 남들보다 월등히 우월한 장점들이 있었음에도 그녀는 그녀만의 결핍에 사로잡혀 세상을 증오하며 바꾸려 하다 결국은 도피했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딸이 있는 그대로 받아 드려 질 수 있는 세상을 따로 만들어 버렸다. 나에게 릴리는 세상을 증오하면서도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받아드려 지길 원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래전 금지된 우생학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 우월한 존재들을 많이 탄생시켰고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바이오해커가 되었다. 하지만 결국 또 다른 허탈감이 그녀를 지배한다.

 아이를 가지게 된 릴리는 지금까지와 똑같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아이를 바꾸려던 중 자신과 똑같은 결점을 가진 배아를 보고 딜레마를 겪게 된다. 그 아이를 통해 자신을 보던 그녀는 결국 세상에서 받아드려 지는 것을 포기 하고 자신만의 또 다른 세상을 만들었다. 자신과 자신의 아이를 위해. 올리브를 위해서.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세상을 만든 목적인 올리브는 결국 릴리의 마을을 떠나 지구에서, 릴리가 평생을 배척받은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릴리의 삶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그녀가 바랬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부족해서 릴리는 자신이 태어나면 안 되는 존재라 생각하였을까? 그녀는 부유했고 똑똑했다. 세상을 바꿀 정도의 실질적 능력이 있는 인물임에도 그녀 스스로는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과연 릴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세상이었을까? 아니면 릴리 자신이었을까?

 우리 모두 그렇게나 받아들여지길 원한다. 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때로는 대놓고 때로는 암묵적으로 타인을 탓하지만, 정작 돌이켜 자신을 인정하지 않던 이는 다른 아닌 자신이라는 게 얼마나 고독한 건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릴리처럼.   


그리고 두번째로 올리브는 고통이 가득하고 지독히도 차별받을 지구로 돌아갔다. 오로지 연인인 델피를 위해서.

 의구심이 들었다. 과연 사랑이란 무엇이기에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가? 얼마나 강한 것이기에 완벽히 행복한 마을을 떠나 스스로 고생할 것을 알면서도 올리브는 델피의 곁으로 갔는가? 우리는 현실을 알기에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들 그것이 항상 보답받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순례자들도 환경이 달랐던 거지 바보는 아니었기에 다들 이것을 인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리브는 돌아갔다. 그리고 몇몇의 순례자들도 올리브처럼  자신의 사랑을 위해 지구에 남기로 결정했다. 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랑하기 위해서.  

올리브의 선택에 대한 나의 솔직한 첫 반응은 이것이었다.

“이렇게나 순수한 사랑은 어리석다.”

 충동적이고 계산이 서지 않고 대부분은 일시적인 감정에 의해 결정이 된다. 보답받을 확률 또한 너무 희박하고 사랑을 하는 동안은 자기 파괴적인 순간들의 연속이다. 이런 점들을 다 고려해 본다면 사랑이란 건 괴로운 거다. 그리고 만약 보답받지 못한다면 사랑이 끝난 후 그 뒤에 밀려오는 허무감은 불타오르던 시간 때보다도 더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  

하지만 다시 한번 올리브의 선택에 주목해 본다. 평안함만 있는 릴리의 마을 떠나 고통의 지구에서 더한 행복을 찾은 순례자들을 생각해 본다.

 지구의 고통에도, 델피의 변심이라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우주를 건너간 올리브. 솔직히 나에게 사랑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기에 아직 너무 어리숙하고 무지하다.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은 나에게 사랑이란 너무 흔하면서도 신기루 같은 무엇 가이다. 하지만 올리브와 순례자들을 보며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고 내던지는 모습을 생각해 본다. 온전히 사랑에만 집중하고 싶고 사랑하는 이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어하는 그 욕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다. 자신이 각자 가지고 있는 결핍과 나보다 우월한 사람들이 판을 치는 것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너무 쓸데없이 상처받는 것에 겁을 먹어 괜한 의심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모든 걸 다 내던지고 그 따듯한 순간을 즐긴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닐 텐데. 올리브의 순수한 마음을 보며 가끔 난 사랑하기에 너무 야박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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