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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근 Apr 27. 2024

검은 바다_1

 

 발아래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하늘엔 먹구름이 끼었고 피부에 닿는 공기는 축축했다. 곧 있으면 비가 올 듯하다.

 “젠장, 이 섬의 일기예보는 맞아 들은 적이 없다니까.”

 언제쯤 비가 내릴까 위로 손을 뻗어 보니 미세하게 빗방울이 느껴졌다. 언제 또 비가 올지 몰라 얼른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스읍

 하아-

 회색 빛 담배 연기가 허공을 가로질러 피어오른다. 그리고 연기 너머로 절벽 아래의 검은 바다가 있다.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바다. 많은 곳을 여행해 보았지만 이렇게 기분 나쁜 바다는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물속에 무언가 숨어있는 기분. 그것이 모습을 감춘 채 기회가 되면 언제든 나를 낚아챌 준비를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절벽에 다가서면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스읍

 하아-

 바다를 주시하며 다시 담배 연기를 입으로 빨아드렸다. 그 까만 물속에서 무언가 나를 마주 보고 있다고 느끼며.


 “비가 또 한 바탕 내리려는가 보네. “

 로비에 들어서자 호스텔의 주인 할아버지가 흠뻑 젖은 나에게 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제 때에 필요한 것을 건네주는 그의 세심함에 미소가 지어졌다.

 “말도 마세요. 담배 한 개비 피는 사이에 갑자기 우후죽순으로 쏟아져서는, 이곳은 원래 이렇습니까?”

 빗물을 닦아내며 투정을 부리자 어느새 커피 바에 들어간 할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었다.

 “화낸다고 무슨 소용이겠는가. “

 “저는 어르신만큼 대인배는 못되나 봅니다.”

능글맞게 대답하자 그는 다시 웃음으로 답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하얀 턱수염. 그에 어울리는 회색 후드 티를 입고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있는 그를 보면 이 시골 같은 섬의 여관 주인이라는 걸 가끔 깜박하게 된다.

“이리 와, 커피로 몸 좀 녹이게.”

 그의 권유에 커피 바로 다가갔다. 한 걸음 뻗을 때마다 바닥에서 나무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오십 년도 더 되어 보이는 이층짜리 낡은 여관. 워낙 왜진 섬인 데다 그곳에서도 도시와 떨어진 외곽 지역에 위치한 호스텔이었기에 손님은 나와 그의 손녀딸 밖에 없었다. 계획대로라면 섬 반대편의 마을에서 묵을 예정은 없었지만 섬에 도착한 당일부터 예고에 없던 비폭풍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가려던 목적지는 차로 5 시간이나 운전해 가야 했다. 꽤 되는 거리이긴 했지만 빗길 운전을 안해본 것도 아니니 괜찮을 줄 알고 자동차에 시동을 켰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이 곳의 날씨를 얕잡아 봤던 걸 후회하게 되었다. 낙후된 섬이어서인지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길은 험해졌고 앞의 시야는 누가 차에 물을 들이붓듯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자칫 잘못했다간 큰 사고가 날까 염려되기 시작하려던 찰나 운 좋게 이곳 여관의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단 생각에 표지판을 따라 샛길로 몇 분 정도 운전하니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오래된 여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혹시 방 있습니까?]

 비에 쫄딱 젖은 채로 호스텔에 들어섰을 때 그는 로비 한쪽의 벽난로 근처에 앉아 손녀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주인장은 이런 궂은 날씨에 손님이 올 것을 예상하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어서 오세요. 여기, 이곳에서 몸 좀 녹여요. 금방 닦을 걸 줄 테니.]

 준비되지 않는 상태였음에도 다행히 그와 그의 손녀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급조로 들어온 숙소였기에 다음 날 날이 밝으면 바로 떠나려 했건만 변덕스러운 폭풍은 멈출 줄 모르는 듯 더욱 심해졌다. 이런 날씨에 섬에서 운전하는 건 좋지 않다던 주인장의 말에 결국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만 머무르기로 했다.

 그날 이후로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한적하고 한가로운 여관에서 친근한 사람들 덕분에 생각보다 좋은 시간이 되었지만 그동안 이곳에 머물며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날씨였다. 당연히 폭풍우가 기분 좋진 않지만, 섬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왠지 묘한 인상을 주었다. 빗줄기가 옅어지는 듯 보여 내가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면 주인장 어르신은 위험하니 조금만 지켜보자 하였다. 그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내가 바로 짐을 내려 놓으면 누군가 그 말을 엿듣기라도 한 듯 비가 다시 무섭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인장이 이곳 사람이니 변덕스러운 날씨를 잘 안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이젠 비가 옅어질 때면 무언가 나를 밖으로 유인해 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문 밖에서 누군가 손 짓하며 여관 밖으로 나오라고 부추기는 것처럼.

 하지만 이미 닷새가 흘렀다. 더 이상 여행을 지체할 순 없었다.  

 “자네, 꼭 오늘 가야 하나? “

 “네. 가야죠. 사실 돌아가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마음이 초조해요.”

 내가 커피를 마시며 말하자 그는 걱정스러운 듯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일도 중하지만 이런 빗 길에 무슨 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저도 걱정되긴 합니다만, 특별히 조심해서 운전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

 안심시키려 웃으며 말해도 그의 미간의 주름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아직 신경 쓰이는 무언가 남은 듯 보였다.

 “삼촌 가는 거야? “

 그때 우리의 대화는 이층에서 눈을 비비벼 내려오던 베니로 인해 끊겼다.

 “베니, 못 보고 가는 줄 알고 서운 할 뻔했어. 응. 삼촌 가야 돼. 안 그러면 삼촌 사장님이 이 놈 할지도 몰라.”

 떠나기 전 밝은 모습만 보여주려 어색한 농담도 해봤지만 그새 정이 많이 들었는지 예닐곱 밖에 안된 아이의 눈이 촉촉해지는 것이 보였다. 베니가 좀 있으면 투정 부릴 것을 염려했는지 주인장은 얼른 베니를 들어 올려 손녀를 달래었다.

 “베니, 삼촌도 이제 가야지. 그래야 다음에 또 올 수 있지.”

 이게 아이를 가져본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인가. 할아버지가 달래자 베니는 울 것 같은 표정을 그치며 금세 ‘몇 밤 자고 와?‘ 하며 주인장에게 매달렸다. 베니의 투정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자 그는 내 쪽을 보며 말했다.

 “베니를 봐서라도 나중에 꼭 한번 들려주게나. “

 “네, 당연히 그래야죠. 어르신도 뵙고요.”

 다정한 부탁에 미소로 대답했다.

 “그리고…”

 주인장은 가까이 다가오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점점 심각해졌다.

 “자네에게 당부할 것이 있네.”

 바로 앞까지 온 그는 나에게 몸을 밀착시키며 내 귀에 속삭였다.

 “절대로, 마나오를 불러내서는 안 돼.”

 


 마나오.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건 이곳에 묵은지 사흘이 지났을 때였을 것이다. 전 날보다 빗줄기가 창문을 훨씬 거세게 내려치는 밤이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좀 더 머물지 않겠냐던 주인장의 말에 응한 그날 저녁, 바에서 그와 함께 위스키를 마시며 그와 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여관을 운영하신 지 얼마나 되신 겁니까?]

 [내가 운영한 건… 한 20년쯤 됐어. 이곳의 나이는 반세기를 넘었고.]

 아버지 때부터 운영해 온 이 여관을 이어받은 그는 이 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다. 왜 하필이면 도시가 아닌 숨겨진 절벽 위에 여관을 세웠는지 묻자 본디 이 여관 근처엔 마을이 있었다고 말했다. 원래는 이 섬의 토착민들이 무리 지어 살던 곳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섬 밖의 새로운 이주자들도 섞여 들어 전성기 때는 마을의 규모가 꽤 컸었다고 한다. 주인장의 할머니도 이곳 토착민 여성이었고 새로 이주온 할아버지와 만나 자신의 아버지를 낳았다고 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날씨 때문에 주변이 잘 안 보인다고 해도 그런 마을은 보지 못했는데요.]

 […. 당연하지. 마을은 이제 없다네.]

 [그렇습니까? 아쉽네요. 다들 큰 도시로 이사 갔나 보죠?]

 [아니, 사라졌어. 그것도 하루 밤만에.]

 [네?]

 그의 말에 당황하며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주인장은 덤덤한 표정으로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옅게 중얼거렸다.

 [마나오였어. 다 마나오가 데려갔어.]

 ‘마나오. 또 마나오 인가.’

 가끔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곤했다. 친절하고 상냥한 그였지만 혼자서 창밖을 보며 중얼거리는 걸 몇 번 보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두려움에 굳은 표정을 지으며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하곤 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라든가, ‘잡아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왜 또 이러는 거냐.‘ 라며 마치 그곳에 무엇이 있기라도 하듯 절벽 너머의 검은 바다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럴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왔던 그 단어. 바로 마나오였다.

 마침 그가 언급도 했겠다, 궁금했던 걸 물어보려 하였지만 때 마침 벽난로에서 놀던 베니가 지겨워하며 할아버지에게 와 어리광을 피웠다.

 [할아버지, 나 심심해. 옛날 이야기 해줘.]

 [베니, 미안하구나. 너무 혼자 내버려 뒀지?]

 그는 손녀를 무릎에 앉치며 다독였다.

 [어디 보자,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그는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하더니 나를 보며 손녀에게 말했다.

 [베니, 마침 삼촌에게 할아버지 고향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마을에 소년 이야기를 해줘야겠구나.]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하자 배니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주목했다. 그의 눈빛을 보고 드디어 마나오에 대한 비밀이 풀리겠단 생각이 들었다. 기대에 가득 찬 베니 못지않은 눈빛으로 나도 주인장이 입을 떼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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