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물리학', '법학' 같은 영역은 학생들이 이해하기에는 그 시작부터 벽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다소 차가운 용어들, 익숙하지 않은 사고 방식, 그리고 3000자에 달하는 긴 지문 속에서 학생들은 혼란스러워하고, 곧 지쳐버린다. 처음엔 그게 다 지문이 어렵고,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중요한 개념은 다시 풀어 설명하고, 어려운 문장은 예시를 들며 최대한 쉽게 전달하려 애썼다. 그런데도 수업 중 졸고 있는 아이들의 수가 줄어들지 않았다. 교실은 점점 조용해졌고, 나는 점점 더 무기력해졌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을 향한 시선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왜 이 아이들은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라는 물음 대신, ‘이 아이들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닐까?’라고 바꿔본 것이다. 이미 아이들은 질문할 수 있는 존재를 곁에 두고 있었다. 나는 교실 안의 인공지능을 이전과는 다르게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이자, 교사가 미처 손이 닿지 못하는 곳에 닿아주는 또 하나의 손처럼 느껴졌다. 한 학생은 경제학 지문을 더 잘 이해하려고 NotebookLM을 활용해 핵심 내용을 팟캐스트로 바꿔 들었다고 했고, 또 다른 학생은 ChatGPT에게 질문을 던져가며 낯선 개념들을 차근차근 이해해나갔다. 교실 밖에서도 그들은 배우고 있었다. 단지 그 교사가 ‘나’가 아닐 뿐이었다.
하지만 교사의 역할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더 섬세해졌다. 진로 지도를 하며 자기소개서나 면접 준비를 돕는 과정에서, 나는 인공지능을 하나의 ‘거울’로 삼기로 했다. 학생이 직접 작성한 글을 ChatGPT의 답변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며, 어떤 점이 개인적이고 개성적인지를 함께 찾아나갔다. 놀라웠던 건, 학생들이 AI의 답변을 단순히 ‘정답’이라고 여기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다시 재구성해내는 모습이었다. 생성된 문장 위에 자신의 이야기를 덧칠하며, 하나의 새로운 목소리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비교’와 ‘해석’의 과정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학생의 생각이 얼마나 독창적인지를 함께 발견해주는 일, 기계가 채워주지 못하는 온기를 그 문장에 불어넣어주는 일이었다. 비로소 나는 ‘내가 여기에 있어도 되는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인공지능이 학생을 도와줄 수는 있어도, 그 도움을 의미 있는 배움으로 바꾸는 일은 여전히 교사의 몫이었다.
이제는 에듀테크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오히려 교실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면 좋을지를 매일 고민하게 된다. AI는 어느새 교실 안의 또 다른 '존재'가 되었고, 학생과 교사 사이에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두려움이 아닌, ‘기계가 인간 사이의 대화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관찰로 이어진다.
나의 수업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어떤 날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도 교탁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기도 하고, 아이들의 무표정한 얼굴 앞에서 마음이 작아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 수업을 시작할 수 있는 건,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다. 내 옆에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존재가 있고, 그 존재는 아이들과 나 사이에 또 다른 형태의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우리는 서로 다가가려는 방식도, 배우려는 속도도 다르지만, 그 사이를 천천히 메워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어쩌면 인공지능은 교사를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더 깊이 만나게 해주는 다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앞으로도 이 다리를 건너며 아이들과 계속 대화할 것이다. 완벽한 답을 찾기보다는, 오래도록 함께 질문할 수 있는 교사로 남고 싶다. 그리고 그 긴 대화의 끝에서, 문득 교탁에 앉아 있던 나 자신도 조금씩 배우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