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교실, 조용하지 않은 질문들

by 신원

고등학교 3학년 ‘독서’ 수업을 할 때면 자주 멈칫하게 된다. 어느새 수업의 시작과 함께 내 안에 쌓여가던 고민들도 함께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번 지문은 조금은 덜 어렵겠지’, ‘오늘은 아이들이 덜 지쳐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교탁에 서지만, 막상 마주하게 되는 건 각자의 생각으로 조용히 잠긴 아이들의 표정이다.

‘독서’ 교과서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각 분야를 대표하는 지성의 목소리다. 인류가 오랜 시간 축적해온 지식의 결정체이고, 실제로 수많은 아이디어와 발견이 담겨 있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론이 담겨있는 글들은 대체로 아이들에게 너무 높은 벽처럼 다가온다. 추상적인 개념, 낯선 어휘, 논리적인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점점 집중력을 잃고, 몇 줄을 읽지 못한 채 ‘이건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숙인다.

수업 중에 조는 아이들이 많을수록 나의 자존감은 조용히 가라앉는다. ‘이 아이들이 이토록 졸린 이유는, 내가 아직도 잘 가르치지 못해서 아닐까.’ 쉬운 단어로 다시 설명하고, 도표를 그리고, 핵심만 추려 이야기해보아도,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는 듯한 얼굴 앞에서 나는 또 다시 마음이 무너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시도하는 건, 어쩌면 학생들을 위한 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사로서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한 버티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단지 설명을 쉽게 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학급 안의 문해력 격차는 해마다 심해졌고, 같은 교과서를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혀 다른 언어로 수업을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문장을 읽는 속도도, 이해하는 방식도, 질문을 떠올리는 방식도 전부 다 달랐다. 하지만 그 각각의 속도에 맞춰 수업을 설계하거나, 모두에게 맞춤형 피드백을 주는 건 교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찾아와 질문하는 학생들은 극히 일부였다. 대부분은 조용히 참고 넘기거나, 자신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더라도 애써 감추곤 했다. 질문을 드러낸다는 건 ‘나는 모르겠습니다’라는 말과 같으니까. 게다가 교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망설이다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지나가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3학년인 큰딸이 학교 과제를 하면서 국어 교사인 엄마에게는 묻지 않고, 인공지능에게는 자연스럽게 질문하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우리 반 아이들도 어쩌면 이미 나보다 인공지능에게 훨씬 더 많은 질문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교실 안에서 내가 지식을 더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는 것은 자명했다. 아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배우고 있었고, 그 곁엔 내가 아닌 또 다른 존재가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깨달음은 나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교사인 내가 아이들에게 반드시 모든 것을 직접 설명해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이 아이가 인공지능의 도움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로 질문의 방향이 달라졌다.

3학년 담임으로 진로 지도를 하면서, 나는 학생부 종합전형을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정리한 자료를 기반으로 인공지능과 대화해보게 했다. 예상 질문을 얻고, 스스로 대답해본 뒤, 인공지능이 생성한 모범 답변과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의 핵심은, 두 텍스트의 ‘다름’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특히 어딘가 어색하고 부족해 보일 수 있는 ‘자기 말’ 속에야말로 그 아이의 경험과 개성이 담겨 있다는 점을 스스로 깨닫도록 돕고 싶었다.

학생들은 생각보다 훨씬 잘 해냈다. 모범 답안을 무작정 따라 적지 않고, 자신이 쓴 문장에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은 더 좋은지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언어를 다시 써보고, 수정하고, 덧붙이고, 지웠다. 인공지능이 제시한 자료 위에 자신의 시선을 덧입히는 그 과정을 나는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때 비로소, 인공지능은 경쟁 대상도 아니고, 교사를 대체하는 존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 사이에서 나는 아이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마주보며 설명하는 교사와, 거리를 둔 채 질문하는 인공지능 사이 어딘가에서, 아이들은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이후 나는 이 관계를 학급 전체로 확장해보기로 했다. 올해는 학기 초부터 각자 하루의 작은 목표 하나씩을 정하게 하고, 그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온라인 공간을 마련했다. 단지 시스템을 만들어두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하나의 글에 짧은 댓글이라도 반드시 달았다. 무심히 흘러가는 하루였을지라도, 누군가가 그것을 읽고 있다는 감각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은 다시 자신을 다잡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선생님이 매일 댓글을 달아주셨기 때문”이라는 문장을 보며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또 다른 학생은 “다른 친구들의 꾸준한 모습을 보며, 허무하게 흘려보낸 나를 반성하게 됐다”고 적어두었다. 나는 그 글을 읽고 오래도록 화면을 닫지 못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가며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엄청난 기술이나 거창한 시스템이 아니라, 서로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슨한 연결감이라는 것을.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도구가 생기면서, 오히려 나는 인간적인 감각으로 더 돌아가게 된 셈이었다.

이제 나는 다시, 매일 아이들과 질문을 시작한다. 완벽하게 알려주기보다는 함께 헤매는 방식으로, 단번에 정답을 주기보다는 조금 더 오래 돌아가는 방식으로. 그리고 그 사이에 어쩌면 아주 자연스럽게, 인공지능이 놓여 있기도 하다.

기술은 점점 정교해지겠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눈빛을 읽고, 조용한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는 일은 사람의 몫일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대로 교사로 남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과 나 사이의 그 조용한 질문들이, 쉽게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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