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사회화, 국회 토론회, 영 케어러
이번주 돌봄의 사회권 보장에 관한 국회 토론회에 가족돌봄청년 당사자로 참여했습니다.
토론문을 작성하며 머뭇거린 지점에서 든 생각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토론회는 '돌봄'이 사회적 의제로 다루어지고, 특히 그 논의가 입법과제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다만 바쁜 국회의원들이 이를 위해 2시간 내내 집중해서 경청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였습니다(물론 자리를 지키는 분들도 몇몇 있었고, 추후 논의가 명료하게 잘 정리되고 전달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사회적 문제를 귀담아듣고 입법화해서 적재적소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는 일련의 일들이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토론회 당일만 해도 여러 개의 회의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호소와 주장이 치열하게 오가고 있었으니까요.
지난 15년 동안 주돌봄자로서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받기 위해 전투적으로 싸울 때도 있었고, 그런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을 때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이겠거니..' 하며 스스로 감당하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누군가에게 이러한 일에 대해 불평하면 상대는 물었습니다.
"그래서 너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뭔데?"
"..."
쉽게 답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돌봄 영역에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한 부분의 논의를 구체화하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신선하고 창의적인 대안을 찾지 못했습니다. 사고가 닫히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돌봄을 사적으로 해결하는데 익숙해진 탓이고, 또 하나는 제가 주장을 했을 때 반대편 논의에 반박할 근거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먼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보다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각종 돌봄서비스의 통합과 전면적인 개정이 필요합니다. 현재 제가 활용하고 있는 장애인 활동 지원서비스의 경우, 이미 돌봄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에게 보호자가 존재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급여를 산정하기 때문에 활용 가능한 시간이 매우 부족하고 무엇보다 실제로 주어진 급여에서 돌봄자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추가급여 지급 항목을 추가하는 등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며, 나아가 가족 동거 여부와 상관없이 돌봄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에게 급여 및 서비스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토론문에서 장애인 활동 지원서비스의 제도적 한계를 지적하며 가족 동거 여부와 상관없이 중증장애인에게 돌봄을 지원하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취지를 떠올렸습니다. 한 사회에서 장애인이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활동을 돕는 것이며, 그 활동을 지원하는 제도의 목적은 장애인의 사회활동 참여 격려인 동시에 가족들의 돌봄 부담 경감이라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제도의 본 취지는 장애인을 위한 전인적 돌봄 서비스가 아닌 것입니다. 보호자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24시간 돌봄을 지원하는 저의 주장은 장애인의 주체적인 삶과 연립을 향한 방향성, 그것을 격려하는 움직임과 충돌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두 번째로, 저는 2022년 영 케어러로서의 당사자 경험과 가족돌봄청년의 돌봄 경험을 토대로 학위논문을 작성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청년이 가족을 부양하면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사회적 공백기를 돌봄 경력으로 인정하자는 ‘돌봄경력인정’ 에 대한 제안했습니다. 돌봄 경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인정받고 또 하나의 경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 가족돌봄청년의 사회 진입 문턱을 낮추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서울시 성동구에서는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 경험을 사회적 자산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취·창업을 위한 기업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실질적인 노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용 친화적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채용과정에서 돌봄자를 대상으로 가산점을 주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가족돌봄청년, 돌봄자의 사회진입과 취업 시 가산점을 부여하거나 인센티브를 주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이에 대해 저와 가장 친밀한 친구는 그 제안은 또 다른 역차별이 아닌지에 대해 반문했습니다. 아마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청년 취업의 답답한 현실을 고려한 얘기일 것입니다.
경제학자 '낸시 폴브래'는 그의 저서 <보이지 않는 가슴(The Invisible Heart)> 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대표되는 경제학의 주류 이론이 간과해 온 돌봄의 비시장적 가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돌봄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한 축이며 돌봄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상과 사회적 인정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나아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돌봄의 사회적 재평가가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돌봄의 사회화를 통해 돌봄의 가치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이번 토론회에서 돌봄은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주고받으며, 청년들 역시 충분히 부담할 수 있는 것임을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돌봄으로 인해 한 청년의 삶이 파괴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단한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할 책임인 것입니다. 적어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안에서 그 의견만큼은 합의를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명쾌한 답을 할 수 없는 물음 앞에 더 나은 근거를 찾기 위해 공부하고,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