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든지 여행처럼 : 청주 여행기
여행의 이유(김영하, 문학동네)를 읽고
나는 청주 소재의 대학교 학생 즉, 청주라는 도시를 n년째 여행하고 있는 여행자이다.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인데, 여행자라고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에서 나온 '여행기'의 의미로 대신 대답하고자 한다. 여행기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내가 청주에 처음 왔을 때는 대학교 면접날이었다. 시험에서 생각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서 어떻게 보면 '점수에 맞춰서 쓴' 대학이었고, 부모님이 이 학과를 써보라는 오랜 설득 끝에 떠밀리듯이 내려온 청주였다. 면접일이 평일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다 보니까 학교 주변에 열려 있는 상점도 많지 않았고, 안 그래도 내가 흔히 상상하던 (서울의) 대학가나 도심과는 거리가 멀었던 대학교 근처의 거리는 그 당시 추운 날씨와 더불어 더욱 황량해 보였다. 그날부터 청주는 나에게 4년 동안 무사히 대학교를 다녀 졸업장을 받고, 궁극적으로는 초등 교사가 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청주로의 여행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평일에는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본가에 돌아왔다 다시 수업을 들으러 청주로 내려가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새내기로서의 흥분이 조금씩 가라앉을 때쯤 사람들이 대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쯤은 느꼈을 법한 '슬럼프'가 닥쳐온다. 다른 전공을 선택한 고등학교 친구들은 두꺼운 전공 책으로 '대학교 다운'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큰 스케치북과 한삼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비교가 되었다. 나의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다 보니 대학교라는 공간도 의미 없게 느껴지고, 다른 학생들은 이 학과에 진학하면서 진로가 뚜렷했는데(뚜렷해 보이거나) 나만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아 위축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비교는 점점 나를 더 우울함에 몰아넣었고, 결국에는 청주가 싫어지기에 이르렀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서울의 대학가를 즐기고 싶었고, 공강에는 한강에 가서 치킨을 먹는 대학 생활을 하고 싶었다. 청주에서 4년 동안이나 지낼 자신이 없었다. 나를 본가의 가족들 그리고 서울의 친구들로부터 분리하는 청주가 싫었다.
청주에서 외로웠고, 청주가 싫었는데 아이러니하게 이렇게 힘들었던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은 청주에서 새롭게 만든 인연들, 나의 동기들이었다. 그냥 착실하게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해야지라고 마음먹었는데, 어느새 나는 동기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그들과 함께 과제를 하고 있었다. 수업 중간중간 학교 카페를 함께 가기도 하고, 시간을 내어 청주의 맛집과 카페를 함께 찾아가기도 했던 그들이었다. 청주라는 곳에서 처음 시작되었던 이 인연은 청주라는 공간을 벗어나 다른 지역, 넓게는 다른 나라로까지 이어졌고, 이러한 인연이 앞으로 얼마나 더 다양한 모습으로 뻗어 나갈지 그 순간들이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내가 청주로의 여행에서 예상치 못하게 얻은 것은 이런 인연이었다.
또한 청주에서 지내면서 나는 나에 대해서 더 알아갈 수 있었다. 여행기의 묘미는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겪으면서 주인공이 스스로를 알아가고, 성장해 나가는 그 과정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청주라는 공간은 지난 고등학교까지의 학창 시절과 내 가족을 비롯한 나의 동네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주기 이전에 나는 스스로를 소개해야 했고, 생활기록부에 적기 위한 용도의 진로가 아닌 진지하게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생각해 봐야 했으며, 가족이나 친구들이 나를 챙겨주기 이전에 내가 먼저 나서서 나를 끊임없이 돌봐야 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언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어떻게 건강하게 그 감정을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해 보게 되었다. 청주에서 색다른 공간을 발견했을 때 내가 어느 공간을 좋아하는지 곱씹어 보고, 내가 스스로 찾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청주에 있었기에 할 수 있던 경험이었다.
'여행의 이유'에서는 이주와 여행의 차이는 내가 수동적으로 가게 되었는지 혹은 내가 자발적으로 가게 되었는지, 나의 태도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말하고 있다. 대학교라는 목적 하나를 위해서 이주에 가깝게 청주로 왔던 나는 이제는 청주를 여행하는 기분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어디를 가든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늘려갈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이것 또한 청주를 내가 여행하면서 알아간 것이다. 청주에 오고 나는 나의 시야가 넓어지고, 더 넓은 세상을 여행할 용기를 얻었다. 과거에는 동네 친구들에게 먼저 청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나 또한 잠깐 머물러 갈 거라는 생각, 그리고 애써 청주를 밀어내려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언젠가는 끝날 이 여행을 이왕이면 알차게 채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청주의 색다른 모습들을 소개해 주고 싶다. 청주에 애정이 조금씩 생긴다.
사실 나의 청주 여행기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게 남은 대학 생활 동안 청주라는 곳에서 또 무엇을 얻어 갈지 궁금하다. 이 여행기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일까 가장 궁금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일 것이다. 같은 곳을 여행하더라도 사람마다 본 것이 다르고, 느낀 점이 다르다. 같은 대학교를 다니고 비슷한 수업을 들어도 사람마다 청주를 어떻게 여행하고 있는지는 다를 것이다. 모두의 여행기가 각자 다른 이야기들로 아름답게 채워나가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지금 여행기 중 시련을 겪고 있는 것 같다면 이 또한 예상치 못한 여행의 묘미라는 것을, 언젠가 이 여행은 끝이 난다는 것을 알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