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강용수, 유노북스)를 읽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찾게 되는 것은 결국 철학과 인문학 책인 것 같다. 특히 철학 책을 읽게 되는 그 변화가 흥미로운데, 나는 보통의 '어린' 사람들이 그러하듯 철학이라는 학문을 지루하게 생각했고 철학 책을 읽을 바에는 자기개발서를 읽겠다는 부류였기 때문이다. 사실 철학 책도 일종의 자기개발서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옛날' 사람들의 철학 대신 '요즘' 사람들의, 즉 인스타그램에서 광고할 법한 책을 찾아 읽는 사람이었다.
이 책의 뒷표지를 보면 '상대적인 삶이 아니라 절대적인 삶을 위하여'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이 말이 딱 내가 나이를 들어 가며 철학 책을 더 찾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이야기는 보통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요즘처럼 스마트 기기도 없고, 단점이자 장점인 간단한 생활을 이어갔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내 주변 사람들을 보면 미래를 위해서 인턴을 하고, 자격증을 따고, 스터디를 비롯하여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것들을 한다. 과거의 나는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고, 나 또한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말하다시피 그러한 것들은 결국에는 없어질 것들이며, 남는 것은 나 자신 밖에 없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스펙을 쌓을 수 있을지, 남들과 건강하게(?) 경쟁하며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 등등을 다루고 있는 책에서 다시 사람 그 자체에 대해서 말하는 철학 책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남들과 비교하고 심지어 비교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조차도 남들을 신경쓰면서 하는 것을 넘어서 절대적으로 온전한 나의 삶을 휘하여.
이 책의 제목부터 '마흔'이라는 특정 연령대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나 또한 특정 연령대의 독자를 떠올리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내 나잇대를 고려하면 가까운 내 주변에서 마흔의 순간을 남기고 간 사람(들)은 우리 부모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며 나 스스로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님을 떠올리며 읽었다.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이는 나에게 어려운 일이었으며, 또다른 하나의 책을 읽는 것과 같았음을 고백한다.
되돌아보면 쇼펜하우어가 마흔이 되어서야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한다면, 나의 부모님 또한 마흔에 접어들면서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러한 변화들은 결국 인생의 후반기에 들어서며 안정기에 접어드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쇼펜하우어의 시대는 지금보다 평균 수명이 낮았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인생에서의 마흔은 현재에는 조금 늦게 찾아올 수 있다. 사실 마흔이라는 그 숫자에 집착하기 보다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느 누구라도 마주할 순간이라는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가 '마흔'이라는 연령대를 언급하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 인생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불안정하고, 새로운 변화 및 경험을 많이 할 이십대를 보내고 있다. 나도 그렇고 내 주변 이십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 책에서 언급되는 마흔, 사십대의 상황이 부럽기도 하다. 직장이 있고, 주변에 가족이 있으며 나 스스로에 대해 더 알아갈 경험들이 충분히 쌓여 있는 사십대의 상황 말이다. (힘든 부분은 건너뛰고 바로 결말을 보고 싶어 약간 그런 심보이다.)
하지만 이십대를 거쳐야 마흔이 되고, 점차 인생을 다져갈 수 있듯이 이 책에서 나온 말들을 내 인생의 선배가 해주는 조언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나아가려고 한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다양한 소재 중에서 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글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내가 마흔이 되었을 때 쇼펜하우어를 다시 접한다면 그때는 또 어떠한 생각이 들지 궁금하다.
~인간은 가깝고 친할수록 상처를 줄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결국 타인을 자신의 욕망과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자신이 바라는 모습을 강제하는 것도 폭력이 될 수 있다. _p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