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발톱
_ 엄마의 발톱
“발톱 좀 깎아주렴”
어느 날 느닷없는 박여사의 별것 아닌 부탁에 잠시 움찔했습니다.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그분에게 발톱 깎는 일이 불편하실 수도 있겠다는 걸, 사려 깊은 자식이라면 진작 눈치챘어야 하는데, 생각도 못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생각없음을 들킬까봐 아차 했던 겁니다. 그리고 발톱을 깎아달라고 자식에게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을 서럽게 여기실까봐 티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했습니다.
누구나 서로 다른 이유로 일상의 한 귀퉁이가 어느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합니다. 암세포의 공격도 넘긴 박여사는 지금까진, 물론 가끔 작은 사고는 치시지만, 본인 주도적인 삶을 비교적 잘 살아내고 있으시지요. 그래도 순간순간 일상이 비일상이 되곤 합니다. 이런저런 골절로 고생했던 나 또한 일상이 비일상이 되는 일이 순간이라는 걸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천장만 바라보며 살게 되었던 일은 우려스러운 심리적 후유증까지 남겼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팔순을 넘어 구순을 바라보는 엄마가, 그것도 오래된 관절염에 시달리다 결국은 인공관절 수술까지 받은 분이 그까짓 발톱 깎아달라고 부탁했다고, 그 상황에 과도하게 몰입하게 되었을까요. 어찌 보면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말입니다.
그분이 자신이 ‘무너지는 것’을 받아들이기 특히나 어려워할 성정이시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일 겁니다. 아직도 본인이 자식들을 위해 정리해 둬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 분에게, 그게 삶의 남은 이유이기도 한 분에게, 사소한 일상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순간과 마주치는 건 충격일 수 있고, 그것이 그분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걸 아는 자식은 그 순간을 어떻게 모면하는 것이 그나마 현명한 대처인지 판단하기가 늘 어렵습니다.
나이가 들며 누구나 하나하나씩 내려놓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당연하던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질병이나 장애로 조금 더 일찍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노년이라 불리는 시간을 사는 이라면 그런 시간은 장담컨대 반드시 옵니다. 그 과정을 얼마나 잘 살아내는지가 노년의 과업이라면 과업일 겁니다.
그 시간이 누구에게나 쉽지 않겠지만, 편차는 있는 것 같습니다. 낙법을 제대로 잘 배운 사람들에겐 아주 약간은 수월하지 않을까요. 평생을 자식에게 큰소리치며 살아왔고 팔순에도 여전히 그런 노인에겐 조금 더 수긍하기 어려운 일일 겁니다.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한 박여사를 평생 봐 온 자식은 자식대로 박여사가 무너지는 순간이 언제 어떻게 올지 몰라 전전긍긍합니다.
필요한 도움을 청하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능력이라는 것을, 약점을 드러내는 일이 공격을 자초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사회가 가르쳐줬더라면, 우리는 아마 조금은 더 자연스럽게 조금은 더 일찍부터 내려놓는 법을 잘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랬더라면 발톱을 깎아달라는 박여사의 부탁에 그리 놀라는 일도, 그렇지만 하나도 놀라지 않은 것처럼,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연기’를 해야 하는 일도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아이는 타인의 선의를 당연하다 못해 어찌 보면 ‘뻔뻔스럽게’ 기대하고 요청합니다. 특유의 귀여움으로 그것을 당당하게 획득하기도 하지요. 독립적인 삶의 시기를 지나 다시 돌봄이 필요한 시기를 살게 된 노인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 합니다. 스스로는 자존이 훼손되는 경험을 하기 십상이고 돌봄의 제공자 또한 노인을 아이 보듯 하긴 어렵습니다.
아이의 돌봄은 성장과 독립으로 이어지나 노인의 돌봄은 삶의 마지막으로 연결되는 길이란 점에서도 그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하여 노인의 돌봄문제는 육아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배움’을 우리 모두에게 요청합니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많은 타인의 선의에 자신을 선선히 맡겨야 하는 시기가 돌고 돌아 다시 찾아온 것임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열심히 산 당신, 떠나라, 라는 옛 광고문구를 패러디해보자면 열심히 산 당신, 당신은 이제 사회에서 제공하는 선의를 당당하게 요청할 자격이 있음 기억하셔요. 당신이 그 선의를 편안하게 잘 누리실 수 있게 도와드리는 것은 당신세대에 빚이 많은 자식세대, 후속세대의 몫입니다.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노인이 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우리 시대에 부디 노년의 삶이 결핍과 박탈이 아닌 새로운 배려와 돌봄의 시기가 되길 빕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시기와 방법이 다를 뿐, 우리 모두가 서로의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이해하는 사회. 약함이 약점이 되지 않는 사회. ‘좋은 사회’의 조건 중 하나로 추가합니다.
+ 박여사님께: 당신이 내려놓는 법을 잘 못 배우신 것처럼, 내려놓은 당신의 모습을 자연스레 바라보는 법을 자식도 잘 못 배운 것 같습니다. 아직 모든 걸 손에 쥐고 쩌렁쩌렁한 당신이 힘에 겹기도 하면서도 저러다 어느 날 갑자기 훅 꺼지시면 그걸 또 어떻게 보나 조마조마합니다. 박여사님도 자식된 이도 아직 배울 게 참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