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아마도 마지막 화양연화
_ 엄마의 아마도 마지막 화양연화
영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배드민턴을 다시 시작하신 이후로 박여사의 일상은 많이, 꽤 많이 바뀌었습니다. 일주일에 다섯 번 정도는 운동을 가실 정도고, 아침에 가시면 점심 드시고 차까지 한잔 하시고 오시니 말입니다. 날이 좋지 않을 때는 제발 가시지 말라고 사정을 해야 할 정도입니다. 동호회 분들과 가끔 여행도 다니십니다.
인공관절 수술, 암 수술 이후 급격히 하강곡선을 그린 건강 탓에 심리적으로도 위축되어 그리 활동적인 분이 바깥 활동조차 꺼려하시고 동네 산책 정도가 고작이셨던 걸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평지는 걷기가 퍽퍽해서 잘 못 걷겠다는 분이 배드민턴을 치신다는 것도, 아무리 노인분들끼리라지만, 신기하긴 합니다. 음, 글쎄 그게 뭔가 다르다는군요. 동호회 대회에도 나가시는데 벌써 준우승 두 번, 우승 한 번이나 하셨습니다. 70세 이상 분들이라고 하니 80이 넘은 박여사가 준우승이라면 괄목할만한 성적입니다.
살아있는 한 우리 모두의 삶에 오르막내리막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 또한 돌아보면 그러했고, 다른 이들의 삶을 곁눈질해봐도 별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내리막이 마지막이고 다신 오르막이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르막길을 걷고 있기도 한 듯요.
돛단배의 비유를 통해 인생을 얘기해주던 초등 동창의 말을 빌면, 바람이 불지 않을 땐 아무리 기를 써도 배가 나가지 않지만, 언젠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람이 다시 붑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그 시간을 순하게 잘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산책과 게이트볼이라는, 박여사 성정에는 다소 정적인 활동들을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마지막 방어진지처럼 지켜내야만 했던 힘든 시간이 지나고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던 박여사의 봄이 그렇게 다시 슬며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고 박여사의 다시 돌아온 봄을 보는 마음이 좋지만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뭐랄까 이 어렵게 찾아온 봄이 쉬이 가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잘 알고 있지만 이 봄이 혹시 박여사의 마지막 화양연화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마음을 잠식해 들어옵니다.
구구팔팔이삼사. 많이 들어들 보셨을텐데 노인들의 공통 희망사항이라고 하지요.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3~4일만 아프다 돌아가시는 것. 얼마 전 94세 어른이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 정정하게 사시다 정말 며칠 살짝 아프시고 주무시다 편안하게 가셨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다들 그분을 부러워했지요. 오래 아프길 바라는 사람이야 어디 있겠는지요. 하지만 노인들의 구구팔팔이삼사,에 숨은 뜻은 아마 ‘인생 마치는 날까지 내 의지대로 살아있고 싶다’는 절실한 바람이 아닐까 합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겁니다’라는 노래 가사처럼 말입니다.
야박하게 보자면 우리 모두는 지금도 계속 죽어가는 중입니다. 인생의 종착역이 죽음인 것이 분명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과정인데, 살아있는 중에 말 그대로 계속 죽어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끝까지(!)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독일 철학자 프리디리히 니체의 ‘위버맨쉬’라는 개념, ‘초인(超人)’이라는 번역어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적지 않고 나도 처음엔 거기에 동의했는데, 지금은 그 말을 그대로 차용하더라도 우리가 초인이라는 말을 초능력자나 괴력의 소유자라는 맥락에서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넘어서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을 니체의 근대인간 개념에도 부합하는 것으로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외부적 기제의 도움 없이, 부활이나 윤회 등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사람. 죽음 그 순간이 찾아오는 때까지 무너지지 않으려는, 지지 않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니체가 말하는 ‘넘어서는(위버) 사람(맨쉬)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하고, 그런 사람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짜 ‘초인’이 아닐까 싶어서요.
박여사가 인생 마지막날까지 그렇게 잘 사시길, 그래서 내가 이해하는 의미에서의 ‘초인’이 되시길 빕니다. 그리고 배드민턴이 가져다 준 박여사의 화양연화가 부디 오래 아름답기를, 그리고 그 봄날이 언젠가 지나가리라는 걱정이 박여사와 우리의 오늘을 잠식하지 못하기를 빕니다.
+ 박여사님께: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날이 다시 박여사에게 찾아올지 몰랐습니다. 노인 동호회를 알려주신 배드민턴용품점 사장님께, 따뜻하게 박여사를 품어준 노인 배드민턴 동호회에 얼마나 고마운 마음인지요. 그리고 생각해보면 박여사가 찾으시던 배드민턴 동호인을 아는 사람을 알 것 같다고 알려주신, 박여사 동네 배드민턴 동호회 총무님께 제일 크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아마도 다시 뵐 일이 없을 그분이 보여준 작은 호의의 나비효과로 박여사의 다시 온 화양연화가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