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힘든 날이면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기대고 싶어진다. 괜찮다는 말, 잘하고 있다는 말, 오늘은 그냥 쉬어도 된다는 말. 그런데 정작 그런 말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주변에는 아무도 없을 때가 많다. 가족은 가족대로, 친구는 친구대로, 저마다의 삶을 짊어지고 있으니까. 외로운 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을 품고 잠들어야 할 때, 그 마음을 어디에 둘지 몰라 한참을 뒤척였다.
그럴 때 나는 노트를 펼친다. 거창한 글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오늘 하루 나에게 있었던 일을 한 줄 적는다. 오늘은 유난히 피곤했다. 오늘은 아이에게 화를 내고 후회했다. 오늘은 아무 이유 없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한 줄을 쓰고 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 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인데, 쓰는 동안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기록이 응원이 된다는 것을 처음 느낀 날을 기억한다. 유난히 지친 밤이었다.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잘 풀리지 않았고,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상태로 펜을 들었다. 쓸 것도 없었지만, 그냥 그 초라함을 적었다. 오늘 나는 작았다. 오늘 나는 흔들렸다. 오늘 나는 나 자신이 싫었다. 한참을 쏟아내고 나서, 마지막에 한 줄을 더 썼다. 그래도 오늘을 버텨 냈다. 그 한 줄을 쓰는 순간, 가슴 어딘가가 따뜻해졌다. 누구도 해 주지 않은 말을, 내가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네가 오늘 힘들었다는 걸 안다고. 그래도 버텼다는 걸 안다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기록은 자랑하거나 과시하는 일이 아니었다. 기록은 나 자신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한 응원이었다.
사람들은 응원을 밖에서 찾으려 한다.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인정해 주기를, 격려해 주기를 바란다. 그 마음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밖에서 오는 응원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누가 언제 해 줄지, 또는 영영 해 주지 않을지 알 수 없다. 그 응원만을 기다리며 살면, 기다리는 동안 계속 허기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록은 다르다. 기록은 내가 나에게 하는 일이니, 언제든 내가 시작할 수 있다. 오늘 밤 당장 펜을 들면 된다.
화려한 응원이 아니어도 된다. 잘했다고 써 주지 않아도 된다. 다만 오늘 무엇이 있었는지를 있는 그대로 적어 주는 것. 네가 오늘을 살아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고, 글로 증언해 주는 것. 그것이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하고, 가장 꾸준한 응원이다. 박수 소리는 없지만, 대신 한 줄의 문장이 남는다. 그리고 그 문장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외로운 밤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 안에 나를 기록해 주는 또 하나의 내가 있으니까. 그 내가 매일 밤 조용히 건네는 응원이, 다음 날 아침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한다. 기록은 그렇게,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가장 멀리 나를 데려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