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늘 누군가를 곁에 두고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펼쳐 두고, 그 사람처럼 쓰고 싶어 했다. 그 사람의 단어를, 그 사람의 호흡을, 그 사람의 시선을. 따라 쓰는 동안에는 잘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책을 덮고 나면 내 글은 다시 어색해졌다. 내 글이 그 사람의 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만 또렷해졌고, 나는 자꾸만 작아졌다. 비교는 처음에는 동기가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족쇄가 되었다.
비교는 묘한 것이다. 끝이 없다. 한 사람을 따라잡는다 해도, 그 너머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넘어서면, 그 너머에 또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 비교의 사다리는 무한하고, 올라갈수록 위는 더 멀어 보인다. 그 사다리 위에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아무리 잘 써도, 더 잘 쓰는 사람은 늘 있기 때문이다. 비교를 동력으로 삼는 글쓰기는, 결국 자기를 갉아먹는 글쓰기로 끝난다.
전환점이 된 것은 뜻밖의 깨달음이었다. 어느 날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또 한 번 따라 쓰려다가, 문득 손이 멈췄다. 이 사람은 이 사람의 삶을 살았기에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었구나. 그 사람의 어린 시절, 그 사람이 만난 사람들, 그 사람이 견뎌 낸 시간들. 그 모든 것이 모여서 그 사람만의 문장이 된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따라 써도, 나는 그 사람이 될 수 없다. 그 사람도 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그 순간부터 나는 비교를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누구처럼 쓰겠다는 마음 대신, 나처럼 쓰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아이의 시선, 거북이라는 별명을 받아들이는 데 평생이 걸린 사람의 마음. 이것들은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만의 것이었다. 멋지지 않을 수 있다. 화려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누구도 쓸 수 없는 문장이었다.
비교를 멈추는 일은 욕심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욕심을 찾는 일이다. 남보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서, 어제의 나보다 한 줄 더 쓰고 싶다는 욕심으로.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욕심에서, 나다워지고 싶다는 욕심으로. 방향이 달라지면, 같은 글쓰기도 전혀 다른 길이 된다. 비교의 길은 끝없는 결핍으로 이어지지만, 나다움의 길은 자기 자리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자기 자리에서야 비로소, 나만의 문장이 태어난다.
지금도 좋은 글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부러운 마음도 여전히 든다. 하지만 그 부러움이 나를 작아지게 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 사람도 자기 자리에서 자기 문장을 쓰고 있구나, 나도 내 자리에서 내 문장을 쓰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비교를 멈춘 자리에 서면, 글쓰기는 더 이상 경쟁이 아니다. 각자가 자기 길을 걸어가는 일이다. 그 길 위에서, 나만의 문장이 한 줄씩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