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쓰는 사람이 끝까지 간다

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by jooni

빠르게 쓰는 사람들을 부러워한 적이 많았다. 하루에 몇 편씩 써내는 사람, 한 달에 책 한 권을 완성하는 사람, 마감 하루 전에 원고를 끝내는 사람.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쓸 수 있어야 진짜 작가구나. 나처럼 한 편을 며칠씩 붙잡고 있는 사람은, 글쓰기에 맞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속도가 실력의 기준처럼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오래 쓰다 보니 알게 되었다. 빠르게 쓰는 사람이 멀리 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간 사람 중에는 어느 순간 사라지는 이들이 많았다. 한때 뜨겁게 쓰다가 어느새 조용해지고, 화려한 시작 뒤에 긴 침묵이 따르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반면 느리게 쓰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게 계속 쓰고 있었다. 화제가 되는 일은 드물었지만, 십 년 뒤에도 이십 년 뒤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한 줄씩 쌓아 가고 있었다. 끝까지 가는 사람은 대부분 느린 사람들이었다.

느림에는 힘이 있다. 느리게 쓰는 사람은 지치지 않는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보폭을 알고, 그 보폭을 지킨다. 오늘 조금, 내일 조금, 그렇게 매일의 한 걸음을 쌓아 간다. 빠르게 달리는 사람은 오늘 백 걸음을 갈지 몰라도, 내일 지쳐 멈출 수 있다. 하지만 느리게 걷는 사람은 오늘 열 걸음, 내일 열 걸음을 계속 이어 간다. 백 일이 지나면 천 걸음이 되고, 천 일이 지나면 만 걸음이 된다. 느림은 멈춤이 아니다. 멈추지 않기 위한 속도다.

나는 거북이라는 내 별명을 오랫동안 부끄러워했다. 느리다는 말은 모자라 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렸고, 빠른 사람들 옆에서 늘 뒤처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별명이 다르게 다가왔다. 거북이는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토끼처럼 단숨에 치고 나가지는 못하지만, 결국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야기 속의 결말이 괜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 속도가 아니라 지속이 결승선을 결정한다는 것을, 그 우화는 오래전부터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편을 빨리 쓰는 능력이 아니다. 내일 다시 펜을 들 수 있는 힘이다. 오늘 한 줄을 썼다면 잘된 것이다. 오늘 한 문단을 썼다면 더 잘된 것이다. 그리고 내일 또 한 줄을 쓰면 된다. 그 한 줄이 쌓여서 한 편이 되고, 한 편이 쌓여 한 권이 되고, 한 권이 쌓여 한 사람의 세계가 된다. 느리게 써도 괜찮다. 느리게 써야 오래 쓸 수 있다.

글을 매일 쓰고자 하면서도, 책 쓰기를 하고자 하면서도 나는 느렸다. 하루에 한 꼭지, 때로는 며칠에 한 꼭지. 빠르게 써내는 사람이 보기에는 답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느리게 쓰고, 걷고 있기에 내가 더 이상 쓸 수 없는 죽음이 오기까지 쓰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가 있었다. 느리게 쓰는 사람이 끝까지 간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내가 바로 그 증거이기를 바라며, 오늘도 한 줄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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