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동안 나는 비로소 나를 용서한다

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by jooni

마음 한구석에 오래도록 내려놓지 못한 일들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건넸던 모진 말 한마디, 해야 했는데 하지 못한 일, 지나고 나서야 깨달은 어리석은 선택. 시간이 흘러도 그것들은 지워지지 않았다. 문득문득 떠올라 가슴을 찌르고, 잠들기 전 이불을 걷어차게 했다.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그리고 그 마음은, 누가 대신 풀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타인의 용서는 비교적 쉽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로도 풀어질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용서는 다르다. 판사도 나고 피고도 나인 법정에서는, 유죄 선고가 너무 쉽게 내려지고 사면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나의 가장 엄격한 검사였고, 가장 혹독한 재판관이었다. 과거의 어떤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같은 판결을 반복했다. 너는 그때 잘못했다. 너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 판결문은 시간이 지나도 닳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러한 일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가슴에 얹힌 돌을 잠시라도 내려놓고 싶어서였다. 처음에는 자책의 문장이 쏟아졌다. 그때 왜 그랬는지, 얼마나 후회하는지, 얼마나 미웠는지. 한참을 쏟아내고 나자, 손이 멈췄다. 그리고 질문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까? 지금의 시선이 아니라, 그때의 자리에서 그 사람을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나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얼마나 어렸는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얼마나 혼자였는지.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글 위에서 하나씩 드러났다. 자책 뒤에 숨어 있던 이유를, 모진 말 뒤에 있었던 두려움, 어리석은 선택 아래 있었던 절박함. 그것을 문장으로 꺼내놓자, 처음으로 그때의 나를 안쓰럽게 바라볼 수 있었다. 비난이 아니라 이해의 눈으로. 그때 깨달았다. 용서는 결심으로 오지 않는다. 이해에서 온다. 그리고 이해는, 쓰면서 비로소 찾아온다.

쓰는 동안 나는 판사 자리에서 내려와 증인의 자리로 옮겨 앉는다. 그때 무엇이 있었는지를 증언하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들려주는 자리. 증언을 듣다 보면, 단죄하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진다.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짊어진 사람을 조금 더 가엾게 여기게 될 뿐이다. 그것이 용서의 시작이다. 완벽한 화해가 아니라, 짊어지고 가는 법을 배우는 일.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그 법정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쓰는 동안 나는 나를 조금씩 풀어 주었다. 다 풀어 준 것은 아니다. 어떤 일들은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완전한 용서가 아니어도, 쓰는 것만으로 그 무게는 조금씩 가벼워진다. 쓰는 동안 나는 비로소 나를 용서한다. 그 용서가 결국, 나를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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