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북이
내 별명이 언제부터 거북이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기억이 가물가물한 저학년일 때였다는 것 정도이다. 아마도 행동도 공부도 달리기도 모두 늘 꼴찌를 하다시피 해서 붙여진 별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릴 적 매년 학교에서 하는 운동회는 가장 피하고 싶은 시간이었다. 대부분 운동회를 하면 가족들이 오고 맛있는 도시락을 준비해서 다 같이 먹곤 하는데 나는 항상 혼자였다. 입학식도 졸업식도 부모님이나 가족과 함께 한 기억이 없다. 그러한 시간은 나를 움츠러들게 했고 점점 혼자만의 공간을 찾게 되었다. 거북이가 등껍질 속을 숨어버리듯이.
거북이라고 별명을 불리 울 때 놀림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싫었다. 거북이라고 불리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못했던 공부를 하고, 달리기를 연습했고 빨리 걷고. 빨리 먹고, 빨리 대답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남들보다 실수가 많아졌고 점점 더 느려졌다. 그렇게 나는 느림을 부끄러운 것, 고쳐야 할 결함으로 여기기만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말도 행동도 빨라지지 않았다.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하면서 가장 걱정이 앞섰던 것이 내가 잘 따라갈 수 있을지였다. 다행히도 느림이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서두르지 않고 오래 진득하게 붙잡고 있으면서 장비에 대해 배우고 남들이 놓치는 부분을 천천히 점검하며 발견했다. 선임으로부터 느리지만 확실하더라는 말, 그게 더 낫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나의 느림이 밉지 않았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어쩌면 느림은 단점만은 아닐지 모른다고. 군대 생활을 시작하고 2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 병과인 통신은 빠르게 변하는 분야다. 새로운 기술과 장비들이 쏟아지고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뀐다. 나보다 빠르게 흐름을 앞질러 가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내 방식으로, 느림으로 일했다. 문제가 생기면 천천히 원인을 찾아보려 하고 차근차근 일을 해 나가려고 노력했다. 가끔 선임이나 후임이 답답했는지 묻곤 했다. 왜 이렇게 천천히 하느냐고.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야기했다. 나는 거북이거든.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더 이상 그 말이 창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거북이는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토끼가 낮잠을 잘 때도, 다른 동물들이 지름길을 찾아 헤맬 때도 거북이는 묵묵히 길을 간다. 그리고 결국 도착한다.
거북이라는 별명은 자기 속도로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일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했다. 마흔을 훌쩍 넘은 나이. 인생의 제2막을 걱정할 때 독서와 글쓰기를 만나며 느림이 더욱 나의 장점이자 나의 힘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의 독서와 글쓰기는 느리다. 어떤 날은 한 문장을 쓰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 눈에 올라오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 저렇게 빨리, 저렇게 많이 쓸 수 있다니. 하지만 이내 비교의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거북이니까.
느림은 이제 내 삶의 철학이 되었다. 빨리 가는 것보다 오래 가는 것이, 많이 하는 것보다 깊이 하는 것이, 앞서가는 것보다 함께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창피했던 별명은 이제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거북이처럼 산다는 것. 그것은 세상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의지이다. 남들이 정한 결승선이 아니라 내가 정한 목적지를 향해 간다는 뜻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한 걸음씩 나아간다는 뜻이다.
요즘 나는 이 별명이 좋다. 거북이. 누군가, 나를 그렇게 부른다면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래 나는 거북이다. 천천히 가지만 멈추지 않는, 느리지만 확실한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거북이. 그리고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 느림 속에서 나는 행복하다.
당신은 어떠한 속도로 나아가고 있나요?
다른 이의 시선에 휘둘리고 있지는 않나요?
다른 이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 원망하고 있진 않나요?
제가 스스로 거북이니까 괜찮다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감에 신뢰를 갖기로 해요.
느려도 끝까지 간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