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북이
아침 출근길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나서는 사람들은 모두 빠르게 움직인다. 누가 먼저 나가는지 마치 경주를 하듯 바쁘게 움직인다.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서, 아니 따라가지 않기로 해서 한 템포 늦게 움직인다. 모두가 빠져나가길 기다리는 것쯤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빠름이 능력이고 신속함이 경쟁력이며 즉각적인 반응이 미덕인 시대다.
빠른 세상은 나처럼 느린 사람에게 가혹하다. 회의에서 재빠른 판단을 요구받고, 메신저 메시지는 즉답을 기대하며, 업무 처리 속도로 성과를 평가받는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면 우유부단하다는 소리를 듣고, 천천히 일한다고 하면 게으르다는 오해를 산다. 나는 종종 이 속도의 압박 속에서 숨이 막힌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더 빨라져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자책이 밀려온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빠름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빠르게 내린 결정이 나중에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낸 경험들, 성급하게 던진 말이 관계에 상처를 남긴 순간들을 기억한다. 빠르게 훑어본 책보다는 천천히 곱씹으며 읽은 문장이 더 오래 내 안에 남았고, 후다닥 쓴 글보다 오래 고민하며 다듬은 문장이 더 진실에 가까웠다. 속도는 효율을 가져다주지만, 깊이를 장담하지는 못한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단순히 동작이 느린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태도이자 철학이다. 빠른 판단 대신 충분히 생각하기를 선택하고, 즉각적인 반응 대신 한 박자 쉬어가기를 택하며, 결과만을 향해 달려가는 대신 과정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다. 거북이가 느리지만 결코 게으르다고 느껴지지 않듯이, 느림은 나태함과 다르다. 오히려 더 깊이 사유하고, 더 섬세하게 느끼며, 더 진중하게 행동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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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느린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남들이 다 앞서 나갈 때 홀로 뒤처진 것 같은 불안을 견뎌야 하고, 빨리하라는 독촉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속도를 지켜내야 한다. 때로는 오해받고, 때로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느리게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나답게 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23년 넘게 일하면서 나는 배웠다. 빠르게 해치우는 일보다 제대로 하는 일이 결국엔 더 빠르다는 것을. 복잡한 일을 만났을 때, 서둘러 임시방편으로 때우면 나중에 더 큰 문제로 돌아온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면, 그것이 진짜 해결이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급하게 맺은 관계보다 천천히 쌓아온 신뢰가 더 단단하다.
무엇보다 느리게 살기로 선택한 이유는, 삶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서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은 흐릿하지만, 천천히 걸으며 보는 세상은 선명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그렇다. 바쁘다는 핑계로 후다닥 지나쳐버린 순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들의 말을 끝까지 듣고 함께 웃고, 그 순간을 온전히 함께하려면 서둘러서는 안 된다. 느림은 사랑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글을 쓸 때도 나는 느리다. 한 문장을 쓰고 오래 들여다본다. 이 말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인지, 이 표현이 진실에 가까운지 묻는다. 때로는 하루 종일 한 단락을 붙들고 있기도 한다. 빠르게 많이 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내 속도로 쓸 수밖에 없다. 천천히 쓴 문장이 누군가에게 오래 머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빠른 세상에서 느린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매일의 선택이다. 빨라져야 한다는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내 속도를 지키기로 다짐하는 것. 느리다는 이유로 스스로 책망하지 않고, 이것이 나만의 방식임을 인정하는 것. 거북이가 결승선에 도착했을 때의 기쁨은, 토끼가 느낀 기쁨과는 다른 무게를 가질 것이다. 그 무게가 바로 느리게 사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삶의 깊이이다.
나는 오늘도 느리게 살 것이다. 세상이 빠르든 느리든, 내 걸음은 내가 정한다. 느려도 한 걸음 한 걸음 단단하게.
느리게 세상을 바라본 적이 있나요?
우리가 보는 세상의 모든 것. 그것들의 존재는 나의 시선과 정의에 달려 있어요.
빠르게 달려가느라 보지 못하고, 알면서도 지나친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게 된다는 걸 알고 있나요?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기로 해요. 내가 보지 못해서, 알지 못해서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못했던 것들을 느림으로, 깊은 시선으로 마주해 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