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편지가 전하는 느림의 온기

나는 거북이

by jooni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대도 지났다. 그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하루에 수십 통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대가 되었다. 카톡 알림음이 울리고 읽음 표시가 뜨고 답장은 몇 초 만에 도착한다. 빠르고 편리한 시대다. 하지만 그 속도만큼 가벼워진 것은 아닐까? 마음을 전하는 시간과 그 무게가.


나는 여전히 손 편지를 쓴다. 아니, 쓰려고 애쓴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편지지를 펴고 펜을 손에 쥐고 이름을 적고 인사를 적고 첫 문장을 어떻게 적을까 고민하는 시간. 그 시간은 온전히 상대를 생각하는 시간이 된다.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다 보면 자연스레 멈추게 되기도 하고 느려진다. 생각의 속도도 호흡도 함께 느려지는 것만 같다. 틀린 글자를 지우거나, 줄을 그어 고치거나 때로는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할 때도 생긴다.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진심을 담게 만드는 것이라 느낀다.


학창 시절 짝사랑 친구에게 썼던 편지, 군 생활하며 썼던 편지, 그리고 받았던 편지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아내에게 썼던 편지들과 아이에게 쓰고 받았던 편지들은 내 책상 서랍에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종이가 바래고 잉크가 번졌어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여전히 선명하게 보이는 듯하다.


손 편지를 쓰는 시간은 그 사람의 얼굴을, 목소리를, 최근의 안부를 떠올리며 천천히 문장을 적어 가는 시간이다. 급하게 전할 일이 있다면 편지가 아니라 전화나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 편지는 천천히 마음을 전할 때, 빠른 답이 아니라 오래 깊이 생각해 주었으면 할 때 쓰는 것이 아닐까 싶다. 느리지만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손 편지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받는 사람이 어떻게 느낄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손으로 쓴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는 순간 설렘을 느꼈으면 좋겠다. 봉투를 뜯고 편지지를 펼치는 그 느린 과정 자체가,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보낸 이가 자신을 위해 시간을 들였다는 것을 느끼고, 그 정성을 읽어줬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만 같다.


손 편지는 컴퓨터 앞에 앉아 글쓰기를 하는 것보다 더 느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심을 전하는 일이다. 빠르게 쓰려고 하기보다 깊이 생각하고, 남들의 속도와 비교하고 따라가려 애쓰기보다 나만의 속도로 써 내려가면서 알게 된다. 느림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지키는 것. 손 편지는 그런 느림의 온기를 담아 전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따뜻한 방법이라는 것을.


오늘도 나는 편지지를 꺼내 든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첫 문장을 시작해 본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나요?" 이런 느린 시작이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기억되는 온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느림은 단순히 속도가 아니라 깊이와 온기를 담는 나의 삶에서 가장 좋은 동반자라는 사실을 손 편지를 쓰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누군가에게 손 편지를 쓴 적이 언제인가요? 빠르게 전화와 메시지로만 마음을 전하고 있지는 않았나요? 가끔 하얀 종이 위에 자신의 글씨로 마음을 전해 보기로 해요. 그 순간 상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좋은 단어, 문장을 고르게 될 거예요. 그저 빠르게 적는 반응하기만 하는 이모티콘이 아닌 마음의 온기를 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때론 느리고 오래 걸리는 일들이 깊이와 온기를 더 많이, 무겁게 담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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