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화를 다스리는 법

나는 거북이

by jooni

느리다는 건 화를 자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느리다는 이유로 타인의 화를 목도했고, 나 스스로에게 화를 낸 경우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느림이 잘못도 틀림도 아니라는 걸 믿기까지, 나는 화를 다스리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나 역시 알지 못했다. 그렇게 속에 담아둔 것들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폭탄처럼 위태로웠다.

오랜 군 생활을 하며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바로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위안이자 화를 마주하는 요령을 알려주는 스승 같았다. 어릴 적 일기를 펼쳐봤다. 억울하고 분했던 일들을 적은 글. 그때의 감정과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게 화날 일이었을까 싶은 것도 많았다.

글쓰기를 하며 내 감정을 종이 위에 고정하는 순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 안에 휘몰아치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태풍이 지나간 뒤 물결이 잔잔해지듯 마음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글쓰기가 화를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글쓰기는 내 감정을 객관화할 수 있게 해주었다. 머릿속을 맴도는 분노는 실체가 없어서 점점 부풀려진다. '나를 무시했어'라는 생각은 '늘 나를 무시해', '모두가 나를 우습게 봐'로 확대되고 재생산된다. 하지만 감정을 글로 쓰는 순간 부풀려진 생각은 구체적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시간과 상황, 이유와 원인을 쓰고 나면 '늘', '모두'라는 과장이 사라진다.

글쓰기는 감정과 나 사이에 거리를 만드는 일이다. 화가 났을 때 그 감정과 나를 동일시한다. '나는 화가 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화난 나'를 관찰하는 또 다른 나를 존재하게 한다. 글을 쓰는 손, 문장을 응시하는 눈, 어떤 문장을 쓸지 고민하는 마음. 이 모든 것이 감정에 휩쓸린 나와는 다른 차원의 나를 깨운다.

초임 하사 시절, 불합리한 지시와 질책을 받은 적이 있다. 억울했고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화가 가라앉지 않아 그저 수첩을 꺼내 마구 쏟아내듯 감정을 적었다. 적은 글을 다시 바라보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 내 잘못은 아니었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그랬을 수도 있어.' 분노와 억울함에 갇혀 있던 마음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화를 다스리는 글쓰기에도 요령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무작정 쏟아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다. 오히려 분노가 강화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만의 방법을 정리해 봤다. 화를 다스리는 글쓰기 3단계다.

1단계는 날것의 글쓰기다. 있는 그대로를 써보는 것. 대신 이 글은 나 혼자만의 일기가 되어야 한다. 타인이 보면 더 큰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까. 2단계는 사실 확인하기다. 내가 감정에 휘둘려 망각하고 있던 것, 보지 못했던 것은 없는지 과장과 가정을 걷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 3단계는 상대의 입장 써보기다. 사실 상대의 입장을 쓰는 일은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내가 놓친 맥락과 상대의 시선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노력이니까.

글쓰기로 화를 다스린다는 것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도,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다. 감정을 제대로 마주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다. 느리지만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지금 누군가에게 화가 나 있다면 소리 지르기 전에 펜을 들어봐요.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노트를 펼쳐 적어봐요. 우리의 분노는 표현될 자격이 있고, 우리의 마음은 치유될 권리가 있어요. 그 둘 모두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글쓰기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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