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북이
느리다는 건 지루하다고 여겨지기 쉽다. 빠름이 미덕이 된 세상에서 느림은 뒤처짐으로, 나태함으로, 때로는 무능함으로까지 치부된다. 하지만 느림 속에서도 꼭 할 일을 만들며 살아가는 내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 있다. 바로 강연에 참석하는 일이다.
저자들의 강연만큼 즐겁고 배움이 있는 시간이 또 있을까. 책을 읽으며 혼자 상상했던 작가의 얼굴과 목소리, 그 사람이 글을 쓰게 된 이유와 과정을 직접 듣는 일은 언제나 특별하다. 강연이 있는 날이면 다른 일을 뒤로하고서라도 참여하려 애쓴다. 무엇보다 그 시간이 마음에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일상에 지친 마음이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 시간, 나만 느리게 사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얻는 시간이 바로 강연장에 있다.
최근 “0시의 새”의 저자 윤신우 작가의 강연에 참여했다.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궁금했던 것들이 많았다. 이 섬세한 문장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복잡하게 얽힌 인물들의 관계는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을까. 강연장에서 작가는 그 모든 궁금증에 답해주었다.
작가가 소설을 쓰게 된 이유, 어떻게 써 내려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타임 테이블을 짜고, 사건의 전개를 설계하고,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상상하며 기록하는 글쓰기 여정. 그 과정은 결코 쉽고 빠르기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디고 험난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무엇보다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작가의 선택이었다. 오랫동안 해 온 안정적인 일을 과감히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는 이야기. 그것도 아직 젊은 나이에, 보장되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는 용기. 그 결단이 빛나 보였다. 나 역시 20년 넘게 해 온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가끔은 다른 길을 꿈꾼다. 글쓰기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지만, 여전히 두렵고 불안하다. 그런 내게 작가의 이야기는 '괜찮다'는 다독임처럼 들렸다.
많은 강연이 나를 살찌우는 영양소가 되어준다. 책을 통해 얻는 배움도 크지만, 강연에서 얻는 배움은 또 다르다. 작가의 육성으로, 표정으로,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생생함이 좋다. 그래서 더욱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강연에 참석할 때마다 꿈을 꿔보기도 한다. 나도 언젠가 강연자가 되어 사람들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나의 문장으로 전할 수 있기를. 군 복무 20년의 경험,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이야기, 느림을 선택하며 살아온 거북이의 철학. 이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가 될 수 있기를. 그런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주변에서 묻는다. 넷플릭스나 유튜브로도 볼 수 있는 강연을 왜 시간을 들여서, 그것도 멀리까지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느냐고. 집에서 편하게 보면 되지 않느냐고. 효율을 따지면 당연히 그쪽이 낫다. 시간도 절약되고, 교통비도 들지 않고, 피곤하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그 먼 길이 좋다. 강연장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다시 펼쳐보는 시간. 강연장 문을 열고 들어서며 같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순간. 작가가 무대에 올라 첫 말을 꺼낼 때의 떨림. 그 모든 것이 경험이고 배움이다.
느림이 갖는 중요한 가치는 쉽게 얻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클릭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클릭 한 번으로 잊힌다. 하지만 몸과 마음을 움직여 얻은 것은 오래 남는다. 먼 길이 고되기보다 직접 눈과 귀로 마주할 시간이 설렘이 된다. 그리고 그 배움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된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보다 내 몸과 마음이 움직여 얻는 것에서 진짜 위로를 받는다. 화면 속 영상이 아닌, 숨 쉬는 사람의 목소리를. 편집되지 않은 날것의 이야기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웃고,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그것이 내가 강연장을 찾는 이유다.
좋은 문학 강연은 나의 느림을 더욱 단단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거름이 되어준다. 빠르게 살지 못해 미안해하던 마음이, 느리게 사는 것도 괜찮다는 확신으로 바뀐다.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도 된다는 용기를 얻는다. 직접 시선을 마주치고, 생생한 공간에서 마음과 귀로 듣는 강연은 나의 느린 일상에서 꼭 지키고 싶은 일이 되었다. 이 시간만큼은 타협하고 싶지 않다. 느림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영상으로 마주하는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직접 호흡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눈과 귀,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직접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