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북이
느림을 좋아하면서도 유독 쫓아가기 바빴던 것이 하나 있다. 핸드폰, 그리고 SNS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화면을 켜고, 알림을 확인하고, 빠르게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마음이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있었다. 혹시 강박은 아닐까, 스스로가 걱정될 때도 있었다. 하루의 시작이 고요한 아침이 아니라 타인의 소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걸 느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비교의 함정에 빠지는 시간과 다르지 않았다. 화면 속 사람들은 하나같이 빛나는 순간만을 보여주었다. 멋진 여행지, 근사한 식탁, 환하게 웃는 얼굴. 나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그 시간을 한 장의 사진으로 마주하며 부러워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짧고 응축된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느림은 내게 다른 시선을 갖게 했다. 한 장의 사진을 부러워하기보다 그 사진 너머의 서사를, 그 삶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라고. 화려한 사진 한 장이 그 사람 삶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분이라는 것을. 그 사람에게도 내리막이 있고, 오르막이 있고, 구불구불한 길도, 막힌 길도 있다는 것을. 마치 길 위를 직접 걸어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처럼.
느림은 비교를 내려놓겠다는 다짐이었는지도 모른다.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고, 끝내 이 길 끝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믿는 일이다. 출발점도 다르고 지금 서 있는 위치도 다르다. 그것은 뒤처짐이 아니라 그저 다름이다. 그 다름을 알아차리는 것이 느림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손가락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세상을 잠시 멀리하자. 직접 눈으로, 마음으로 마주하는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자. 지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면 비교도 부러움도 자연스레 사라진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남의 오늘이 아니라 나의 지금이니까.
느리게 나아간다는 것은 남들과 견주기 위함이 아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것을 내 눈으로 보고, 내 마음으로 느끼며, 나만의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증거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시선과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SNS에서 눈을 떼고, 지금 내 앞에 놓인 풍경과 사람들에게 시선을 두는 것. 그것이 느림이 알려준 또 하나의 길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화면 속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었던 빛을 만나게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