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북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 돌이켜 보면, 나도 늘 그러했는지 모른다. 학생 때는 나보다 성적이 좋은 친구들이 부러웠고, 좋은 대학에 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어른이 되어서는 좋은 직장에 다니는 친구, 좋은 집을 장만한 친구가 부럽기만 했다. 그 부러움은 나를 실패자처럼 여기게 했다. 나는 어차피 안 되는 사람이라고, 출발선이 다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핑계를 대기에 바빴다. 부러움은 미움이 되고, 시기와 질투를 거쳐, 결국 나 자신을 비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 비난은 무엇이든 제대로 해 보기 전에 포기하게만 했다. 어차피 해도 안 될 것이라는 생각, 해서 뭐 하겠어, 달라지는 건 없다는 생각. 나 자신을 그 안에 가두고, 아무런 도전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곤 했다.
무기력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TV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채널을 돌리다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거북이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내 별명이 거북이였으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갔나 보다. 돌리던 채널을 멈추고 화면에 눈을 고정했다.
어미 거북이 먼 험난한 여정을 거쳐 바닷가에 올라와 모래사장에 알을 낳는 모습. 시간이 지나 아기 거북이 알을 깨고, 모래를 뚫고 나와서 바다를 향해 기어가는 모습. 수많은 위기와 천적 때문에 소수의 아기 거북이만이 바다에 닿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살아남은 거북이가 어른이 되어 다시 알을 낳기 위해 같은 해변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아남을 확률이 희박한 저 아기 거북이는 다른 생명을 부러워할까? 아닐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바다를 향하는 것에만 집중할 것이 분명하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생사의 갈림길을 걸어야 하는 아기 거북이에게 부러움이란 사치일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부러워하는 마음은, 내가 그만큼 절실하지 못하다는 뜻이라는 것을. 남의 성공은 내 실패가 아니라, 그들이 절실함으로 살아남은 증거다. 그것은 부러워하고 미워할 대상이 아니라 배움의 대상이며, 나를 행동하게 만드는 신호다. 우화 속 거북이도 토끼를 부러워하며 멈춰 서지 않았다. 그저 결승선을 향해 한 걸음씩 걸었을 뿐이다. 그리고 결승선에 도달했다.
남들의 성공, 남들의 빠름, 남의 시간은 내가 틀렸다는 증거가 아니다. 나는 그저 내 삶을 살아내기 위해, 절실하고 꾸준한 마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남의 성공이 내 실패가 아니다. 그것을 부러워하며 내 삶을 주저앉히는 것이 진짜 실패다. 실패란, 내 마음이 붙인 이름일 뿐이다. 그 이름을 지우고, 배움과 성장이라는 이름을 다시 새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