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북이
앞만 보고 내달렸던 시간이 있었다. 뒤돌아볼 새도 없이, 뒤처진다는 불안과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으로 스스로 채찍질하며 달렸던 시간. 그 끝에서 내게 남은 것은 허무함이었다.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누구를 위한 뜀박질이었는지조차 잃어버린 채.
결국 멈춰서 버렸다. 발이 더 나아가질 않았다.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내가 틀렸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내 속도가 아닌 남의 속도에 맞추려고만 했음을, 내가 나아갈 이유를 끝내 찾지 못했다는 것을. 그저 남들이 뛰니 따라갔다. 그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무시당할까 봐 겁이 나서. 그들의 방법, 그들의 속도만을 좇았을 뿐이었다. 어디에도 내가 없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도 없었다. 삶은 그래도 계속되기 때문이었다. 포기한다고, 멈춰 선다고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후회 가득해도 결국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그 단순하고도 묵직한 진실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천천히 걷기로 했다. 내 속도로,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기로 했다. 그제야 눈앞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짙은 안개가 걷히듯,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게 소중했던 것들, 사랑하는 것들, 그리고 작은 새로움을 주는 것들. 항상 곁에 있었는데 그 존재를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이 눈으로, 마음으로 깊이 새겨졌다. 그래, 내가 놓쳤던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빨리 가려 하면 놓치는 것이 많다. 빠름은 때로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하게 만들고,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외면하게 한다. 그리고 멈춰있는 모든 것들을, 그냥 스쳐 지나가게 만든다.
느려도 진솔함이 있는 삶, 무리하기보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살필 줄 아는 삶, 내 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시선을 주고 감사할 수 있는 삶. 그런 삶이 내가 오래도록 꿈꿔왔던 삶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천천히 가자. 앞서가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자. 쫓아가려 하지도 말자. 다만 그들의 빠름에서 배울 것은 배우자. 그 배움이 충분히 쌓인다면, 내 속도도 자연스럽게 무르익을 것이라고 믿자. 더는 놓치는 것 없이, 내 소중한 삶을 온전히 지켜 나가는 것. 그것을 가장 먼저 지키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