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글을 쓰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에게, 나는 늘 같은 말을 한다. 좋아하는 문장을 베껴 써보라고.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남의 글을 따라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생각을 내 언어로 쓰는 것이 글쓰기 아닌가. 남의 문장을 그대로 옮기는 일이 어떻게 나의 글쓰기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직접 해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글빛 다락이란 필사 모임을 시작했을 때, 나부터 먼저 써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책의 한 문단을 골라 한 글자씩 따라 적었다. 읽을 때는 한 번에 스쳐 지나갔던 문장이, 손으로 쓰는 순간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이 자리에 왜 이 단어를 놓았는지, 문장이 왜 여기서 끊기는지, 쉼표 하나가 호흡을 어떻게 바꾸는지. 눈으로 읽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손으로 쓰는 순간 하나씩 드러났다.
필사는 읽기와 쓰기 사이에 놓인 다리 같은 것이다. 읽기만으로는 문장의 결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 눈은 빠르기 때문이다. 의미를 파악하면 바로 다음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손은 느리다. 한 글자 한 글자 따라가야 하기에, 문장의 속도에 맞춰 걸을 수밖에 없다. 그 느린 걸음 안에서, 글쓴이가 문장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함께 체험하게 된다. 왜 이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는지, 어떤 구조가 그 감동을 만들었는지를, 머리가 아니라 손끝으로 이해하게 된다.
필사를 계속하면서, 내 글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의식하지 않았는데 문장의 호흡이 달라졌다. 늘어지던 문장이 짧아졌고, 억지로 꾸미던 표현이 줄어들었다. 좋은 문장의 리듬이 손을 통해 몸에 스며든 것이다. 필사는 남의 문장을 외우는 일이 아니었다. 좋은 문장의 감각을 몸에 새기는 일이었다. 그렇게 새겨진 감각이, 내 문장을 쓸 때 조용히 길을 안내해 주었다.
필사가 겸손한 출발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필사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좋은 문장을 쓸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먼저 좋은 문장 곁에 가만히 앉는 일. 배우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느끼겠다는 자세로 한 글자씩 따라가는 일. 그 겸손함이 결국 자기 문장의 뿌리가 된다.
글빛다락 필사 모임에서 함께 쓰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매번 느끼는 것이 있다. 처음에는 남의 문장을 따라 쓰는 것이 어색했던 사람들이, 몇 주가 지나면 자기 문장을 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필사가 자신감을 준 것이 아니다. 필사가 문장과 친해지게 해 준 것이다. 문장이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익숙한 곁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좋은 문장을 곁에 두고, 한 글자씩 천천히 따라가는 일. 그것이 글쓰기의 가장 겸손하고, 가장 확실한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