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이입하는 일의 어려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삶일지라도 주어진 모든 것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생에 대한 반항이라면 습관적으로 현실감을 잃는 것은 삶에 대한 불량함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꽤 모범적으로 살아왔다.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고, 사람들이 아는 한 수상쩍은 구석이 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나는 생 앞에서 본질적으로 불온한 인간이었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믿는 삶의 지속성과 그로 인해 속박될 수밖에 없는 굴레에 대해 나는 자주 이질감을 느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다들 목청을 높여 이야기하는 도덕에 대해 ‘그래, 중요한 규칙이지.’ 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만약 이 세상을 계속해서 산다면 중요한 규칙이지.’라고 비껴나버리는 것이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내게 주어질 내일을 대비해서 성실하게 규칙을 지키면서도 ‘어떤 변수’가 있다면 그 규칙이 더 이상 의미없다고 느꼈다.
‘산다는 것’이 너무 당연한 전제인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믿음과 실제 세상 사이의 틈을 바라보는 일은 혼자 다른 세상에 사는 기분이었다. 모든 게 지극히 의미있으면서도, 아주 간단하게 의미 없어질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이 계속되는 탓에 삶을 열심히 살 수도 일상을 버리지도 못하고 어딘가 붕 뜬 상태로 지냈다.
그렇다고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며 답을 구하는 부류도 아니었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앞에서 생을 당연하게 긍정하는 것처럼 움직였지만 사실은 ‘사는 게 이상한 느낌’ 속에서 그런 질문이 느낌을 현실로 확정지을까봐 두려웠고, 그래서 피했다.
이렇게 살면서 가지게 된 문제는 삶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별다른 의욕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들이 말하는 ‘중요함’에 대해 그리 이입이 되지 않았다. 따져본다면 분명 중요한 게 맞는데, 그렇게 진심을 다해 골몰한다는 것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마치 꿈 속에서 꿈을 꾸듯이, 어떤 것을 중요시하려면 내게는 먼저 삶이라는 것에 이입하는 단계가 필요했다.
사랑, 행복, 우정, 기적 같은 것. 분명 그런 것이 찾아오면 어쩔 수 없이 즐거웠고 인생에서 기억할 만한 페이지로 머릿속에 담곤 했지만, 곧 그런 경험들이 재밌는 이야기를 읽은 것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그냥, 확률이 낮은 이벤트가 내 인생에서도 벌어졌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인생을 소유하는 감각이 남들보다 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인생, ‘나의’ 경험, ‘나의’ 이야기 같은 것…. 그런 것들이 내게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다.
내 인생이 다른 사람에게 주어지면 그 사람은 아마도 더 행복해할 거란 믿음이 있다.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있다. 그런데 어쨌든 이 인생은 나에게 주어졌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더 아름답게 인생을 꾸려갔을 거라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다른 생을 살게 하는 원인이 되지는 못했다. 나는 그저 끄덕거릴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조금이라도 반짝거리는 것을 찾아 붙들려고 하는 모습을 보며 신기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면서도 멋진 부분을 찾아준다. 칭찬해주고 내가 가진 것들을 일깨워준다. 물론 그럴 때면 나도 기뻐진다. 하지만 내게 정말 멋지다는 느낌이 드는 건 무엇을 얼마나 가졌든 자기 생에 대한 애착과 열의로 가득찬 삶이다. 반짝거리는 눈이나, 지칠 때도 가까스로 일어나는 생명력 같은 것을 볼 때 나는 어떤 희귀한 현상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힌다. 다만 어쩐지 나는 그런 현상의 관측자에 가깝다는 생각도 한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위해 스스로를 불태울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확신이 없다. 아직 그럴 만한 것을 찾지 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목표든 사랑에서든, 나를 뿌리채 흔들만한 충격을 받지 못했다. 삶에 충격이 꼭 존재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충격을 통해 변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꽤 자주 들려오므로 내게도 그것이 한 종류의 해결책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한편으로는 내 상태가 그런 해결책이 통하는 종류일까 하는 의문도 가지고 있다. 만약 어떤 계기가 있어서 갑자기 휴식도 없이 무언가에 매달리게 된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난 삶에 대한 열정으로 인한 것일까? 만약 위기나 의무감으로 인한 거라면 삶에 이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 속에 사실은 이 모든 일의 무의미함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정신이 들어있지는 않을까?아니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무 생각할 틈 없이 모든 것이 밀어닥치는 상황이야말로 인생의 본질이고, 아직은 생각할 여유가 남아있는 내가 한가로이 색다른 유희에 빠져있는 것일까?
몰입하든, 몰입하지 않든 시간은 흘러간다. 다른 사람들이 인생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시간만큼 내게는 인생을 바라보며 살아온 시간이 쌓였다. 인생에 어떤 정의도 내리지 못하는 거라면, 이런 내 시간들도 어떤 인생으로 여겨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