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오랫동안 괴롭히는 이 고민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원색보다는 분명하지 않은 희끗한 색, 명확한 시대사조 안에서의 예술보다는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의 예술작품들. 나는 경계가 불분명하고 모호하며 하나의 시선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더 마음이 간다.
이런 시선을 단순히 예술을 감상하거나 예술적 영감을 얻는 정도로만 소비하며 승화시킬 수만 있다면 속 시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한 면만 존재하지 않는 나, 타인, 사회의 수많은 사건과 사조들이 기어코 나를 확장시킨다. 그리고 그 불분명하고 모호한 현상 속에 내가 믿는 진리가 있음을 느낀다. 그것을 기반으로 어느 한 극단에도 속하지 않으며 모두에게 열린 시선을 두고 포용하고 싶다. 이것이 나의 이상이다.
이상은 곧 딜레마를 일으킨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뛰어난 통찰력으로 모두를 관조하겠다는 그 위대한 관점을 지속하려면 결국 타협할 수 없는 하나의 기준점이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럼 결국 그런 ‘척’하며 위선이나 떨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그 위선을 나에게서 발견할 때이다. 모두의 입장을 경청하고 싶다고 하지만 결국 그 이상 뒤에 숨어 어떤 판단도, 어떤 책임도 지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스스로가 우스워진다. 도달하지 못할 이상을 붙잡고 자기 위안을 반복하는 일이 진리인 것 마냥, 진정한 사랑인 것 마냥 여기고 있을까 두려워진다.
사실은 알고 있다. 완전한 중립과 완전한 포용은 없다는 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걸.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요하게 바라보는 것뿐이다. 특히 날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라면 더욱. 세상의 풍조에 따라 편하게 생각해버리고 싶은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찬찬히 하나씩 뜯어봐야 한다. 그래야 다양하면서도 섬세하고 단단한 시선을 가질 수 있다. 비겁하게 숨지 않을 수 있다. 비로소 진정한 포용에 가까워질 수 있다.
어쩌면 살아가는 내내 시끄러운 속을 잠재울 수 없으리라는 것 또한 안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고통스럽고 싶다. 잠잠한 절망 속으로 순순히 걸어 들어가고 싶지 않다. 안개 너머 지평선처럼 희끄무리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빛을 찾는 여정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