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부유하는 당신에 대해 생각한다.
부드럽지만 응축된 열기를 품은 오후 다섯 시의 볕을 닮은 당신을 마주했을 때, 무언가에 집중하는 순간에 반짝이는 그 눈빛을 보았을 때, 나는 당신을 동경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당신은 마치 여름 같다. 미풍에 흩날리는 나뭇잎처럼 가만히 흐르는 머리칼, 유연한 태도, 자유를 갈망하는 뜨거운 마음. 그 열망을 이야기할 때면 생동하는 눈썹과 입꼬리, 또 한 번 반짝이는 눈동자. 자신을 마주할 줄 아는 용기를 지닌 당신의 모습은 여름을 닮았다.
***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요가원에서였다.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던 차 우연히 집 근처 요가원에 등록하게 되었고, 온몸으로 초심자임을 티 내며 첫 수업에 참석했다.
비적비적 걸어가 맨 뒤 구석에 요가 매트를 펴고 앉아 앞을 보니 각자의 모양대로 요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팔다리를 쭉 펴고 스트레칭을 하거나, 작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들 사이에 가만히 앉아 명상하는 뒷모습이 있었다. 꼿꼿하게 편 허리와 동그란 뒤통수가 그의 첫인상이었다.
수련은 80분 정도 진행되었다. 스트레칭과 비슷하리라는 건 착각이었다. 가볍게 시작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따라가고 있는 찰나에도, 차분한 그의 모습이 여러 번 눈에 들어왔다.
조금 긴 앞머리를 연신 귀에 꽂으며 자신만의 모양으로 움직임을 이어가는 그 모습에서 나는 왜인지 자유로움을 느꼈고 뜻 모를 기시감이 들었다.
요가는 수련이 끝난 후 ‘차담’이라는 시간을 갖는다. 테이블을 두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강사가 내려주는 차를 함께 마시며 오늘 요가에서는 어떤 것이 좋았는지, 혹은 어떤 불편한 지점을 느꼈는지 등의 말들을 나누는 시간이다.
물론 내향인들을 위해 이 시간은 ‘필참’이 아니라는 다행스러운 배려도 있다. MBTI 검사에서 정확히 외향 51%, 내향 49%를 가진 나는, 내 2%의 외향성을 믿고 그 자리에 참석했다.
화기애애한 기운이 가득한 자리에 앉아 찻물이 끓는 소리를 들으며 차를 내리는 도구들, 차와 함께 먹을 만한 작은 간식들이 놓여 있는 테이블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 순간 ‘탁.’하고 물이 알맞게 끓었음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들었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찰나였다. 하지만 뒤통수와 꼭 닮은 동그란 눈에 어려 있는 반짝임을 알아보기엔 충분했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웅크리고 있던 몸을 요가로 활짝 열어내고, 따듯한 차를 마시니 몸도 마음도 말랑해져서 낯선 사이임에도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마음이 열리니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오갔다. 어떤 일을 하는지, 요즘 꽂혀 있는 것, 시시콜콜한 연애사 등을 나누다 ‘가슴 뛰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의 현명한 선택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가만히 경청하던 그가 말했다.
“가슴 뛰는 일이 곧 잘하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는 꼭 그렇게 만들고 싶어요. 지금의 저에겐 요가가 그래요. 요가 매트라는 작은 공간 위에서 제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고 있으면 가슴이 뛰어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자유를 느끼고요. 그럼 자연스럽게 내가 이전에 해왔던 선택이나 일들의 연관성은 상관없게 되고, 그저 ‘지금’ 좋아하는 이 일을 잘하고 싶어져요.”
뒤이어 여러 말들이 더 오갔지만, 나는 다시 한번 그 테이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오는 용기가 그런 결심을 만들어 내는 걸까.
여러 갈래의 마음들이 꼬리를 물던 찰나 차담은 정리가 되었고, 집으로 가려고 나선 입구에서 그와 다시 마주쳤다. 그리고 가는 방향이 같아 함께 걸었다.
나눴던 대화들에 대한 여운이 가시지 않은 내가 말했다.
“가슴 뛰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게 부러워요. 저는 제가 제일 어려운 사람이라 아직도 구별을 잘 못 하겠거든요.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누가 봐도 합리적인 선택만 해오기도 했고요.”
그러자 그가 또, 그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저도 비슷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온전히 자유로웠던 때가 없었다는 걸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걸 알아채니 무력감이 미친 듯 몰려와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저는 원래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운 좋게 만난 요가가 저에게 자유로움을 줬어요. 내가 정말로 원하고 좋아하는 건 가까이 있어요. 잠시 잊고 있거나, 놓치고 있을 뿐이죠.”
일순간 마음이 서늘해지며 무언가 채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덥지만 뜨겁지는 않은 열기가 훈훈한 미풍을 타고서 마음의 틈을 기어코 열어냈다.
***
나도 당신처럼 생동하며 반짝이고 싶었다. 동경에서 그치지 않고, 그런 인생을 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움직였다. 오랜 시간 무시해 왔던 마음속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려 애썼다. 그리고 그곳에는 잔인한 자기 검열에 솎아내어 진 욕망이 있었다. 끝까지 믿지 못해 버려진 내가 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막연한 공포가 밀려왔다. 이유를 알지 못해 더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이전에 해왔던 습관대로 쉬운 선택, 타인의 시선에 맞춰진 ‘합리적인’ 선택에 대한 욕구가 밀려왔다.
그때, 당신의 그 생동하던 눈동자를 떠올렸다. 가슴 깊은 곳에 닿아, 정수리와 손끝을 저릿하게 만들었던 그 열기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자 자그마한 틈이 생겼다. 꽉 움켜쥐어 숨기고 있던 내면의 무언가를, 이제는 조금씩 펴서 밖으로 꺼내어 보여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쓴다. 맞춤법도 문장 구조도 엉망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키보드 위를 내달리는 손가락, 노트 위에 휘갈겨지는 글자들 속에 나 자신을 직면하는 용기가, 가슴 뛰는 생생한 삶이 있다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당신이 그렇게 열망하고 갈망하는 자유로움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알게 될 것이다.
자그맣게 열린 마음의 틈새를 부드럽게 비추는 오후 다섯 시의 볕 같은, 미풍에 흩날리는 나뭇잎 같은, 흩날리며 반짝이는 눈동자 같은 자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