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먹고 맴맴
나의 고향 마을 앞은 바다요 뒤는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봄이 되면 우리의 놀이터는 바다에서 산으로 옮겨졌다. 당시 가난했던 시절 집에서 간식을 챙겨 먹는 일은 거의 드물었다. 고구마, 감자, 옥수수도 거의 주식으로 먹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아이들은 바다와 산과 들로 먹을 것을 찾아 헤맸다. 자연은 우리들의 출출한 배를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바다는 조개와 물고기와 해초를, 산과 들은 야생 과일과 야생 꽃을 우리에게 간식으로 주었다. 봄이 되어 온 산과 들이 진달래 꽃으로 울긋불긋 물들면, 우리는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면서 입이 시커멓도록 참꽃을 따먹다가 더 이상 배가 허전하지 않으면 꽃가지들을 꺾어와 집에 장식용으로 꽃병에 꽂아놓곤 했다. 가끔 나는 꽃잎들을 치마폭에 가득 따 가지고 와서는 할머니한테 참꽃 떡을 만들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떡은 아니지만 찌짐 할 때 꽃잎을 넣어서 해주시곤 했다. 당시 밀가루도 귀했지만 쌀가루와 찹쌀가루는 명절이 아니면 좀처럼 구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동해 해변가에는 소나무 밭이 많은데, 봄이 되면 소나무의 새로운 가지들에 한창 물이 오른다. 그 가지들을 꺾어 껍질을 벗기면 약간 쓰면서도 달짝지근한 즙을 빨아먹을 수 있는데 이 물오른 가지들을 우리는 송구라 불렀다. 나와 조무래기 여자애들은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기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주로 두세 살 많은 오빠들을 따라 솔밭으로 갔다. 오빠들은 낫으로 가지를 쳐서 껍질을 벗긴 후 우리들에게 주었는데 소나무 향이 듬뿍 배인 그때의 그 단물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4월의 참꽃 시즌이 지나고 5월이 되면 철쭉꽃이 온 산을 붉게 물들였다. 참꽃이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시골 새색시 같다면 철쭉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도시의 여인 같다고나 할까. 어른들은 이를 독성이 있다고 하여 개꽃이라 불렀고, 우리더러 먹으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지만 탐스럽고 소담스러운 철쭉꽃들 앞에서 우리의 출출한 배는 요란한 소리를 냈고 우리의 손은 저절로 꽃을 따서 우리의 입으로 가져갔다. 참꽃보다 좀 더 쓰고 싸한 맛이 났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은 했다. 그런데 독성이 있다는 어른들의 말이 생각나서 찝찝하기는 했는데, 누군가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개꽃을 먹을 때는 해를 한번 쳐다보고 먹으면 별 문제가 없다고 해서 그때부터 우리는 그 말만 믿고 마음 놓고 개꽃을 따서 삼켰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은 일종의 미신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는데, 다행히도 우리들 중 누구도 개꽃을 먹고 배탈이 난적은 없었다. 우리의 위가 그만큼 튼튼했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강렬한 햇빛이 독성을 해소시켜 주었던 것인지…
이외에도 통통하게 물이 오른 찔레, 갖 피어난 솔 밥, 들을 헤매다 보면 심심찮게 발견하는 뱀딸기, 아카시아꽃, 지금은 그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없는 온갖 종류의 풀과 열매들이 식사 시간 전후 늘 허전한 우리의 배를 채워주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중에는 분명 독성이 있는 것들도 적지 않았을 텐데, 내가 지금 이 나이가 될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온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