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

by 정영태

매듭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풀어낼 재간이 없다. 이래저래 묶인 매듭을 풀어 보려 애써보지만 그럴수록 더 꼬여만 간다. 급기야 손에 쥐고 있던 실을 가위로 삭둑 잘라 버리고 다시 매듭을 지어 시작한다. 깊어 가는 겨울밤, 누나와 마주 앉아 실뜨기 놀이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자물통 채우기가 들불처럼 번진다. 관광지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자물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연인이나 친구 사이에 변치 말자는 의미로 하는 행동 같다. 열쇠는 보관하지 않고 버린다고 한다. 서로 간에 약속인 셈이다. 자물통 하나로 의리가 지켜진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살다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나이가 들면 마음이 바다와 같이 넓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사소한 생각 차이로 서로 냉소해지고 두 번 다시 안 볼 사람 같이 싸늘한 눈길을 보낸다.

단단히 묶인 매듭은 여간해서 풀리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이 있고 그 중심에는 매듭이 있다. 동창회와 문학회 등 크고 작은 모임도 한 테두리 안에서 친목을 다지는 것이다. 소속감을 두고 취미 활동을 한다. 그러다 가끔은 같은 구성원 사이에 뜻이 맞지 않을 때 묶인 매듭을 풀어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한 줄의 글이 흉기가 될 수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치인이나 예인인 등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여차하면 가짜 뉴스에 시달린다. 가짜 뉴스란 사실이 아닌 형태의 내용을 진짜인 것처럼 만든 뉴스다. 팬이라는 이름으로 가짜뉴스를 유포해 당사자를 괴롭힌다거나 심지어 자살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 모 국회의원이 초등학교 교사 자살 사건에 가짜 뉴스가 유포되어 최초로 퍼뜨린 자를 고발하기도 했다. 가짜뉴스 유포자를 붙잡고 보면 한결같이 장난삼아서 했다고 하는데 그 장난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사람의 목숨까지 걸린 문제를 장난으로 했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말보다 더 강력한 것이 글이다. 말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라도 하지만 글은 지우지 않은 이상 영원히 보관될 수 있다. 지인에게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그와는 그리 가깝지 않은 가끔 만나 안부를 묻는 정도였다. 어느 날에는 난데없이 그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반말도 아니고 존댓말도 아닌 이상한 글로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글을 읽는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동년배이지만 늘 예의를 갖추었는데 알고 보니 나에게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황당했지만 더는 관여치 않고 어떤 사유가 있을 거라고 하며 넘겼다.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매듭이 한순간에 풀어버린 것이다. 원수지간처럼 지낼 것 같은 두 사람이었다. 예전에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의 이야기다. 노태우 장군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전 대통령의 개인 비리를 들추어 구속했다. 전 대통령은 감옥으로 갔고 노 대통령은 자신은 청렴결백하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 사람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노 대통령 역시 임기를 마치고 재직 중 비리로 구속되었다. 서로 물고 물리는 상황에서 어느 날 같은 법정에 서게 되었다.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둘이 나란히 법정에 서는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 이것에 방송국 카메라에 잡혀 뉴스에 나왔다. 죄와 벌을 떠나 단단하게 묶여 있을 것만 같았던 마음의 매듭이 자연스레 풀린 것이다. 그들은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동향 사람이고 친구 간이었다.

내가 먼저 매듭을 풀어 보고자 했다. 약간의 욕설 뉘앙스가 섞인 문자를 받은 후 몇 달 동안 그로부터 안부도 묻지 않은 채 그럭저럭 지속되었다. 글을 보낸 지인은 나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그해 년 말 어느 날에는 느닷없이 그에게 전화해서 한 시간 내로 우리가 자주 만나던 장소로 나오라고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시간 맞춰 그는 약속한 자리에 나왔다. 소주 한잔 들이킨 후 미안하다는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는 게 뭐 별거 있더냐.’라고 시작하는 유행가 가사처럼 몇 달간이었지만 묵은 감정은 사그라지고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엉켜 있는 실타래도 풀어내는데 사람 일인데 안 될 것이 어디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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