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어느 멋진 날에

by 정영태


시월 어느 멋진 날에

정영태

일 년 삼백육십오일, 하루하루가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다. 이날은 이래서, 저 날은 저래서 기억에 가두어 두고 싶다. 시월 어느 하루는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날이 되고 싶다.

시월 어느 멋진 날에, 노래 제목이 아니다. 지난해 시월 십사 일, 기억에 남는 좋은 여행을 했다. 파란 하늘에는 하얀 새털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내리쬐는 태양을 멀리 날려 버렸다. 이런 기회를 틈타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낙동강 둑길을 달렸어도 오늘과 같은 들뜬 기분은 근래 들어 없었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오전 열 시다. 서둘러 집을 나서니 친구가 먼저 도착해 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씩 마시고 오늘의 일정을 계획했다. 목표는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 나루터에서 출발해 달성보를 거쳐 달성공단 사잇길 설티재를 넘어 송해 공원까지 가는 것으로 목표를 잡았다.

화창한 가을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길, 길섶에는 계절에 걸맞은 억새가 목을 길게 빼고 꽃을 피워 바람결에 일렁이고, 구절초는 연미색으로 줄지어 피었다. 낙동강 자전거길 구간에는 가을이면 산국이 많이 핀다. 계절이 아직은 이른지 산국은 노란 봉우리를 물고 찬 바람이 불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강과 들을 바라보며 쉬엄쉬엄 페달을 밟다 보니 달성보 교각이 눈앞에 나타났다.

사대 강이 개발되기 전, 그때 가을은 지금보다 풍광이 더 좋았다. 덜컹거리는 비포장 자갈길에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때로는 걷기도 했다. 늦여름이나 초가을이면 강둑에는 수박, 참외, 오이가 주렁주렁 달렸다. 이른 봄에 강둑 넘어 넓은 들에서 재배한 수박 등 수확을 마친 후 줄기를 강둑에 내다 버렸다. 그 줄기에서 다시 싹이나 꽃이 피고 열매가 달려 늦여름부터 익기 시작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자연산 수박, 오이, 참외였다.

가을 향기를 헤치며 달려간 달성보. 사문진 나루터에서 달성보까지 두 시간 정도 걸렸다. 달성보 다리 중간 지점에 있는 간이 쉼터에서 쉬기로 하고 자리를 잡았다. 유유자적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도 강물과 같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리 난간에 기대어 지나온 삶의 시간이 머릿속을 스쳤다. 무엇을 위해 허둥지둥 바삐 움직이며 살았는지, 이제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지금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때가 되었는지 시장기가 돌아 준비해 간 간식 보따리를 풀어 헤치니 친구도, 나도 먹거리를 많이도 챙겨왔다. 과일과 떡을 먹으며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을 나룻배로 싣고 와 해인사로 옮긴 고령 개경포로 가느냐, 달성 공단을 중간에 있는 설티재를 넘어 송해 공원으로 갈까 잠시 고민하다 계획대로 송해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자전거 타고 여행 다닌 지는 삼십여 년이 넘었다. 그땐 젊은 혈기로 산과 들, 닥치는 대로 누비고 다녔다. 어느 날에는 경상남도 거창읍까지 차에 자전거를 싣고 갔다. 거기서 차는 세워 두고 자전거를 타고 남덕유산 아랫마을 경남 거창군 북상면 황점 마을을 넘어 경남 함양군 서상면에 있는 영각사까지 갔다. 다시 거창읍으로 오기까지는 열 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뿐이랴, 고령에서 성주 댐을 거쳐 김천 청암사까지 갔다 오기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전거를 타며 즐겼다. 메뚜기도 한철이란 말이 있듯이 지나고 보니 그 젊음도 잠깐이었다.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다음은 달성 공단 삼거리다. 이곳에서 달성군청에서 핑크뮬리와 해바라기를 심어 핑크와 노랑이 어우러져 절정을 이룬다. 내가 가는 날, 이 시간이 최고로 여기고 해바라기꽃에 파묻혀 엉거주춤한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고 순간을 만끽했다. 달성공단 삼거리는 오래전에 낚시를 다녔다. 공단 복개천에서 내려오는 물과 낙동강 본류 물이 합치는 지점에 잉어 붕어가 많이 살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밀려오면 풀벌레들이 징그럽도록 사람 몸에 달라붙었다.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달성공단 중간 도로에서 오르막이 심한 설티재를 넘어야 한다. 달성공단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1997년에 달성군 논공면 일대를 공단으로 조성해서 지금은 350여 개의 기업체가 상주해 우리나라 산업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자전거 길이 따로 없는 공단 도로, 산업용 차량이 많아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대형 트럭이 지날 때마다 잠시 멈추었다가 가기를 반복했다. 도로 사정을 전혀 모르면서 괜히 왔나 하는 생각에 후회가 되었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자전거를 갓길에 붙이며 아주 천천히 끌고 가면서 겨우 설티재를 넘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기 마련, 극도로 긴장한 상태로 재를 넘었더니 피로가 몰려왔다. 재를 넘자 송해 공원까지는 자전거 타기가 수월한 내리막길이다. 내려오면서 식당에 들러 간단한 요기를 할까 하다 내리막길이라 그냥 지나왔다. 송해 공원 백세교 정자에서 남은 간식을 모두 먹고 잠시 쉬다 송해 기념관으로 갔다. 이곳은 2022년 6월 8일에 타계하신 송해 선생의 유품을 모아놓은 곳이다. 기념관을 관람하고 부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출발했다. 집에 오니 오후 여섯 시, 아침 열 시에 출발해 오후 여섯 시까지 자전거를 탔으니 총 여덟시간 걸린 셈이다.

근 십여 년 만에 장거리 자전거를 탔다. 체력은 많이 약해졌어도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다. 점점 깊어져 가는 가을, 하루의 행복을 만끽하며 조용히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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