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 만에 외출

by 정영태

이십 년 만에 외출

정영태

무수히 발생하는 사건, 사고, 하루도 빤 한 날이 없다. 어느 날에는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고, 어떤 날에는 원한 관계로 다투다 우발적인 살인으로 이어진다. 일면식에 없는 사람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하는가 하면 생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도 있다. 태어날 때부터 악한 사람은 없다. 살아가면서 환경에 지배받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성질이 날카로워지고 폭력적인 성격으로 바뀐다.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많아진다. 우리나라에 애완동물 기르는 사람이 일천오백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상황이 이르다 보니 산책길에 개를 데리고 오는 사람이 허다하다. 개를 키우며 데리고 다니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나중의 일이다. 귀엽다며 껴안고 키우다 상황이 좋지 않으면 한순간 내다 버리고 만다. 동네 소식지에 떠돌아다니는 개, 고양이의 주인을 찾는다는 씁쓸한 기사가 번번이 올라온다. 말 못 하는 동물을 사람이 버린 것이다.

길거리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에 당황했다. 길을 걷다 횡단보도 앞에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가랑이 사이를 뭔가 스친다. 아래를 보니 얼룩무늬 고양이다. 내가 주인인 줄 알고 그러는지 은근슬쩍 애교를 부린다. 아무런 반응 없이 멀거니 쳐다보니 이번에는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슬쩍 기댄다.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며 비 오는 날 지렁이 보듯 이리저리 피한다. 고양이 역시 어정쩡한 모습으로 어디로 갈지 갈피를 못 잡는다.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것을 보니 누군가 키우다 버림받은 고양이가 자명하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더니 어찌도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나이가 한 살 올라갈 때마다 지나간 시간이 그리움이 되어 밀려온다. 그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잊고 살았던 지난 일이 새삼 그립다. 지금은 개나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어릴 때는 무척이나 귀여워했다. 마당에 묶어놓은 개는 밖에서 놀다 집으로 돌아오면 반갑다고 껑충껑충 뛰어오르며 꼬리를 흔들었다. 새끼를 낳아 마당에 기어다니는 강아지 붙잡아 뽀뽀해 주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먹고살기에 바빠 삶에 찌들다 보니 감정이 메말랐는지 개와는 벽을 쌓게 되었다. 그러나 여태껏 보신탕 즉, 개와 관련된 음식은 한 번도 입에 넣지 않았다.

한때는 살생을 밥 먹듯 했다. 예전에 즐겨하는 낚시이었는데 손 놓은 지가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그때는 낚시 갈 마음에 부풀어 주말을 기다렸다. 어떤 날에는 잠자리에 누우면 낚시찌가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자다 벌떡 일어나면 낚시터 같은 기분이 들 때도 많았다. 낚시는 손맛, 물고기가 입질하는 찰나에 순발력을 이용해 낚아채는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옛말에 낚시 손맛은 논 서 마지기와 바꾸지 않는다고 했다. 그 짜릿한 느낌은 물고기를 낚아보지 않은 사람은 알 리가 없다.

불교, 살생. 어느 종교든 살생하라고는 않겠지만 불교는 첫 번째 계율이 살생하지 말라 이다. 낚시에 손 놓게 한 계기도 스님이 한몫했다. 절에 다닌 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러기에 스님하고 친분을 넘어 아주 가까이 지내던 차에 내가 낚시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님은 함부로 살생하지 말라며 몇 번이고 낚시 가는 것을 말렸다. 그럼에도 스님 말에는 소귀에 경 읽듯 허투루 넘기고 계속 낚시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스님이 절에 왔다 가라는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강도가 높다. 물고기 잡는 자체가 살생과 다름이 없다면서 스님 말씀이 이어졌다. 물고기를 잡았다 집에 올 때는 놓아준다고는 해도 그게 더 나쁜 행동이라 했다. 어린아이에게 과자를 입에 넣어 주었다가 다시 뺏는 것과,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어 물고기가 물면 잡았다 다시 놓아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거듭 낚시는 다니지 말라고 타일렀다. 그 후부터는 생각이 달라졌고 자연스레 낚시와는 멀어지고 대신 산으로 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 젊은 시절 승용차가 귀하던 때였다. 토요일 오후 퇴근과 함께 친구들과 낚시를 가기로 했다. 그날따라 오전 근무지만 일은 오후까지 이어져 집에 오니 오후 세 시가 넘었다. 그 사이에 친구들은 나만 두고 낚시터로 떠났다. 하는 수 없이 승용차가 있는 스님에게 낚시터까지 차를 태워달라고 했다. 스님은 낚시 간다고 구시렁거리면서도 내가 가고자 하는 장소까지 차를 태워준 기억이 새롭다.

근래 들어 다시 낚싯대를 만지작거린다. 예전에 같이 다니던 친구가 낚시 이야기를 자주 하던 차에 이웃집 사람은 한술 더 떠 같이 낚시 가잔다. 다시 낚시에 호기심이 발동하고 예전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망설이다 케케묵은 낚싯대는 꺼내 점검하고 이웃집 사람이 밤낚시 가는 날에 나도 도구를 챙겨 길을 나선다. 이십 년 만에 외출인 셈이다. 해 질 무렵에 낚시 가방을 메고 출발해 야심한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왔다. 추억을 되살려 간 밤낚시는 여전히 흥미롭다.

취미로 낚시하는 사람이 많다. 낚시로 물고기를 잡는 행위가 살생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놀이기에 권장할 취미는 아닌 듯하다. 내가 무심코 던진 돌이 개구리에게는 사망에 이른다고 한다. 난 취미로 낚싯대를 물에 드리우지만 미끼를 물고 잡히는 물고기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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