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의고래:시선너머의 공간
타인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시간 절약을 위해 사람을 선별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에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타인은 빠르게 파악하는 것을 선호한다. 어떤 사람의 한 가지 측면의 모습, 어떤 한 가지 에피소드로 그 사람의 열 가지를 미루어 짐작한다. 이 가정은 높은 확률로 들어맞는다. 내가 누군가를 노란색 안경을 끼고 보기로 했다면 그 사람이 노란색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나 그런 것까지 고려할 시간이 없다.
여기 고래 떼들을 보자. 바쁜 발걸음으로 이 설치 작품을 지나친다면 고래가 매달려 있다는 것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건 자세히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영하는 고래 떼가 비행하는 고래로도 보인다. 위에 설치된 청자빛 도자기 기물은 날개 같기도 하고 연흔 같기도 하다. 바닥에 설치된 거울에 비친 모습은 영락없는 물속의 물고기로도 보인다. 시간을 들여서 이 작품을 보고 있자면, 한순간에 내리는 평가가 얼마나 단순하고도 폭력적인지 알 수 있다.
오랜 시간 노정애 작가가 너겟 같이 생긴 고래를 품에 안고 깎고 다듬어 300여 마리를 완성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저 청자판이 들어간 가마가 멈추는 사건도 있었다. 창작의 과정은 즐겁고도 고통스럽다. 작가는 그 시간을 견디며 이 작품을 완성할 때 어떤 말이 그토록 하고 싶었을까? 더 많은 사람들이 직접 이 설치 작품에 멈추어 서서, 각자의 생각에 사로집힌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