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에스테이트 세일'에는 어떤 향기가 남을까

by Dreaming

미국에는 "에스테이트 세일(Estate Sale)" 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집주인이 세상을 떠나거나 멀리 이사를 갈 때, 그 집에 남겨진 가구, 그릇, 옷부터 아주 작은 소품들까지 전부 다 공개해서 파는 일종의 '집 전체 벼룩시장'이다. 누군가가 평생을 살았던 집안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그 사람이 어떤 취향을 가졌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느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작년 여름, 친구 자즈민의 손에 이끌려 집 앞 에스테이트 세일에 가본 후 나는 완전히 중독됐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취향’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빈티지한 가구와 소품을 좋아했던 내게, 누군가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그 공간은 너무나 재미있는 보물창고였다.


어떤 집은 거실 한구석에 쌓인 피아노 악보와 작은 장식품들만 봐도 주인이 누군지 딱 알 것만 같다. 또 어떤 집은 카메라 수집에 진심이었던 주인의 시선이 느껴지고, 어떤 집은 무지갯빛처럼 컬러풀하다.

자즈민은 낡은 액자 프레임만 보면 눈이 반짝이고, 나는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빈티지 시계와 쥬얼리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긴다.


‘이 물건들의 주인은 세상을 떠나며 어떤 느낌을 남기고 싶었을까?’


숨 가쁘게 채워온 나의 창고

문득 에스테이트 세일 구석에 산처럼 쌓여있는 새 전구 박스들을 보며 씁쓸한 웃음이 났다. 다 쓰지도 못할 물건들을 저토록 쟁여두며 주인은 어떤 내일을 꿈꿨을까. 그 모습이 마치 성공이라는 화려한 목표를 채우기 위해 스스로를 갉아먹던 내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의 일상은 커리어라는 전구를 갈아 끼우느라 늘 과열되어 있었다. 남편과 근사한 저녁 데이트를 하면서도 머릿속엔 '아직 처리하지 못한 메일'과 '내일의 프로젝트'가 둥둥 떠다녔다. 눈앞의 사랑하는 사람보다 모니터 속의 성과가 더 시급했던 날들.


성공을 쫓느라 숨 가쁘게 달리는 동안, 정작 나는 내 곁의 동료들에게, 가족들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혹시 나도 다 쓰지도 못할 전구 더미를 쌓느라 정작 지금 이 순간의 빛을 놓치고 살았던 건 아닐까.


“아끼면 똥 된다”는 삶의 진리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이 던진 한마디는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선생님이 선생님이 된 이유는, 나중에 내 장례식에 사람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서야.”

어린 나이엔 그저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이제야 그 말의 뜻을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 누군가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들어와 나의 '에스테이트 세일'을 구경할 때 그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고등학생 시절 과제로 썼던 나의 추도사(Eulogy)를 떠올려 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지구별 여행 중에, 나는 매일 내가 기억되고 싶은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인생은 생각보다 짧고, “아끼면 똥 된다”는 말은 아끼는 그릇이나 보석에만 해당되는 게 아닌 것 같다.


매일의 향기를 고르는 시간

에스테이트 세일을 다녀온 날이면 거울 앞에 서서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내가 떠난 자리엔 퀘퀘한 욕심의 먼지 대신, 누군가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따뜻한 향기가 남아있을까?


나는 이제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 한다. 쌓아두기만 하는 전구 대신 지금 이 순간을 밝히는 빛을 선택하고, 일에 파묻혀 놓쳤던 사람들의 눈을 한 번 더 맞추는 것.


훗날 나의 에스테이트 세일에 찾아올 낯선 사람들이 내 물건들을 만지며 "이 집주인은 참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나 봐"라고 말해준다면, 나의 여행은 꽤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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