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불에서 나를 구하기 위해 달렸던 15년

by Dreaming

한창 일에 치여 멘탈이 바스러지던 2~3년 전, 나는 전문 상담사와 수없이 대화하며 내 마음의 밑바닥을 긁어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왜 내가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그토록 일에 매달려 왔는지. 그 끝에는 15살,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디뎠던 그 서러운 소녀가 서 있었다.


한국에서 친구들 사이의 중심에 서길 좋아하던 발랄한 소녀에게 미국 이민은 청천벽력 같았다. 9학년, 영어 한마디 못 한 채 던져진 학교에서 나는 졸지에 '투명인간'이 되었다. 20년 넘게 대기업을 다니던 아빠가 낯선 땅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맨땅에 헤딩하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스스로를 “매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어두운 땅속에서 버텨야 하는 시기라고,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매일 밤 날개를 갈고닦았다. 이 지옥불 같은 현실에서 나를 구할 방법은 오직 좋은 대학과 직장뿐이라는 강박이 나를 지배했다.


그렇게 기적처럼 들어간 대학에서도 경주는 멈추지 않았다. 취업에 유리한 회계와 재무를 복수 전공하고, 네트워킹을 위해 매주 소셜 라이프에 뛰어들었으며,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두 번의 교환학생과 매 여름의 인턴십을 바둥거리며 해치웠다. 때로는 사무치게 외롭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도 들었지만, 목표가 뚜렷했기에 멈출 수 없었다.


결과는 감사하게도 대형 컨설팅 펌 취업과 CPA 자격증 취득으로 이어졌다. 남들보다 몇 배는 더 고생해서 얻은 기회였기에, 내 커리어는 곧 나의 전부이자 자부심 그 자체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구원해 줄 줄 알았고, 내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그 성공의 정점에서 나는 번아웃이라는 더 큰 벽을 만났다. 나를 지키기 위해 쌓아 올린 견고한 커리어가 오히려 나를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상담사와 대화하며 나는 15년 전 그 떨고 있던 ‘매미’ 소녀를 만났다. 그리고 말해주었다. “이제 충분해. 넌 이미 땅 위로 올라와 멋지게 날아올랐어. 이제는 조금 쉬어도 괜찮아.”


이제 와 돌아보니 과거의 나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친구가 세상의 전부였던 그 소중한 시기에, 익숙했던 모든 관계를 잃고 낯선 땅에서 투명인간처럼 다시 시작해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남들을 따라잡기 위해 두 배로 치열했던 대학 생활, 그리고 파트너 트랙을 향해 경주마처럼 달린 컨설팅 펌에서의 시간들까지. 사실은 조금 늦어도 괜찮았고, 내 페이스에 맞게 쉬어가며 왔어도 충분했을 텐데. 스스로를 너무 가혹하게 밀어붙였던 그 시절의 내가 참 가엽고도 대견하다.


서른 살 초반, 한국과 미국에서 산 기간이 비로소 반반이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달리지 않는다. 그 치열했던 생존본능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인정하되, 이제는 그 에너지를 ‘나’와 ‘가족’, 그리고 곧 만날 작은 생명 ‘쨍쨍이’를 위한 평온함으로 바꾸려 한다. 15살의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구원은 화려한 타이틀이 아니라, 오늘 내가 누리는 이 고요한 평화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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