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의 평온한 거실에서 문득 2년 전, 그 폭풍 같았던 시간의 메모를 꺼내 본다. 그때의 나는 이른바 '물 들어올 때 노 젓던' 시기였다. 신입 시절과 비교해 연봉은 3배를 찍었고, 남들보다 빠른 승진을 거듭하며 소위 말하는 '파트너 트랙'을 눈앞에 둔 6년 차 컨설턴트였다.
미국 대도시를 가로지르는 비즈니스 트립, 화려한 호텔 로비, 최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저녁 식사... 밖에서 보면 완벽한 성공의 궤도였지만, 그 화려한 조명 아래 나의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성공의 지표가 올라갈수록 내 일상의 색채는 반대로 희미해졌다.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원래 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면 "이건 비즈니스로 만들어야 해!"라며 눈을 반짝이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그 설렘이 완전히 증발해 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고통스러웠고, 아주 작은 업무조차 천근만근의 무게로 나를 짓눌렀다. 내 인생의 통제권을 빼앗긴 기분, 거대한 벽에 갇혀 'Stuck' 된 느낌. 초라해진 내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자꾸만 동굴 속으로 숨어들었다.
당시 맡았던 프로젝트는 거대한 이해관계자들이 부딪히는 '고래 싸움'의 현장이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나는 그저 등이 터져나가는 새우였다. "나는 정치인인가, 이혼 전문 변호사인가?"라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본질적인 가치와는 거리가 먼 감정 소모와 비합리적인 요구들만 남았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건, 내가 1을 하나 100을 하나 조직의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허무함이었다. 거대한 시스템 속의 부품이 되어버린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이토록 버티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시도해 보았다. 책 요약 앱을 보며 "어차피 우린 다 죽는데 왜 두려움 속에 살까?"라는 문장에 뒤늦게 전율했고, 커리어 코칭을 받으며 내 안에 여전히 '기업가 정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남편의 권유로 시작한 요가는 때로 역효과를 냈지만, 역설적으로 "나 이제 못 하겠어!"라고 외치며 시작한 구직 활동(Job search)은 내게 기묘한 에너지를 주었다. "내가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상상만으로도 굳어있던 뇌가 다시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멘토에게 "더 이상 못 하겠다"라고 고백하던 날, 나는 엉엉 울었다. 내가 포기하면 무너질 것 같았던 세상은 의외로 담담했고, 오히려 나를 지탱해 주던 동료들의 진심 어린 위로가 쏟아졌다.
"그동안 해온 게 아까워서",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것 같아서"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었던 건 바로 나였다. 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했기에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무너지는지, 나에게 진짜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언제든 이 판을 떠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정도면 충분히 버텼다. 화려한 연봉보다 값진 건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지켜야 할 성공은 없다'는 뼈아픈 교훈이었다. 그때의 멈춤이 있었기에, 지금 오스틴에서의 평온함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