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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Mar 20. 2023

 어느 여름날의 불청객

 진정한 협업

 몸은 가까운데 마음은 먼 지구상 최강 생명체, 바퀴벌레. 존경받아 마땅한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녀석과 만났을 때 반응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비명 or 욕을 하며) 때려잡는다.

두 번째, (비명 or 욕을 하며) 약을 찾는다.

 물론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거나 속으로만 꿍얼꿍얼 불쾌감을 드러낼 수도 있겠지만 결코 웃음이 나오지는 않는다. “어이구, 바퀴벌레 나왔구나~”하면서 성인군자처럼 허허 웃는 사람은 덕망 높은 스님이나 바퀴벌레 학자가 아닌 이상 없을 것이다. 어쨌든 간에 놓치는 순간 집안에 또 다른 왕국이 세워질 수 있으니 녀석을 발견한 즉시 퇴치하는 게 제일이다. 하지만 약을 뿌리거나 때려잡는 것조차 불가능한 사람도 있는데 그게 바로 나다. 나는 녀석들 앞에 서면 자신을 집어삼킬 맹수를 만난 듯 몸이 얼어붙어 제대로 도망도 못 간다.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퇴로를 판단할 수조차 없다. 그 자리에서 땅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그래서 놈들을 잡아내는 능력을 타고난 인물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장담하는데 녀석들은 크기와 상관없이 비호감이다. 크기가 커질수록 역겨움이 플러스 될 뿐이다. 새끼라고 해서 사랑스럽긴커녕 오히려 바글바글한 쌍둥이들이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미국산 바퀴나 일본산 바퀴처럼 거대한 놈들은 정말 최악이다. 그 녀석들은 천장에 거꾸로 붙어있기도 하고 심지어 하늘을 난다. 파닥파닥... 그리고 나는 지난여름, 그 녀석들을 만나고 말았다.


 이사를 하고 얼마 안 된 여름날, 아침 일찍 언니의 비명이 들려왔다. 거실로 나와보니 우리의 털북숭이 보디가드가 놀랐는지 학학대며 베란다를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는 그를 슬쩍 밀어낸 뒤 베란다 쪽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왜? 무슨 일 있어?”

 “... 바... 바퀴.. 엄청 커...”

 바퀴벌레라는 말에 내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렸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 살았어?”

 나는 본능적으로 ‘회피’를 장전했다. 거리상 아직 도망칠 가능성이 보였다. 살아있다고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방으로 뛰어가야지 생각했다. 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수로 잡겠냐마는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태생부터가 벌레 퇴치엔 완전히 글러 먹은 심신쇠약이었다.

 “아니 죽어 있어......”

 “에이 그럼 뭐 치우기만 하면 되겠네.”

 죽었으면 시체 처리만 하면 끝날 문제였다. 당연히 내가 할 자신이나 솔선수범할 마음은 요만큼도 없었다. 그렇다. 바퀴벌레는 죽었든 살았든 그냥 무서운 존재다.

 “엄청.. 엄청 크다니까...”

 그녀는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제자리에서 빙빙 돌며 “진짜 커, 진짜 커”를 고장 난 플레이어처럼 중얼거렸다.

 “얼마나 큰데?”

 그래봤자 바퀴벌레지. 나는 손가락 한두 마디려니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데 언니가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손목을 4cm 정도 남기고 원을 그렸다. 중지 끝부터 손목 근처까지 원을 뱅글뱅글 그리며 귀신을 소환한다는 분신사바를 하듯 계속 “이만해, 이만해...”를 외치면서 흐느꼈다.

 대략 15cm. 30년 가까이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규모다. ‘이것은 지구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사이즈다.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며 나는 “말도 안 돼...”를 연발했다. 우리 자매는 바퀴벌레 사체 하나로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그.. 그래도 죽어서 다행이네.. 살아있었어 봐..”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언니에게 나름의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거대한 녀석이 살아있었다면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외계 생명체로부터 우리 집을 사수하는 전쟁. 아마 녀석이 발가락 하나 까딱하면 우리는 비명을 지르고 더듬이를 움직이면 울고 하늘을 날면 기절했을 게 뻔했다.

 “나 저거 못 치워, 못 봐...”

 언니는 절망에 빠져 머리를 움켜쥐었고 이 이상 처리를 강요했다간 119를 타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해볼까? 어차피 안 보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차마 손으로 만질 용기가 나질 않았다. 휴지로 싼다 해도 감촉을 무시할 수 없는 사이즈였다. 빗자루로 쓸어 담거나 집게로 집어볼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들고 가다가 집 안에서 떨어뜨리면...? 아니면 집다가 애가 부서져서 여기저기 토막들이 굴러다니면...?’

 최악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장점 상 녀석의 시신을 보지 않아도 되지만 이것을 들어 올리는 데는 인형 뽑기만큼이나 정밀한 컨트롤이 필요했다. 부서지지 않으면서 떨어뜨리지도 않을 완벽한 위치에 집게를 맞춰야 하는데 나에겐 그런 기술 따위 없었다.

 나는 우선 내가 해볼 수 있다고 말한 뒤 상상한 최악의 상황을 덧붙였다. 그녀 역시 발생할지 모를 그 끔찍한 사태에 기겁하며 실행하기를 거부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흩어진 시체들을 치우는 건 100% 그녀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민 끝에 우리는 전문 업체를 부르기로 했다. TV 광고에 나오는 콤은 얇은 지갑을 가진 우리에겐 부담스러웠고 개인이 하는 작은 업체를 불렀다.

 “아저씨 오면 치워주겠지... 소독도 싹 한번 받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외계 생명체 시신과 그녀만을 남긴 채 훌쩍 출근해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니 시신과 언니의 그늘은 말끔히 사라진 상태였다. 나는 저녁을 먹으며 업체 방문에 관해 물었다.

 “아저씨는 아무렇지 않게 주워서 가방에 넣더라. 그냥 무슨 물건 집듯이. 역시 프로는 달라!”

 히어로를 만난 그녀는 경이롭다는 듯 신이 나서 업체 사람을 칭찬했다. 그 어떤 거대한 바퀴벌레라도 모조리 해치워버리는 그 사람들은 마블 시리즈 영웅들보다 분명 현실적인 히어로였다. 그런 위대한 사람들이 우리 집을 6개월 동안 지켜주는 데 13만 원이라니. 이 계약으로 평생 녀석들을 안 볼 수 있다면 종신 계약을 맺고 싶은 심정이었다.

 “근데 당분간 더 나올 수도 있대... 약 쳐도 완전 박멸까지는 2달 잡아야 한대...”

 “그래도 안 한 것보단 금방 없어지겠지...”

 더 나온다는 말에 씹고 있던 나물이 괜히 바퀴벌레 더듬이처럼 느껴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그것을 삼켰다. 그녀 말에 따르면 업체 직원이 녀석이 출몰한 베란다 하수구부터 집 안 곳곳과 심지어 현관 앞 계단까지 약을 쳤고 놈들이 드나들 법한 구멍이란 구멍은 모조리 막아버렸다고 했다. 게다가 용사, 사촌 오빠의 등장으로 바퀴벌레 트랩까지 설치되면서 집은 철벽 방어를 자랑하는 성이나 다름없었다. 이 이상 어떻게 개조할 수 없는 완벽한 요새였다. 그럼에도 또다시 녀석들이 우리 집을 점령하려 들 거라는 의심을 지우지 못한 탓에 우리는 서로에게 괜찮을 거라 말하면서도 절대 베란다 문을 열어두지 말자는 규칙을 만들었다.

 그리고 당일 밤, 나는 도통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보일 리 없는 무언가가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바퀴벌레의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광택 비슷한 것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녀석이 어딘가에 매달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만든 환각임을 알고 있는데도 나는 눈알이 버석버석 마를 때까지 천장을 응시했다. 겨우 잠이 들만하면 정체 모를 소리가 들려왔고 곧장 의식이 돌아왔다. 개수대 물방울 소리나 이웃집 발소리, 창문 흔들리는 소리... 오래된 빌라의 삐걱대는 소리에도 눈이 떠졌다.

 ‘걔네가 워낙 커서 천장 위를 걸어 다녀도 발소리가 들린대.’

어디선가 소리가 나면 그 한마디가 떠올랐다. 나는 그때마다 허겁지겁 이불 속으로 머리를 감추었고 스스로 뿜어낸 이산화탄소에 해롱거렸다. 얼굴 한번 편히 내놓지 못하는 자신이 소심한 거북 같았지만 ‘그분이시라면 발 헛디디지 말고 그냥 조용히 가시던 길 가세요’라고 외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뜬 눈으로 투명바퀴벌레와 사투를 벌이며 밤을 설쳤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찰싹 붙어서 마른침을 삼키며 베란다로 나갔다. 언니가 매의 눈으로 구석구석을 살피는 동안 나는 숨을 죽이고 전우로서 그 옆을 지켰다.

 “없어.”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저녁도, 그다음 날도 놈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흘째 되던 날, 손톱만 한 보통 바퀴벌레가 나왔지만, 공포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진 덕분에 매일 아침 집안을 점검하는 행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차츰 녀석의 존재를 잊어가고 우리는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그러나 업체 직원의 예언대로 녀석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도 언니 비명과 함께 나는 눈을 떴다. 장소는 베란다, 지난번과 똑같았다.

 “이번엔 일본산 바퀴야 진짜 커..”

 어느새 그녀가 바퀴벌레 박사학위를 딴 모양이었다. 비주얼만으로도 출신을 알아볼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우리는 죽은 채로 발견된 사실과 이전 불청객보다 작은 사이즈임에 감사하고 있었다.

 “이번엔 같이 치워보자. 할 수 있을 거 같아.”

 시체 처리를 위해 또 업체를 부르기엔 민망했던 우리는 짧은 회의를 마친 후 필요한 준비물인 ‘휴지(엄청 많이)’와 ‘다목적 집게’를 챙겨왔다.

 작전은 다음과 같다. 눈이 보이지 않는 내가 인간 아바타가 되어 언니의 지시 아래 휴지로 녀석을 덮는다. 그리고 언니가 잘 덮인 휴지를 집게로 주워 녀석의 시신을 변기에 넣고 내린다.

 비주얼에 약한 언니의 단점을 눈이 안 보이는 내가 보완하는 완벽한 협동작전이었다.

 “자, 어서 가 봐. 내가 이 너머에서 볼게!”

 “응.”

 나는 발사된 미사일처럼 언니 지시에 따라 왼쪽, 오른쪽 장애물을 피해서 가며 목표물로 향했다.

 “거기야! 바로 밑! 아니, 좀만 더 왼쪽, 좀 더 벽 쪽!!”

 등 뒤로 섬세한 지시가 시작되고 나는 목표물이 목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지금 딱 거기야. 너무 높은 데서 떨어뜨리면 안 돼. 휴지가 가벼워서 이상한데 덮일 수도 있어. 천천히.. 정확히. 그래,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다니, 태어나서 바퀴벌레 치우다가 칭찬받을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나는 약 3cm씩 지면과 거리를 좁히면서 휴지를 놓을 타이밍을 찾았다. 계속 말하던 언니도 더는 지시를 내리지 않고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천천히, 천천히 나는 그것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눈치 없는 뇌가 발라당 누워있는 바퀴벌레 사진을 눈앞에 띄웠다. 예전에 보았던 기억을 끄집어낸 것이다. 마디마디 살아있는 그 정교한 모습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닭살이 확 돋았다. 당장이라도 휴지를 던지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물러서기엔 너무 많이 와버렸다. 까딱 잘못해서 시체에 손가락이 닿거나 밟으면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 확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살기 위해, 도망치지 않기 위해 발상을 전환해 보기로 했다. 우연히 산책 나와 죽음을 맞이한 바퀴벌레에게 치러 주는 장례식이라고. 나는 시신 위에 흰 천을 덮어주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얘도 누군가의 부모였을지도 몰라. 사람으로 따지면 사고사군...’ 발상이 지나쳤는지 뭔가 마음이 애잔하면서 경건해져 버렸다.

 “지금이야!”

 마지막 지령이 떨어지고 나는 휴지 뭉치를 놓았다. 언니는 순식간에 집게로 그걸 잡아채고 소년만화 주인공처럼 괴성을 지르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 뒷모습을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털북숭이 보디가드가 꼬리를 흔들며 바라보았다. 변기 뚜껑이 젖혀지는 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물이 내려갔다. 녀석은 그렇게 고향인 하수구로 돌아갔다.


 그날로부터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지금은 베란다를 해 질 녘까지 열어두곤 한다. 천장에서 들리는 소리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만약 대왕 바퀴벌레가 다시 출몰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튼튼한 요새 덕분에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우습게도 그때의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 바로 가장 아무 일도 안 한 털북숭이 보디가드다. 며칠에 걸쳐 이어진 비명이 안 좋은 기억이 되었는지 우리가 소리를 지르기만 하면 커다란 귀를 펄럭이면서 제일 먼저 도망치는 꼴이니 어이가 없다. 그래도 그 모습이 또 귀여워서 일부러 골려주곤 한다. 녀석이 또 나타난 것처럼 없는데 있는 척, 놀란 척하며 소리 지른다.

 “으악! 바퀴벌레다!!”

이제는 이렇게 장난치며 놀 수 있지만 그때를 그리워하는 건 절대 아니다. 만나기 싫다. 앞으로 평생,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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