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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Mar 27. 2023

숨바꼭질

오늘도 술래는 나

 - ! !   또르르르...

 또 떨어뜨렸다. 그것도 아주 완벽한 스리 쿠션이다. 바르는 화장품이라고는 고작 스킨과 로션, 두 개뿐인데 역시나 오늘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내 손이 문제인 건지 둥글둥글한 녀석이 문제인 건지. 나는 또 스킨의 모자를 날려 먹었다.

 “어디로 갔나.”

 평소라면 ‘언젠가 만나겠지’ 하며 모르는 척하겠지만 오늘은 한가한 날. 시간이 많은데 굳이 찾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며칠째 이어지는 ‘건조주의보’ 속에서 스킨의 두피가 버석버석 마르는 걸 가만 지켜보기만 할 정도로 나는 박정한 사람도 아니었다. 자, 마음을 먹었으니 이제 숨바꼭질 시작이다. 술래는 당연히 나다.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는 싫으니 이제 분석을 해 보자. 마지막으로 소리가 난 방향을 보아 컴퓨터 책상 밑 언저리일 것 같다. 아니면 맞은편 옷걸이. 그중에서도 바닥에 물건이 많은 컴퓨터 책상이 좀 더 수상하다.

 ‘어디 숨었나.’

 책상에 꽂힌 의자 주위를 살폈다. 바닥에 놓인 컴퓨터 본체 근처에도 그 옆 쓰레기통 주변에도 없다. 조금 더 움직이니 핸드 청소기 충전기를 만났다. 여기도 없다. 뻣뻣한 막대기가 나왔다. 의자 다리였다. 그 사이에 고불고불한 게 만져졌다.

 ‘한참 기다렸어.’

 머리끈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출근 준비 때 머리를 묶다가 잃어버린 녀석이었다. 숱이 많은 내 머리카락을 고정하려면 제법 짱짱하게 당겨 묶어야 하는데 그러다 종종 이런 식으로 튕겨 나간 녀석들을 까먹곤 했다. 럭키다. 여분 머리끈이 다 떨어지기 전에 찾다니. 난 우연히 구조한 머리끈을 손목에 건 채 다시 뚜껑을 찾아 나섰다.

 다음은 옷걸이 주변. 여기저기 다 쓸어봐도 무엇도 손에 걸리지 않았다.

 “설마 저 틈에 들어간 건 아니겠지?”

 나는 납작 엎드리고서 옷걸이 밑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좀 더 깊숙이, 조금만 더... 나는 한 손은 바닥을 지탱한 채 다른 손을 휘적거리며 허우적댔다.

 ‘땅 짚고 헤엄치기’가 이런 느낌일까. 속담은 거짓말이다. 현실은 그 속담과 달리 쉽지 않다. 힘들기만 하다. 한참 허공을 헤엄치다가 드디어 뭔가가 잡혔다. 뚜껑은 아니었지만 뭐든 간에 기뻤다. 가느다란 쇠붙이 같은 느낌이 귀이개 같았다. 그러나 정답은 실핀. 이것도 얼마 전에 집다가 떨어뜨린 그 아이. 뚜껑이랑 둘이서 하는 숨바꼭질인 줄 알았는데 숨은 애들이 더 있었구나. 나는 다시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것을 머리에 찔러 넣었다. 그 후, 같은 자리에서 실핀 세 개를 더 발견하긴 했지만 여전히 뚜껑은 찾을 수 없었다. 세 평짜리 방에서 하는 숨바꼭질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다 뒤졌는데도 언제 떨어뜨렸는지 짐작도 안 되는 연고와 손톱깎이가 다였다. 한참을 쭈그리고 손으로 바닥만 쓸어댔으니 더웠다. 체감은 100평짜리 방이다. 완전히 지쳐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굴러가봤자 방 안에 있다. 너와 나는 언젠가 반드시 만나겠지. 까맣게 잊고 있던 이 물건들처럼. 아무리 늦어도 이사 갈 때는 나오겠지.

 나는 뚜껑에게 항복을 선언했다. 포기했으니 술래로서 완패지만 이 게임을 계속하기에는 파김치가 되어버렸다. 괜히 일찍 씻었다.

 아무래도 털북숭이 룸메이트에게 푸념해야겠다. 오늘은 아침부터 힘들다고, 아직 아침밥도 안 먹었는데 그냥 오늘 하루를 마감하고 싶다고 찡찡대고 싶어졌다.

 “내 이야기 좀 들어봐.”

 그는 꼬리를 흔들더니 몸을 뒤집었다. 그냥 배나 만져달랜다. 그래, 말해서 뭐 하나. 나는 그의 배 쪽으로 손을 뻗었다.

 “어?”

 부드러운 털을 기대했는데 딱딱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뚜껑이다. 그의 매트 구석에 콕 박혀 있었다. 잘도 숨었다.

 “너는 다 알고 있었지?”

 모르는 척 그냥 꾸벅꾸벅 졸고 있다. 한통속일 줄이야. 룸메이트에게 알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다.

 “에잇, 응징이다!”

 천장을 향한 그의 배를 마구 문질렀다. 간지럽다고 캑캑거리며 그가 발버둥 쳤다. 이제 좀 속이 후련해진다.

 오른손으로 뚜껑을 집었다. 침을 꼴깍 삼켰다. 이번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 화장품 선반 위 스킨을 왼손에 들었다. 뚜껑을 덮었다. 조였다. 그것도 아주 단단하게. 나중에 열 때 좀 귀찮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만큼 꽉.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너무 꽉 잠갔나? 이따가 열 때 또 날아가는 거 아냐’

 생각이 스쳤다. 내 승리로 끝났지만 이 게임을 내일 또 하고 싶진 않다. 완전 너덜너덜이다. 꼭 해야 된다면 한 달 뒤쯤 생각해 보겠다.

 눈을 떴다. 커튼 틈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피곤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래도 목표한 바는 이룬 하루니까 좀만 더 자자.

 참새 소리가 들린다. 아침이라고, 이제 하루가 시작된 거니까 자지 말라고 말한다. 잠을 잘 수 없다. 참새가 문제가 아니다. 스킨이 아른거린다.

 안 되겠다. 이번 거 다 쓰면 네모진 화장품을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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