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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May 22. 2023

비밀 노트

그 시절의 이야기

 “여기서 강아지 그림 좀 찾아줘요.”

낡은 크로키북을 테디베어에게 내밀었다. 벌써 10년은 넘은 것이었다. 나의 가장 오랜 보물, 내 그림이 담긴 비밀 노트다.

 “강아지 그림은 왜?”

 “그 그림 빼고 다 버리려고.”

 마지막으로 눈이 보였던 24살.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다. 나름 뜻깊은 작업이라 무엇을 그릴지 신중히 생각할 필요가 있었지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딱 하나가 떠올랐다. 단독 후보로 오른 그것은 바로 강아지. 가족이나 남자친구가 아닌 강아지라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강아지만큼 적당한 건 없었다. 말도 못 하고 걷지도 못하는 나이인데도 강아지는 덥석덥석 잡아 안았다고, 큰 개도 좋다며 떠돌이 개도 쫓아다니는 아이였다고 엄마는 늘 말했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그냥 강아지가 좋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강아지는 나를 상징할 수 있는 절대 불변의 존재였다.

 나의 마지막 작품의 모델은 친구들의 반려견이었다. 내가 반려견을 키웠더라면 좋았겠지만 당시 우리집 엔 없었고 그리고 평소 나를 지지해 주고 있는 친구들에게 작은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그렇게 친구들로부터 반려견 사진을 몇 장 받았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최대한 확대하고 눈동자, 수염 하나하나 관찰했다. 확대경을 크로키북에 올린 채 샤프를 쥐었다. 몇 년 만에 그림을 그리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확대경 없이는 내가 무엇을 그리는지 볼 수 없을 만큼 눈이 나빠진 상태였다. 선을 하나하나 그릴수록 눈물이 났다. 눈도 마음도 아팠다. 종이 위로 눈물이 떨어지지 않게 휴지로 훔치며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겨우 A4 크기 종이인데 완성하는 데 5시간이나 걸렸다. 원래 그림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뚝딱 만들어지는 줄 알지만 몇 시간, 몇 개월의 세월을 갈아 넣는 게 그림이다. 단 1초 만에 오는 감동을 위해 생명을 담는 이 작업이 좋았다. 나는 그렇게 네 장의 그림을 1주일에 걸쳐 완성했고 지인과 친구에게 나눠주었다.

 그런데 한 친구는 사본을 받겠다고 말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친구 덕분에 딱 한 장이 그 크로키북에 남게 되었다.

 “다른 그림도 많은데?”

 그 크로키북에는 친구에게 주려 했던 그림 말고도 다른 것들이 더 있었다. 그냥 손 가는 대로 끄적인 낙서들이었다. 그 강아지 그림을 제외하면 별 미련이 없었기에 강아지 그림만 남기고 모두 버릴 작정이었다.

 “강아지 빼고 다 버릴 거야.”

 “이걸 왜 버려?”

 “어차피 보이지도 않고, 그 강아지만 열심히 그렸는데. 다른 건 뭘 그렸는지 기억도 안 나.”

 “싫은데요~ 안 버릴 건데요.”

 “필요 없다니까? 이사하니까 정리하려고. 이것도 다 버릴 거야.”

 나는 그에게 앨범 하나를 내밀었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만화를 그렸던 앨범이었다.

 “이건 또 왜 버려?”

 앨범이 테디베어 손길에 사락사락 소리를 냈다.

 “필요 없으니까.”

 “필요한 게 뭔데?”

 “쓸모가 없잖아. 이걸 어따가 써요.”

 “오빠가 보면 되지.. 추억은 쓸모가 있어서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추억’이란 말이 가슴에 맺혔다. 추억인지, 미련인지 나는 아직 판단할 수가 없었다. 보는 것에 대한 미련인가. 내가 다시 눈이 보이게 되면 그 시절만큼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자신도 없었다. 나는 녹슨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쓸 데가 없는데...”

 “세상에 쓸모 있는 것만 가지고 있는 기 아니에요. 난 이게 좋아. 그러니까 안 버릴 거야.”

 “다 버리는 게 아니라 강아지 그림은 남긴 대도?”

 “그럼 다 버려야지 왜 강아지는 남겨?”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두 눈에 담을 수 없는 건 똑같은데 왜 나는 그 그림을 버릴 수 없는지 스스로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버릴 거면 그냥 오빠 줬다고 생각해요. 오빠 추억이기도 해.”

 테디베어는 그림 그리는 내 모습을 알고 있었다. 나는 저시력 시절 복지관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테디베어는 자기는 그림을 못 그려서 잘 그리는 사람이 신기하다며 감탄하곤 했다. 그때는 연인이 아닌 아는 오빠였지만 우리는 곧잘 어울렸고 그는 내 그림 보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어가는 내 모습도 알고 있었다. 테디베어는 내 시각장애 인생 전부를 옆에서 지켜본 셈이다.

 “어쨌든 끝! 이건 그대로 가져가는 걸로.”

 “으... 괜히 말했어.”

 테디베어가 집으로 돌아가고 그림과 내가 남았다. 마음만 먹으면 테디베어가 없는 사이 몽땅 처분해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다시 크로키북을 꺼냈다. 여전히 어느 게 강아지 그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통째로 버릴까?’

 역시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20년의 세월의 흔적을 쉽사리 폐기할 수가 없었다. 10대의 나는 30살의 나를 이런 모습으로 그리지 않았다. 워낙 사회성이 없어서 프리랜서를 하리라 생각은 했다마는 적어도 즐겁게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 그 순간이, 그날의 꿈이 이어져갈 줄 알았다.

 ‘만약 제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그림으로 밥 먹고 살 수 있었을까요? 내가 이렇게 눈이 안 보이게 되지 않았더라면 저는 정말 꿈꿨던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언젠가 신을 만난다면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하나 더.

 ‘저는 정말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걸까요?’

 제일 듣기 무섭지만 알고 싶은 진실이었다. 진짜 나는 모두에게 기대받을 만큼 재능이 있긴 했던 걸까. 그렇게 믿고 살았던 게 오만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것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미련’이다. 그래도 지금 현실을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는 건 10대 동안 뜨거운 열정을 품었고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은 덕분이다. 무언가에 심취하고 어떠한 것에 불태웠던 과거가 있기에 지금의 내 심지가 이렇게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해낼 수 있다고 나를 믿게 만든 그림.

 “다시 그림 해보는 게 어때요? 시각장애인 작가분들도 계시긴 해.”

 “싫어요. ‘극복’이란 말이라든가, 시각장애인이 그림을 그린다는 둥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아요. 무엇보다 내가 볼 수 없는 걸 다른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며 평가받고 싶지 않아요. 난 내 인생에서 쓸 수 있는 모든 시력의 한계치를 그때 다 쏟은 것뿐이에요. 배터리가 방전된 것처럼. 그러니까 이제 충분해요.”

 예전 회사 동료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이 마음만큼은 진심이다. 나는 다 쏟아부었다. 적어도 당시 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모두 말이다. 그때 도담이가 다가왔다. 계속 짐 정리만 하니 심심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크로키북을 꺼내 그의 앞에서 팔랑거리며 말했다.

 “있지, 누나는 말이야. 너 만나기 전에 그림을 그렸어. 누나 그림이야.”

 오래된 종이에 섞인 흑연 가루 냄새가 신기한지 도담이가 킁킁거렸다.

 “도담이를 못 그려주는 게 제일 아쉽네. 그래도 눈이 계속 보였더라면 도담이를 못 만났을 거야. 그러니까 누나는 이제 괜찮아. 그래도 도담이를 만났으니까.”

 나는 도담이 목덜미를 긁어주었다. 아쉬운 건 아니지만 괜찮다. 어차피 잃은 시력 미련 가져 뭐 하는가. 내가 그림을 못 버리는 건 보지 못하는 미련이 아닌 가슴 뜨거운 젊은 날에 대한 미련이다. 그리고 그 어떠한 걸림돌도 장애물도 없는 현실. 모든 걸 다 이룰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과 패기, 열정. 그날의 나에 대한 미련이다. 그러니까 미련 가져도 괜찮다. 이런 미련은 전혀 아프지 않다.

 “해지기 전에 산책 가자.”

 ‘산책이란 말에 도담이는 이미 저만치 현관으로 가버렸다. 목걸이를 들자 빨리 걸어달라고 계속 머리를 들이민다. 어서 문을 열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자고 도담이가 외치는 듯했다. 마음이 산뜻하다. 오늘도  괜찮은 하루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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