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솔직한 심정
큰일이다.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브런치를 오픈하니 매일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 동안 잠자고 있던 ‘생산’ 스위치가 켜져버린 모양이다. 제품엔 작품성이나 독창성 같은 멋진 수식어는 없다. 단순한 혼잣말이 범벅된 글뭉치니까. 그저 10명의 직원들이 열심히 키보드 위를 뛰어다니고 머리 꼭대기 사장이 잘하고 있는지 감시한다. 오늘도 분주하게 공장이 돌아간다.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좋아하고 직업도 프리랜서 강사다. 아직 구독자가 많지 않아서 내가 무슨 강사인지 궁금한 사람은 없을 듯하여 자세한 건 패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의 직업에 대해 말해보겠다. 분명한 건 아마 이 바닥(브런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사는 아닐 것이며, 프로필 입력을 위해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그런 직업임에는 틀림없다. 어쨌든 간에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어릴 때도 엄마나 언니 뒤를 쫓아다니며 ‘있잖아~’와 ‘왜?’를 연발하는 수다몬이었다. 수다몬은 궁금한 게 많았고 생각하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다지 수다몬을 상대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성가셔한달까? 수학 시간 ‘총 몇 개일까요?’ 문제를 배울 때 ‘왜 비둘기 두 마리 다리는 4개만 답인가요?’라고 선생님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돌아왔던 대답은 ‘그냥 그런 거니 외우렴’이었다. 수다몬은 정말이지 마음속 깊이 실망했다. 당시 서울은 비둘기가 많았고 사고로 다리를 잃어 절뚝이는 비둘기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수다몬이 가진 생각을 들어볼 맘이 없어보였다.
‘그래서 이게 글이랑 무슨 관계야.’
슬슬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 같다. 다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거나 생각을 말하길 포기하고 집 앞 서점에 들락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도서관보다 서점을 좋아했다. 학교 도서관 책은 너무 더러웠다. 그리고 수다몬의 욕구를 풀어줄 책이 충분하지 않아서였다. 운 좋게도 동네 서점 아저씨도 수다몬이 그곳에서 책 읽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특하다며 좋아했다. 덕분에 수다몬은 때 묻지 않은, 갓 출간된 신선하고 따끈한 책을 자유로이 읽을 수 있었다. 글을 끄적이기 시작한 것도 꽤 오래되었는데 제일 열심히 공부한다는 고등학생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스트레스 해소용이랄까. 글쓰기란 내 속에 부글대는 마그마를 식히는 냉각수 비슷한 것이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감촉과 소리도 좋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현실도피용 세상을 구축하기에 글이 딱이었다. 돈도 거의 들지 않는데다가 엄마에게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기에도 안성맞춤인 딴짓이었다. 나이를 먹고 그 버릇은 차츰 내 안에 뿌리를 내렸다. 눈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면서 몸부림치듯 글을 썼다. 그것은 과거의 흔적을 남기는 작업이었다. 확대해도 사진을 볼 수 없게 되어서였다. 예전에 받은 연애편지도, 일기장도. 시력을 잃는다는 건 과거의 추억을 곱씹을 수 있게 하는 향유물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쉼 없이 일상을 끄적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글을 쓴다는 것은 어느새 식전에 마시는 물 한 모금만큼이나 고질적인 버릇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거울 속 내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무형의 자신을 남기고 싶어졌다. 그래서 또 글을 썼다. 그렇게 일기뿐 아니라 생각, 소설 등 잠깐이라도 내 뇌리를 스친 거의 모든 조각들을 기록했다. 과거의 내가 글이라는 그릇에 담겨 하나, 둘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서’에 굴러다니는 그들이 왠지 불쌍해 보여서 방을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브런치’가 탄생했다. 사실 지금도 내가 글을 올려도 되나 싶다. 이런 글을 누가 읽어준다고. 게다가 눈이 전혀 안 보이는 존재가 어딘가에 글을 올릴 수 있는가. 나는 맞춤법 검사 하나 온전히 스스로 할 수 없다. 틀린 부분을 표현하는 밑줄을 볼 수 없고 사진넣기도 못 하고, 글씨 색을 바꾸는 것조차 혼자서는 어렵다. 반드시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다. 거기에 글이 이상하다고 악플이 달리거나,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서 상처받는 것도 두려웠다. 읽히면 부끄럽고, 안 읽히면 속상한 모순된 감정. 이성으로 가득 찬 나의 뇌는 감당하지 못할 일 벌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손은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넣고 있었다. 오너의 납품 지시 없이 멋대로.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아마 전 직장동료인 슈퍼모델의 덕분일 것이다. 그녀는 글쓰기를 좋아했고 우린 종종 글이나 생각을 나누었다. 더불어 나에겐 아주 감사한 서포터가 있었다. 나의 예전 근로지원인(장애인의 업무처리를 보조하는 지원인)이 맞춤법을 검토해 주겠다고 선뜻 수락해 주었기 때문이다. 봐줄 글이 없냐고 먼저 연락을 주는 그녀는 정말 천사다. 천사님은 현재 출판사에 근무할 만큼 유능하고, 믿음 가는 분이기에 나 또한 걱정 없이 부탁할 수 있다. 그리고 끝으로 내 사랑 테디베어. 주말 데이트 중에도 마음껏 내가 글을 쓰게 해준다. 덕분에 글을 쓰면서도 우렁각시가 방문한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차려진 밥을 먹을 수 있다. 그가 없다면 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만 쓰다가 쫄쫄 굶을 수도 있다.
‘순전히 나만 즐거운 이런 이기적인 짓을 이어가도 되는 건가.’
늘 받고만 사는 것 같아 모두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목표가 생겨서 멈출 수 없을 듯하다. 나란 인간은 참 자기밖에 모른다.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고 말할 순 없다. 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치유받고, 세계가 넓어지고 조금 더 유쾌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다. 특히 더 이상 ‘장애’가 극복이나 불행과 연결되는 키워드가 아니게 되었으면 한다.
글은 나를 치유해 주었고 등을 밀어주었다. 내가 장애 판정 3일 만에 복지관을 갈 수 있었던 것 또한 글 덕분이리라. 끊임없이 나와 대화하는 새하얀 공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는 공간. 때로는 벌거벗은 채 깔깔대며 뛰어다니는 장난꾸러기로, 어느 날은 엄마한테 혼난 아이 마냥 세상 서럽게 엉엉 우는 울보로. 하얗고 순수하게. 그게 바로 ‘하얀솜사탕’의 브런치다. 어쩌다 보니 대문글이 되어버렸다. 아무렴 어떤가. 문제는 없다. 오늘도 하얀솜사탕 공장은 부지런히 돌아갈 뿐이다. 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