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줄게라는 말이 불편했던 이유

'기회'라는 말을 인질로 잡는 사람의 특징

by 윤채


너한테도 기회를 줄게



처음 들었을 땐 고마운 말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가능성이 주어질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하니까. 그 말이 한동안은 위로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직은 부족하더라도, 언젠가 선택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며 마음 한편이 서서히 굳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불편하다. 분명 처음엔 따뜻한 말이었는데 들을수록 마음이 위축된다.



사실 기회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조심스러운 일이다.



기회가 '인질'이 되면 우리가 처한 위치가 상대보다 낮아졌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고, 혹여나 그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 말과 행동을 스스로 제한하게 된다.



타인이 말한 기회가 올 듯 오지 않을 때, 혼란 속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정말 그들은 기회를 주고 싶은 걸까. 아니면, 기회라는 말을 미끼 삼아 조종하려는 걸까.



chihiro016.jpg © Studio Ghibli



경험상, '기회'라는 말을 자주 하던 이들이 실제로 기회를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처음엔 기회를 줄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바꾸기도 한다.



"네가 요즘 좀 안일해진 것 같아."

"기회를 주고 싶긴 한데, 다른 사람이 더 잘하더라고."

"어쩔 수 없지. 아직 네 차례가 아닌가 봐."



그 말은 겉으로는 위로하는 말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대를 탓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기대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며 결국 관계의 주도권을 상실하게 만든다.



그렇기 기대를 기다리는 사람의 노력은 언제나 평가당하고, 기다림은 습관이 되어버린다. 말로는 기회를 준다고 하면서도 그 말은 점점 당신을 조용하게 만들고, 작게 만든다.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이런 언어는 '통제 지향적 언어'에 가깝다.



말하는 이는 도움을 주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판단과 행동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자 한다. 자신의 우위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면서, 듣는 이에게는 "너는 내 기준에 따라 움직여야 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말 앞에 놓인 우리는, 인지적 왜곡에 빠지기 쉽다.



"나는 아직 부족하니까, 기회를 받지 못하는 거야."

"지금 이 말을 거스르면 진짜 기회를 놓칠지도 몰라."

"이 사람 기준에 맞아야, 내가 인정받을 수 있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수록 우리는 자꾸만 조심스러워지고 자신을 점점 축소하게 된다. 자신의 성장과 가능성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보다는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는 입장이 된다.



결국 기회는 더 이상 기회가 아니라, 그 사람의 잣대 안에서 조건부로 주어지는 인정의 보상처럼 변질된다.



사실, 진짜 기회를 주는 사람은 "기회를 줄게"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 대신 자리를 만든다. 함께할 수 있도록 여지를 두고 당신의 존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곁에 있어준다.



chihiro017.jpg © Studio Ghibli



당신이 아직 부족하더라도, 그것을 이유 삼아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행동으로 신뢰를 보이고 기회란 애초에 허락이 아닌 동행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기회라는 말이 꼭 감사해야 할 표현만은 아니라는 것. 어떤 말은 듣는 순간부터 관계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당신의 자존감 깊은 곳에 미세한 금을 내기 시작한다. 그 어떤 말보다 조심해야 할 말은 우리를 작게 만들며 조종하려는 언어다.



남들이 '기회'를 인질 삼을 때 흔들린 적이 있다면 이제는 그 말속에 숨은 위계를 먼저 들여다보자. 그 말이 진심으로 함께 걷자는 제안인지, 아니면 당신의 가능성을 조절하려는 방식인지를.



기회는 누군가의 허락 같은 것이 아니다



기회는 당신이 당신에게 주는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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