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두려움에 맞서

나비를 찍기 위한

by 천윤준호

Playlist. 네 어둠은 내가 먹어치울게 _ 안희수



평생 두려움을 품고 살아갔다.


'어차피 안될 거야.'

'했다가 후회하면 어떻게 하지?'


감정에 대한 두려움을 경계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어떤 행위를 하기 전에 반드시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타자가 보았을 땐 아무것도 아닌 일도 정성 들여 용기를 내어야 가능했다. 잠시 들린 지난봄도 그랬다. 봄이 흘러간다. 지난해처럼. 또 지난해처럼. 이번 해의 봄도 그렇게 지나가는데 그쳤다.


계절이 따뜻해지니 일전에 몸을 숨긴 생명체들이 자신들의 흔적을 조금씩 남기기 시작한 게 보였다. 오랫동안 볼 일없었던 개미나 짙은 날갯짓을 하는 벌이 눈에 보였고, 하얀빛을 머금은 나비가 꽃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앞에는 계란꽃 몇 송이가 피어있었는데 백색의 나비는 한껏 날갯짓을 하며 계란꽃들을 하나씩 맛보았다.


실로 오래간만에 본 나비의 날갯짓이 예뻐, 카메라로 담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카메라를 꺼내는 순간 날아가버릴 것이란 두려움 때문에 갈등했다. '카메라를 켰는데 날아가면 어쩌지.' 란 두려움은 큰 절망으로 다가올 것만 같았다. 차라리 카메라를 켜지 말까. 근데 만약 날아가지 않으면 찍을 수 있는 거잖아. 별 것도 아닌 일로 내면에서 다투고 있었지. 그래. 시도조차 해보지 않으면 찍을 수도 없는 걸 알지만, 시도하려고 했을 때 실패를 하는 감정이 싫었기에 용기를 내어 행하지 못했어. 그 갈등을 중재하는 건 과거의 나였다.


그래. 찍어보자.


다툼의 끝자락에서 카메라 어플의 버튼을 눌렀고, 나비의 날갯짓에 맞춰 시선을 움직였다. 계란을 닮은 꽃과 백색의 나비가 내 시선을 속이며 시야를 요리조리 피해 가더라. 찰칵. 그 예쁜 순간의 모습을 찍으려고 몇 번의 셔터를 눌렀다. 예상은 빗나갈 리 없었고, 역시나 잘 담기지 않았어. 나비는 마치 내 사진첩에 들어오지 않으려는 듯이 발버둥 쳤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


하며 셔터에 힘을 다했고, 승리자는 나였다. 비록 사진을 확대하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나비의 모습이지만, 담아냈다. 그래. 역시 찍길 잘했어.라고 말하며 내 선택을 위안했다. 만약 내가 나비의 짓을 담아내지 못했더라면, 내 선택을 위안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시도하기 전의 실패라는 두려움과 공포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지. 물론 무조건적으로 시도한다는 것이 좋은 결과를 도출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시도를 하는 것부터 그 결과의 시작이지 않을까.


나비의 순간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서 카메라를 켜고 싶었지만, 카메라 어플을 누르는 순간에 시야에서 완전하게 날아가지는 않을까 두려움에 휩싸이며, 별 것도 아닌 일에 고민하고 걱정하는 내 모습이 겁쟁이 같았다.


그렇다고 겁쟁이라고 나쁜 건 아니지.


그래. 그렇지 아니지만 만일 내가 여전하게 겁쟁이로 남았다면, 나비는 내 사진첩으로 들어오지 못했겠지.


몇 해 전, 어머니께서 뒷모습이 영화 같다며 찍으셨던 순간


마음에도 모양이 있을까 생각해 봤다.

만일 모양이 있다면 분명하게 여러 인간관계 속에서 닳고 닳아 모나지고 있는 중일 거다. 그렇게 한참을 모나지고, 또다시 모나지고를 반복해 결국은 다시금 둥글어진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순간이 올까 의심했다. 성하지 않은 부분은 다시 아물겠지만, 그 감정의 피가 응고해서 결국에는 딱지를 지게 할 거고, 지워지지 않는 흉터라는 유산을 남길 거라는 사실이 나를 무섭게 했다.


감정의 유산.

내가 가진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모양이 있다면 나의 마음은 조금 모나더라도 상냥한 모양이 되고 싶었다.


당신의 마음은 무슨 모양일까 생각해 봤다.

당신은 당신의 모양을 마음에 들어 할까. 만약 당신이 자신의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한다면,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내 마음은 그런 마음이어야 한다는 편협한 생각들이 당신을 닳게 할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가끔 별난 사람들을 마주하고는 했다. 나와는 생각이 많이도 다른 사람들. 그러다 마음이 모난 사람들을 봤다. 그럴 때면 난, 배려 없는 마음으로 '절대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불쾌한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서 회피했다. 필히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그런 당신에게, 그리고 그런 내게 애써 자신을 닳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상은 희망을 품지만, 결국 자신을 향한 비난과 죄책감으로 다가오기에 마음을 갉아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훗날에 당신이 그렇게 모난 자신을 미워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당신을 잃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좋겠다.


내가 쓴 문장들은 감정의 잔여물이다.


더 이상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타버려 재가 되었다.

그렇게 검게 변해버린 감정의 잔여물. 훗 날, 감정의 그을린 문장들을 보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 마음이 이런 모양이었구나. 그리웠다며, 추억이라면서 그 자취를 사랑했다고.


참 사는 게 그렇더라고요. 당신의 사소한 말을 담아내기 위해서 용기를 내야 했지만, 저는 아직 겁쟁이인가 봐요. 고립된 세계에서 당신을 향해 셔터를 누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당신에게 말을 건네려고 한 글자마다 정성을 담아 용기를 내봅니다. 당신의 몸짓에 맞춰 시선을 서서히 옮기니 당신이 보는 바다가 보였습니다.


나비처럼 소색의 바다. 조금이라도 당신의 파도가 담길까 셔터를 눌러봅니다.


결국 찍어낸 나비의 사진. 왼쪽 끝에 흰색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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