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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령 Nov 21. 2023

Chapter 01. 추억

솔직함이라는 무기

[그날 이야기]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꼬맹이 시절 유치원 단짝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등원하는 유치원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 하원까지 함께해 집에 갔다. 그 수많은 날들 중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어느 가을오후가 기억에 남아있다. 내가 단짝 친구와 싸운 뒤 따로 집에 돌아온 최초의 날이었고,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다가 우울한 나의 기분을 걱정할 엄마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녀가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집 앞에서 웃는 얼굴을 연습한 기억이 난다. 그렇게 집에 돌아가 더욱 씩씩한 척 간식을 먹는 내 앞에서 친구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받은 엄마는 나의 밝은 모습이 연기임을 알아버렸고, 왜 그랬는지 묻는 엄마에게 나는 걱정시키기 싫어 그랬다는 대답을 하고는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리며 엉엉 울어버린 기억이 난다.

 지금도 엄마는 나를 키우며 가장 속상했던 순간을 이야기하라면 '그날'을 이야기한다. 너무 어른스럽게 자란 아이는 오히려 속상하다는 것을 나도 이제는 이해한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아마도 '솔직하기가 무서웠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내가 못난 감정에 솔직해져서 별로인 나의 모습을 모두가 볼까 봐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나 살면서 꾸준히 깨닫는다.


솔직한 사람이 가장 단단하다.


 내가 가진 슬픔과 상처에 솔직해지면 사람들이 그걸 약점으로 삼을 수도 있다며 걱정하는 친구도 있었다.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친구의 말에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사람들은 누가 건드려 아플까 두려운 커다란 상처일수록 기를 쓰고 숨긴다. 숨기면 숨길수록 상처는 깊게 곪고 나아지질 않는다. 반대로 내가 가진 아픔을 자꾸 꺼내 외부에 털어놓으면 나도 상처를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되고, 반복해 꺼내둘수록 상처는 곪지 않고 굳어 단단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숨겨 아물지 않은 상처는 누군가 무심코 찌르면 쓰러지겠지만, 드러내어 단단히 굳게 만들면 누가 건드려도 괜찮은 부위가 된다. 그것은 더 이상 나의 약점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주변을 괴롭히지 않는 선에서 나의 슬픔과 상처를 솔직히 드러내는 것은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한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가진 것에 솔직하면 시기를 살 수 있고, 없는 것에 솔직하면 무시를 살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배운다. 그러니 더불어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누구도 완전히 거짓과 가식 없는 사람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오늘만 해도 회사에서 사람들이 정한 식당이 그다지 당기지 않았더라도 '괜찮네요'하고 거짓말을 했으니까. 거짓말 없는 세상에서 살자는 것이 아니다. 이런 세상에서 적어도 우리는 내 '슬픔과 상처'를 건강히 굳힐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진짜 '나'로 나를 지킬 수 있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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